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와 아사다 마오.
어쩌면 둘은 태어날 때부터 라이벌의 운명을 타고 났는지도 모르겠다. 두 선수는 1990년생으로 22살 동갑내기인데다 생일도 김연아가 9월 5일, 아사다가 9월 25일로 불과 20일 차이 밖에 나지 않는다. 키와 몸무게도 김연아 164㎝ 47㎏, 아사다 163㎝ 47㎏으로 엇비슷하다.
그동안 세계 피겨 스케이팅 역사상 최고의 라이벌은 여자 싱글의 경우 토냐 하딩과 낸시 캐리건(이상 미국), 남자 싱글은 브라이언 보이타노(미국)와 브라이언 오서(캐나다)가 꼽혔다.
하딩과 캐리건은 하딩의 전 남편이 캐리건을 피습한 사건으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보이타노와 오서는 1988년 캘거리 겨울올림픽에서 나란히 금메달과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이 경기는 당시 ‘브라이언 전쟁’으로 불리며 피겨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손꼽히고 있다. 은메달을 딴 오서는 김연아가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딸 때 코치를 맡아 더욱 화제가 됐다.
김연아-아사다 마오, 타임지 선정 역대 피겨 스케이팅 최고의 라이벌
김연아와 아사다는 미국의 <타임>지가 밴쿠버 겨울올림픽이 끝난 뒤 선정한 ‘역대 피겨 스케이팅 최고의 라이벌 10선’에서 단연 1위로 꼽혔다. 하딩과 캐리건은 2위, 보이타노와 오서는 3위였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노비스’, 즉 12살 이하 어린이 시절부터 지금까지 10년 동안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이루고 있다. 최근에는 나란히 성공적으로 복귀하면서 2014년 소치 겨울올림픽까지 라이벌 시즌2를 예고하고 있다.
피겨 스케이트 사상 최고의 라이벌로 꼽히는 김연아와 아사다 마오.(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
두 선수는 어릴 적부터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경기도 부천에서 태어난 김연아는 7살 때 처음 스케이트를 배웠다. 타고난 점프력과 리듬감을 앞세워서 초등학교 때 이미 중·고등학교 언니들을 따돌리고 국내 대회 우승을 독차지하면서 ‘피겨 신동’으로 불렸다.
12살 때 러츠·플립·살코우·토루프·루프까지 다섯가지 기술의 트리플 점프를 모두 완성하면서 단숨에 세계무대에서 통할 재목으로 인정받았다.
둘 다 피겨 신동…주니어 시절부터 두각
아사다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태어났다. ‘마오’라는 이름은 아버지가 일본의 여배우 다이치 ‘마오’ 팬이어서 지었다고 한다. 아사다의 언니 아사다 마이 또한 피겨 스케이팅 선수 출신인데, 은퇴한 뒤에는 아이스쇼와 경기 해설자로 활동하고 있다.
아사다가 존경하는 피겨 스케이터는 같은 나고야 출신의 이토 미도리로 그 선수의 의상을 물려받아서 입고 경기에 출전한 적도 있다.
아사다 역시 12살 때 처음 트리플 악셀 점프를 뛰었고, 14살 때인 2004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린 2004~2005시즌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주니어 여자선수로는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 점프에 성공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두 선수는 주니어 시절부터 끊임없이 국제 대회에서 우승을 다투면서 세계 피겨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주니어 시절 아사다는 여자 선수로는 쉽지 않은 트리플 악셀(공중 3회전 반)을 앞세워 김연아보다 조금 앞선 성적표를 받았다.
그러나 아사다의 필살기라고 할 수 있는 트리플 악셀은 항상 회전수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당시 심판들의 관대하고 느슨한 판정으로 정확한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를 앞세운 김연아가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김연아는 2002년, 12살 이하 트리글라프 트로피 노비스 부문에서 우승하면서 세계무대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2005년 3월에는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선수권대회 메달리스트의 영광을 차지했다.
당시 국내에 피겨가 도입된 지 111년 만의 세계선수권대회 첫 메달 소식은 빙상계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아사다 선수 역시 12살과 13살 때인 2002년과 2003년 전일본 노비스선수권대회에서 연거푸 우승하면서 일본 팬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또 2003~2004년에 노비스 대회 2개를 모두 석권했고, 2004~2005 시즌에도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과 주니어 세계선수권 등 4개 대회에 출전해 모두 우승을 차지하면서 일본 열도를 흥분시켰다.
2014년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의 승자는 누구일까? 연아와 마오의 라이벌 대결 시즌2가 시작됐다.(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
주니어 시절부터 엎치락뒤치락…김연아 밴쿠버 올림픽에서 여왕 등극
두 선수는 2006년 12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시니어 무대 첫 맞대결을 펼쳤다. 김연아는 고관절 부상에도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면서 우승을 차지했고, 아사다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면서 은메달에 머물렀다.
이듬해 3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김연아는 쇼트프로그램에서 피겨 스케이팅 역사에 길이 남을 ‘명연’을 펼치면서 여자 싱글 쇼트프로그램 최고 기록인 71.95점을 받았다. 하지만 프리스케이팅에서 잦은 점프 실수로 동메달에 머물렀다. 아사다는 이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내면서 김연아와의 시니어무대 맞대결 전적 1승1패를 만들었다.
시련은 김연아에게 먼저 닥쳤다. 2008년 고관절 부상이 심해진 것이다.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해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출전하는 투혼을 펼쳤지만 2007년에 이어 다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반면 아사다는 이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을 비롯해서 2007~2008시즌에 5개 대회에 출전해서 4개 대회 우승을 휩쓰는 저력을 선보였다. 하지만 아사다가 우승하지 못한 그랑프리 파이널에서는 김연아가 부상 투혼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김연아는 이후 메인 훈련지를 캐나다 토론토로 옮기고 재활과 훈련을 병행하면서 마침내 부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된다.
김연아는 부상 여파로 2008년까지 맞대결에서 3승5패로 뒤졌지만 2009년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를 꺾은 데 이어 2009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마침내 우승을 차지하면서 맞대결 전적을 5승5패로 만들었다.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최종 합계 207.71점의 점수를 받으면서 신 채점제가 도입된 이후, 여자 싱글 선수로는 최초로 200점을 돌파하게 된다.
또 2009년 10월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도 다시한번 역대 최고점수(210.03점) 기록을 갈아치우면서 아사다와의 맞대결에서 마침내 6승5패로 역전에 성공하게 된다.
두 선수 맞대결의 하이라이트는 밴쿠버 겨울올림픽이었다. 2010년 2월24일 열린 쇼트프로그램에서 아사다가 먼저 연기를 펼쳤는데 73.78이라는 개인 최고 점수를 세운다. 아사다의 지도자인 타라소바 코치는 옆에 있던 김연아가 들으라는 듯 격렬한 몸짓으로 환호성을 내질렀다.
김연아가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아사다 마오를 꺾고 우승, 먼저 피겨 여왕에 올랐다.(사진=저작권자(c)연합뉴스.무단전재-재배포금지) |
하지만 김연아는 침착하게 ‘007 제임스 본드 메들리’를 연기하면서 78.50점으로 순식간에 아사다의 기록을 넘어섰다.
하지만 4.72점 차이는 프리스케이팅에서 충분히 역전이 가능한 점수였다. 이틀 뒤 열린 프리스케이팅에서 김연아가 먼저 연기를 펼쳤다. 그리고 150.06이라는 엄청난 점수를 기록하면서 최종 합계 228.56점으로 여자 피겨 싱글 역사상 최고의 점수를 기록했다.
곧이어 아사다가 상기된 표정으로 링크에 들어섰지만 최종합계 205.50점에 그쳤다. 결국 김연아가 23.06점이나 차이를 벌리며 아사다를 누르고 올림픽 금메달을 영예를 안았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재격돌 예상
김연아가 올림픽 후유증을 앓는 동안 아사다도 지난해 12월 어머니가 간경변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상심의 늪에 빠졌다. 그 사이 피겨 여자 싱글도 춘추전국시대를 맞았다.
그러나 김연아가 12월 9일 독일에서 열린 NRW트로피 우승을 차지하면서 1년 8개월 만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아사다 역시 바로 전날 러시아 소치에서 막을 내린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4년 만에 통산 4번째 우승을 차지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두 선수의 맞대결은 현재까지 7승6패로 김연아가 근소하게 앞서 있다. 둘은 내년 3월 캐나다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2년 만의 맞대결이 예상된다. 그리고 부상같은 돌발 변수가 없는 한 2014년 2월 러시아 소치에서 다시한번 명승부를 펼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동훈(스포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