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
하반기 부동산시장의 핫 이슈였던 ‘종합부동산세 개편안’의 윤곽이 드러났다. 정부가 대통령 직속의 정책기획위 산하 재정개혁특별위원회의 권고안을 바탕으로 종부세 개편안을 내놓았다. 초고가주택과 다주택자, 투기성 부동산 성격이 강한 나대지와 잡종지에 대해 종부세 율을 올린 것이 특징이다. 빌딩이나 공장 부지에 대한 종부세율은 현행대로 유지했다. 임대료 전가, 생산원가 상승 등 실물경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다.
정부는 종부세 과세표준을 정할 때 적용하는 공시가격 비율인 공정시장가액비율을 현재 80%에서 매년 5%포인트씩 올려 2020년에는 90%를 적용키로 했다. 주택분 종부세를 내는 사람은 2016년 기준 전체 주택소유자의 2%인 27만 4000명 정도다. 이중 91%인 24만8000여 명은 과표 6억 원이하에 해당돼 이번 세율 인상에서 제외된다. 종부세 과표 6억 원은 시가 기준으로 1주택자는 약 23억 원, 다주택자는 약 19억 원 수준이다.
시가 23억원은 강남권 신축 일부 33평형이 포함될 수 있으나 대체로 강남권 40~50평형이상 중대형 아파트 보유자가 대상자에 오를 것이다. 부부 공동명의 한 채인 경우 이보다 훨씬 비싼 주택도 종부세율 인상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종부세율은 지금대로 유지되더라도 내년부터 공정시장가액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시가 23억 원 1주택자도 세금 인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정부는 종부세 과표 6억~12억 원 구간은 특위 권고안보다 0.05%포인트 추가(총 0.1%포인트)인상했다. 과표 6억~12억원 은 1주택자 기준으로 시가 23억~33억 원, 다주택자는 시가 19억~29억 원에 해당된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최근 주택시장에 불고 있는 ‘똘똘한 한 채’ 트렌드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다만 초고가 주택 쏠림현상은 다소 주춤해질 수 있으나 10억~20억 원대 고가 아파트 선호현상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종부세 개편으로 가장 큰 세 부담을 안게 될 사람은 3주택자들이다. 보유한 주택의 시가를 합친 금액이 19억 원을 넘어서면 0.3%포인트 추가 과세 대상이 된다. 3주택자라도 고가주택이 많은 서울과 수도권지역에 아파트 보유자로 한정될 것으로 보인다. 저가 주택이 많은 지방에서 3채 보유한 경우 과세 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다.
다만 지방과 서울 아파트를 동시에 3채 보유한 경우 영향권에 접어들 수 있다. 종부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보유가치가 낮은 지방 아파트를 처분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가뜩이나 공급과잉과 지역경제로 휘청거리고 있는 지방 주택시장이 종부세 개편의 유탄을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지방 부동산이 혹시 종부세 강화에 따른 타격을 받지 않는 지 면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시장이 크게 위축될 경우 세금과 대출 규제를 완화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종부세 개편안 발표 이후 전반적으로 관망세가 우세하다. 당초 ‘보유세 쇼크’를 우려했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 수준이라는 평이 나온다. 시장은 급랭하기보다는 거래가 위축된 가운데 횡보세가 이어질 것 같다. 최근 주택시장을 교란해온 ‘갭 투자’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전세가격이 하락하고 있는데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와 보유세 압박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주택자들의 매물이 시장에 많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 지난 4월부터 조정대상지역에서는 주택자의 최고 양도세율이 52~62%에 달하고 장기보유특별공제(10~30%)도 해주지 않는다. 보유세 부담을 피해 집을 팔고 싶어도 양도세 부담이 무거워 매각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이 때문에 서울 등 조정대상지역에서 자녀에 증여나 임대주택 등록이 늘어날 것 같다. 그 물량만큼 시장에 공급되는 매물이 줄어들 수 있는 셈이다. 시장가격은 공급과 수요의 함수다. 동시에 매수자들은 다주택자에 대한 보유세, 양도세 중과로 집을 추가로 사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시장 안정은 공급 증가보다 수요 감소 요인에 의해 이뤄지는 구조가 될 것이다.
선진국형 과세체계 구축을 위해 보유세를 올리고 거래세를 낮추려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대체로 옳다. 다만 그 속도가 다소 빠르지 않는지 고민해야 한다. 정책은 다름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을 제도화한 것이다. 당위성이나 목표에만 급급해 무리한 정책수단을 내세우면 반드시 후유증이 뒤따른다. 정책은 국민들과 호흡을 같이 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따라서 정책을 시행하기 전 국민들의 의견을 한 번 더 수렴하고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