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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사자성어’ 유감

2016.12.27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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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그래도 크게 어렵진 않았다.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한자를 보면 뜻이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군주민수(君舟民水)’ 이야기다. “임금은 배, 백성은 물이어서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순자(苟子) 왕제(王制)편에 나오는 사자성어라고 한다. 작금의 시국을 풍자한 말인데 그 의미를 논하고자 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사자성어나 고사성어를 자주 쓴다. 이 말들의 묘미는 비유와 함축이다. 그래서 직유법이 아닌 은유법이고 대유법이다. 옛사람들의 지혜와 경험에서 온 삶의 교훈과 깨달음이 네 글자(고사성어는 네 글자가 아닌 것도 많지만)에 담겨있다. 대부분 중국의 역사나 고전, 경전이 출처다.

생각 없이 자주 쓰는 고사성어의 연원을 알고 나면 그 단어가 비로소 내 것이 된 거 같은 앎의 기쁨이 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읍참마속(泣斬馬謖), 토사구팽(兎死狗烹) 같은 경우가 그럴 것이다. 나는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아야 하고 학교에서도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한자의 의미를 잘 모르는 한글세대에게는 사자성어나 고사성어가 그냥 한국말처럼 들릴 뿐이다. 예를 들면 조강지처(糟糠之妻), 오리무중(五里霧中), 일거양득(一擧兩得), 전전긍긍(戰戰兢兢), 자포자기(自暴自棄), 기우(杞憂), 계륵(鷄肋) 이런 단어들은 언뜻 우리말 같지만 중국의 역사적 사례와 경전에서 나온 말이다. 

교수신문은 2001년 이후 12월 말에 연례행사처럼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다. 우리가 살아온 한 해의 정치 경제 사회상황과 시대정신에 부합한 것을 찾는다. 알다시피 15년간 선정된 것들은 대부분 우울하고 어두운 것이었다. 교수신문, 일간지 등에 칼럼을 쓰는 교수와 주요 학회장, 전국 대학 교수협의회장 등 2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관심을 갖고 비교적 크게 보도한다.

나도 이맘때가 되면 올해의 고사성어를 기다린다. 그런데 유감스러운 생각이 자주 들었다. 선정된 사자성어가 대체로 언중(言衆)이 잘 쓰지 않는 어려운 말이어서 해설을 읽어봐야만 의미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기 세 번만은 다들 아는 말이었다. 오리무중(五里霧中, 2001), 이합집산(離合集散, 2002), 우왕좌왕(右往左往, 2003)이었다. 그런데 2004년부터는 과문하고 무식한 탓인지 몰라도 의미를 잘 알 수 없었다.
 
차례로 복기해 보자. 당동벌이(黨同伐異, 2004,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 다른 무리를 배격함), 상화화택(上火下澤, 2005, 위에는 불, 아래는 연못처럼 서로 분열하는 것), 밀운불우(密雲不雨, 2006, 짙은 구름에도 비가 오지 않는다), 자기기인(自欺欺人, 2007, 자신을 속이고 남도 속인다), 호질기의(護疾忌醫, 2008, 병을 숨기고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 방기곡경(旁岐曲徑, 2009, 샛길과 굽은 길), 장두노미(藏頭露尾, 2010, 머리는 감추었지만 꼬리는 드러나 있다), 엄이도종(掩耳盜鐘, 2011,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 거세개탁(擧世皆濁, 2012, 온 세상이 흐리다), 도행역시(倒行逆施, 2013, 순리를 거스르다), 지록위마(指鹿爲馬, 2014,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한다), 혼용무도(昏庸無道, 2015,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도덕이 없다). 이 중 내가 확실히 아는 건 지록위마뿐이다. 나는 학창 시절에 사자성어와 고사성어를 열심히 외운 세대다. 올해의 사자성어인 군주민수(君舟民水)도 사실 들어본 말은 아니다. 

한 해 우리 사회의 이슈를 우회적으로 비유하는 적절한 말을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설문에 답한 교수들도 다 익히 알고 있는 말인지 솔직히 의문스럽다. 나에겐 그들만의 현학의 잔치이거나 지식의 과시처럼 들린다. 그리고 선택된 대다수가 중국 역사와 경전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 선조가 남긴  고사성어나 사자성어 중에도 뜻이 깊은 것이 많은데 굳이 중국의 문화유산에서 찾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

어려운 단어는 그 의미가 아무리 좋아도 기억 속에서 바로 사라진다. 굳이 머리에도 들어오지 않는 그 생소하고 건조한 중국말을 화두로 잡아 함께 반성하고 교훈으로 삼을 이유가 있을까. 

서양에도 우리식 고사성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리스 로마 신화나 역사, 종교, 문학에 등장해 사람들이 자주 쓰게 된 말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루비콘강을 건너다’, ‘판도라의 상자’, ‘지킬과 하이드’,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같은 표현이 해당될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제언하고 싶다. 대중이 잘 모르는 어려운 사자성어를 선택하기보다는 차라리 우리 시가의 하나인 가사(歌辭)나 시조, 근현대 문학 속 시나 소설의 빼어난 한 구절 또는 단어는 어떨까. 입에 착 달라붙고 귀에 쏙 들어오는 정겨운 우리 속담도 좋다.

교수신문은 신년 초에 ‘희망의 사자성어’도 발표해왔다. 올해의 사자성어에 비해 큰 관심은 받지 못하지만 새해 한국 사회에 대한 바람을 담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2013년에는 ‘제구포신(除舊布新, 묵은 것을 없애고 새 것을 펼친다)이었다. 2014년에는 “미망에서 돌아와 깨달음을 얻자”는 의미의 ‘전미개오(轉迷開悟)’가, 2015년에는 ‘정본청원(正本淸源)’이었다. “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이다.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런데 2016년에는 변화가 있었다. 용비어천가에 나오는 순우리말인 ‘곶 됴코 여름 하나니’를 선정한 것이다. 꽃이 무성하고 열매가 가득하길 바라는 비나리다. ‘희망의 사자성어’가 아닌 ‘희망의 말’로 바뀐 것이다. 어려운 한자 한문 형식의 사자성어를 탈피하고 우리 말 우리 글로 된 것을 뽑기로 한 것이다.

연말에 발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도 그랬으면 좋겠다. ‘군주민수’에는 별 감동이 닿지 않는다. 백성을 위하고 섬긴 임금의 사례나 어지러운 세상을 한탄한 우리 시조도 많고, 군주가 지녀야 할 덕목을 가르친 우리 선조들의 빼어난 문집도 문장도 많다. 근현대 시에도 얼마든지 어울리는 구절이 있을 것이다. 교수뿐만이 아니라 문인들도 참여한다면 정말 시대가 공감하는 촌철살인이 나오지 않을까.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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