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향 이화여자대학교 북한학과 교수 |
사실 10월 7일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은 9·19 평양공동선언 이전에 계획이 돼 있던 일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취소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이 평양을 찾아 남북정상회담을 열고 9·19 평양공동선언을 선포함으로써 대화의 동력을 되살려 냈고 폼페이오 장관은 다시 평양을 찾았다. 아직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이 어떤 성과를 만들어냈는지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이지만 적어도 문 대통령의 평양 방문과 9·19 평양공동선언을 계기로 끊어졌던 북미대화의 흐름이 되살아났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2018년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는 날짜가 9월 19일이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자연스럽게 2005년이 떠올랐다. 그 때 6자회담 당사국이 베이징에 모여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한 이후 어느 덧 13년이 흘렀구나 하는 생각에 회한이 깊었다. 그동안 내가 사는 이 땅과 주변 상황은 어떻게 변했는지 그 점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는 생각에 새삼 마음이 다급해지기도 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9·19 베이징공동성명을 채택하던 2005년 당시와 달리 2018년 가을에 9·19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하는 지금의 상황이 결코 우리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2005년 당시 북한당국의 핵 능력은 지금처럼 뚜렷하지 않았다. 누구나 의혹은 가지고 있었지만 누구도 확신은 하지 않았던 것이 당시 북한의 핵 능력 수준이었다. 2018년 오늘날은 상황이 완연하게 다르다. 지구상의 그 누구도 북한 핵 문제를 쉽게 해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아무도 북한당국의 핵 능력 수준에 의문을 제기하지는 않는 상황에 이르렀다.
구체적으로 날짜가 언제일지 아직 분명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폼페이오 장관의 4차 방북에 이어 제2차 북미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왔다는 전망이 나오는 중이다.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우리가 북한의 핵문제를 완전하고 돌이킬 수 없으며 검증 가능한 상태로 해결할 수 있는, 반드시 해결해 내야 하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른다.
9·19 평양공동선언 이후,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70% 정도는 남북정상회담을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매우 잘했다는 비율이 52.5%에 이르고 잘한 편이라는 의견도 19.1% 수준이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남북정상회담을 잘 했다고 평가하는 비율이 곧 북한의 행보를 신뢰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었다. 한국갤럽이 남북정상회담 기간인 9월 18~20일까지 여론조사를 실시했을 때 북한이 앞으로 남북정상회담 합의 내용을 잘 지킬 것으로 본 비율은 49% 정도에 머무른 반면 그렇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는 비율이 3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수치는 곧 우리 국민이 지금의 남북관계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시사해 주는 것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북한을 향해 불안한 눈길을 완전히 거두어도 될까? 이제 우리는 정말 이 땅의 평화를 제대로 만들어가는 길로 들어섰다고 확신을 가져도 될까?
돌이켜 보면 우리는 작년 한 해 동안 내내 불안한 눈길로 북한당국이 제5차와 제6차 핵실험을 몇 개월 간격으로 진행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2018년 들어 새해 벽두부터 북한당국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자 평창에 오겠다는 의사를 표현했을 때에도 그 불안했던 눈길을 완전히 거둬들이는 것은 여전히 요원한 상황으로 보였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찾아온 9월 19일에 나온 평양공동선언은 충분히 불씨를 일으켜 새로운 희망의 흐름을 가꾸어 볼 가치는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앞날을 확신할 수 없지만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발걸음은 결코 멈출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