정재은 조달청 기획재정담당관 |
하지만, 조달시장이 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있다. 바로 투명하고 공정한 낙찰자 선정 절차다. 발주기관과 업체 간 유착으로 부적합한 업체가 낙찰자로 선정되면 사업진행에 차질은 물론 예산 낭비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원전비리와 같이 부실한 계약이행이 발생할 경우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공공조달시장은 국민에 ‘득’이 아니라 ‘해’만 끼치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게 된다.
정부는 경제혁신 3개년 개혁을 발표하며 공공기관의 개혁의지를 밝힌 바 있다. 공공기관의 입찰비리 근절 방안도 그러한 맥락에서 나왔다. ‘즉시 퇴출제’(원스트라이크 아웃제)는 공공조달시장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하기 위해 도입됐다. ‘즉시퇴출제’란 공공기관 임직원의 입찰 비리가 발생하면 해당부서의 계약 사무를 2년간 조달청에 위탁하는 제도다. 지난해 8월부터 도입됐으니 이제 어언 1년여를 맞았다.
현재까지 총 8개 기관에서 입찰 비리가 발생해 현재는 모두 조달청에 업무를 위탁 중이다. 하지만 계약업무 위탁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현재 규정과 시스템으로는 비리발생 여부를 사전에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업무 위탁에 대한 결정은 공공기관 이사장과 이사회의 재량사항이다.
따라서 각 기관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업무를 위탁하지 않았고, 한때 자칫 제도가 유명무실화될 위기에 있기도 했다. 각 기관별 특성을 고려하여 계약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업무 위탁 범위 등을 협의한 결과 해당 공공기관에서 계약 업무를 넘겨주었다.
공공기관에서 조달청에 업무를 위탁했다고 능사는 아니다. 위탁 업무의 범위가 해당 비위발생 부서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조달청에 위탁되는 업무는 전체 공공기관 계약 업무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따라서, 위탁된 업무를 조달청이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 이외에도 즉시퇴출제의 도입취지에 걸맞게 입찰비리가 근절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 나갈 필요가 있다.
위탁 범위와 대상이 모호한 점, 위탁 여부의 자율성이 있는 점 등을 개선해야 한다. 업무 위탁 시 위탁기관과 조달청 간 불필요한 행정절차를 없애고, 신속하게 위탁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를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계약담당자의 인식을 변화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열 사람이 한 도둑을 못 살핀다는 속담이 있다. 계약담당자가 비리를 저지르고자 마음을 먹으면 그것을 막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시스템도 결국 그것을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입찰비리로 조달청에 업무를 위탁하는 것은 위탁 기관 및 소속 직원들에게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다. 즉시퇴출제의 도입을 통해 공공기관은 계약 담당자들의 청렴성을 높이는 계기로 삼아야한다. 입찰비리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즉시퇴출은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즉시퇴출제가 사실상 필요 없어지는 투명하고 깨끗한 공공조달 환경이 조성되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