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성 농촌진흥청 차장 |
일본 농림수산상이 자국 선수들이 맛본 한국산 딸기는 일본 품종에 뿌리를 두고 일본 딸기의 이종교배를 통해 탄생한 새로운 품종이라고 주장하면서 화제를 낳기도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레드펄’과 ‘아키히메’라는 일본산 품종이 전국 재배 면적의 90%를 차지할 정도였다. 2002년 국제식물신품종보호연맹(UPOV)에 의해 딸기도 예외 없이 로열티를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당시 전체 딸기 재배 면적을 고려하면 연간 최대 64억 원이나 됐다. 다급해진 우리 정부는 농촌진흥청이 주축이 돼 지방농촌진흥기관과 대학, 농업인들이 참여한 ‘딸기연구사업단’을 출범시켰다.
딸기연구사업단은 국내 4대 딸기 주산지인 논산과 진주, 밀양, 담양 등지의 농가를 돌며 우량묘 보급과 생산성 향상 기술, 에너지 절감 기술 등을 보급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2005년 개발한 ‘설향’ 품종이 국산 품종 보급의 물꼬를 트고 수출용 ‘매향’과 저장성이 우수한 ‘싼타’ 등이 힘을 보태 보급률을 올렸다. 최근에는 크고 단단한 ‘아리향’, 은은한 복숭아 향을 풍기는 ‘킹스베리’, 당도·경도·풍미가 뛰어난 ‘금실’ 등이 새로운 품종으로 개발됐다. 국산 품종 보급률이 2005년 9.2%에서 지난해 93.4%로 크게 늘어났다. 불과 10여 년 만에 보급률을 완전 역전시킴으로써 로열티 부담을 덜어내고 종자 독립을 이뤄 낸 것이다.
국산 딸기 품종의 우수성은 세계시장에서도 높게 평가받아 ‘싼타’와 여름딸기 ‘고하’ 품종은 베트남과 중국 등에 수출돼 연간 4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고 있다. 또한 지난 10년간 해마다 신선딸기 수출 물량이 늘어 2017년에는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 4788t을 수출해 4299만2000달러를 벌어들였다. 시작은 늦었지만 우리 딸기가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약진하는 데는 중앙과 지방 농촌진흥기관, 농가의 유기적인 팀플레이가 주효했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는 ‘보로잉(Borrowing)’이라는 저서를 통해 ‘창조는 모방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과학도 예외는 아니라는 것을 딸기 품종 개발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통일벼’ 개발을 일궈낸 뛰어난 육종기술을 바탕으로 또 다른 종목에서 딸기 품종과 같은 창조를 만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