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현 한국역학회장(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
우리나라에서 한 때 하루 909명(1월 29일 기준)까지 치솟았던 코로나19 신규환자수가 이제 한 자리 숫자로 내려왔고, 사망자도 1~2명에 그치고 있다. 이를 두고, 많은 외신에서 K-방역모델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방역의 구체적 과정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방역당국, 보건의료진, 그리고 국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낸 다행스런 선방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은 분들의 아픔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한편, 이제부터는 정말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말을 새기며 언제라도 다시 닥쳐 올 위험에 대한 경계를 한시라도 늦추면 안된다.
작년 12월 31일, WHO에 첫 환자가 보고되면서 시작된 코로나19는 이제 전 세계적인 대유행이 됐다. 확진자가 300만 명을 넘어서고 있고, 사망자만도 20여만 명에 이르고 있다(4월 27일 기준). 초기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집단발병을 넘어 미국과 유럽 각국으로 확산됐고, 이제 남미, 중동지방, 아프리카 등으로 전파가 진전되고 있어 정말 말 그대로 ‘전 지구적 재앙’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전파의 확산은 이 바이러스가 갖고 있는 생물학적 특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감염 이후 무증상기와 증상 미자각 경증시기에 상기도에서 타액과 비말을 통해 주위에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감염된 본인과 주변의 접촉자들이 전혀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서 ‘보이지 않는 전파’가 광범위하게 일어나기에, 방역당국의 지역사회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는 쉽게 무력화 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해서 효과적인 백신이 개발돼 생물학적 집단면역을 통해 바이러스의 이동을 차단하기 전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물리적 장벽을 구축해 바이러스의 이동을 막는 것이 유일한 방역조치가 된다.
우리나라는 2월 18일 대구경북지역의 신천지 종교집단에서 시작된 갑작스런 집단발생에 대해 대량의 검사와 환자 조기격리, 고위험집단에 대한 공격적인 접촉자관리, 그리고 자가격리조치 등을 통해 1차 차단 방역조치로 급한 불을 잡을 수 있었다, 이후 지방과 중앙정부 차원에서 2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사회적 거리를 추진했고, 3월 22일부터 4월 19일까지 1, 2차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5월 3일까지 ‘완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이후 ‘생활방역체계’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강도가 완화된 후 첫 주말인 지난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시민들이 라이딩을 즐기고 있다.(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스텔스 바이러스라 불리울 정도로 아주 영악한 코로나19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그간의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방역조치의 불가피성이 사회적으로 인정되었고, 많은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지금과 같이 관리 가능한 수준으로의 확산 방지에 크게 기여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로 인한 사회경제활동의 위축과 정규 교육과정의 차질 등 또 다른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에, 생활방역체제 전환의 사회적 필요성도 이해할 수 있다. 생활방역은 방역지침의 내재화를 통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단계적으로 일상생활을 재개하자는 것이고, 이의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전환을 앞둔 4월 말~5월 초의 긴 연휴기간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느슨해 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느슨해 짐’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가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대표적인 두 사례가 있다. 첫 번째는 100여 년 전, 스페인 독감이 가져다 준 교훈이다. 근세기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스페인 독감 대유행은 1918년 7월의 1차 파도(wave), 같은 해 11~12월의 2차 파도(wave), 그리고 1919년 2~3월의 3차 파도(wave)를 거치면서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시 미국에서는 1차대전으로 인한 전쟁비용 부담을 덜기위해 대규모 국채발행 행사가 추진됐는데, 필라델피아시와 세인트루이스시 방역당국의 대응은 크게 달랐다(그림1).
그림1 |
예정된 대중행사를 감행한 필라델피아에서는 이후 1만 3000여 명이 독감으로 목숨을 잃었지만, 보건의료 방역전문가의 권고를 받아들여 모든 행사를 취소시킨 세인트루이스시에서는 3000명의 사망으로 그쳤고, 두 시의 인구 10만 명당 사망률도 5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시 당국의 조치에 따라 건강피해가 얼마나 달라 질 수 있는 가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코로나19도 많은 전문가들이 오는 가을과 겨울 다시금 대유행이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두 번째는,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을 잘한 국가로 꼽히는 도시국가 싱가포르의 사례다. 싱가포르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시기인 1월 23일 첫 확진자를 보고한 이래, 3월말까지 하루 50여 명 전후로 잘 관리해 왔다. 그러나, 재개학한 초등학교에서의 집단발병과 4월 초부터 본격 시작된 이주민 노동자 기숙사 중심으로 환자가 급증하기 시작해 4월 20일 하루에만 1200여 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고, 4월 26일 지금까지 누적 확진자가 1만 4000여 명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2차 정점(peak)으로 인해 원래 5월 4일 풀기로 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도 6월 1일까지 연장하는 등 전 도시 차원에서 봉쇄조치를 다시금 강화해 나가고 있다. 싱가포르의 사례에서 보듯이, 코로나 바이러스는 한 사회에서 밀집도가 높은 위험시설을 통해 언제라도 활화산이 될 수 있는 폭발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코로나19에 취약한 고위험시설이 없다고 어느 누구도 단정할 수 없다.
우리나라도 지금 출구전략의 하나로 생활방역으로의 조심스런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특성을 고려할 때, 그리고 위 두 사례에서 보듯이, 이러한 전환이 사회적 거리두기의 ‘전면적 이완’으로 받아들여져서는 곤란하다. 밀집도 높은 공간에서의 다중집회는 여전히 엄격히 제한, 관리돼야 하고, 요양병원과 같은 고위험시설에 대한 모니터링은 더욱 더 강화돼야 한다. 개인과 집단 방역에 해당되는 여러 수칙은 일반 국민이나 해당 조직이 수용가능하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뒤따라야 ‘지속가능한 거리두기’가 사회적으로 정착될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와의 전쟁은 장기전으로 갈 것이다. 따라서 내가, 우리가, 우리 직장이, 우리 지역이,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대해 시민 참여형 논의가 본격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코로나19가 초래한 공중보건위기에서 차별적으로 더 위험에 노출되는 이들이 없도록 공동체 연대를 강화할 수 있어야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의 안전이 지켜질 수 있다.
코로나19의 싸움은 세계대전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싸움은 사람 간의 전쟁이 아니고, 인류와 바이러스와의 전쟁이다. 인류가 바이러스에 진 적은 없다. 이제 우리 개개인이 방역의 주체가 돼야 한다. 봄 날의 싱그러운 초록은 내년에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잃어버린 가족, 이웃, 동료는 다시 볼 수 없다. 우리의 ‘지속적 만남’을 위해 올 봄만은 ‘지속적 거리두기’를 꼭 당부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