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필의 ‘미술 대 미술’은 새해부터 서술관점을 한층 확장하여 공통분모로 묶을 수 있는 동서양의 다양한 미술작품들을 통해 인간의 삶에 필요한 가치와 의미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인간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작품들을 시간과 역사를 넘어 새롭게 해석하고, 스스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내용으로 풀어갈 것입니다. (편집자 주)
잠은 인간에게 필요한 휴식이다. 잠이 부족하면 정신이 혼미하고, 집중력이 떨어지고, 무엇보다 건강마저 아슬아슬해진다.
밀레<낮잠>, 1866년, 종이에 파스텔, 29.2×41.9cm |
일상을 소재로 한 수많은 그림 중 잠을 주제로 한 그림들이 많다. 밀레의 <낮잠>은 잠과 관련한 그림하면 떠오르는 대표작이다.
프랑스 바르비종파를 이끈 장 프랑수아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는 <이삭줍기>, <만종>이란 걸작으로 대중적 사랑을 받은 화가이다.
바르비종의 농촌 풍경을 주제로 진실한 삶을 살아가는 소박한 농부들의 일상을 사실주의 화풍으로 담아냈다. <낮잠>은 밀레가 1858년부터 1867년까지 농부들의 일과를 즐겨 그렸던 연작 중의 하나이다.
농사일 하던 부부가 짚더미에 누워 잠들어 있는 장면이다. 두 개의 낫과 쌓여있는 짚더미에서 아침부터 밭에 나와 일한 노동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낮잠>은 극빈층 소작농의 모습을 담은 <이삭줍기>여인상이나 <만종>의 부부상과 다른 마음을 갖게 한다.
그림을 보고 있으면 나른해지는 정오 잠깐의 휴식이 주는 달콤함을 맛본 듯 기분이 좋아진다.
이는 작품의 실제 모델이 된 농촌생활의 고달픈 현실을 잊은 채 낮잠으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주는 편안함이 크다.
밀레의 <낮잠>과 가장 많이 비교되는 그림은 고흐의 <정오의 휴식>이다. 고흐의 대중적 인지도 때문에 밀레의 <낮잠>보다 고흐의 <정오의 휴식>을 더 많이 기억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제로는 고흐가 밀레의 작품을 보고 모방한 것이다.
고흐 <정오의 휴식>, 1889년, 캔버스에 유채, 91×73cm |
밀레의 <낮잠>에서 인물을 좌우로 바꾸었을 뿐 인물의 자세, 주변에 배치된 사물 등 전체적인 구성이 유사하다.
좌우가 바뀐 것은 고흐가 아드리앙 라비에유(Adrien Lavieille,1848-1920)가 밀레의 <낮잠>을 판화로 찍은 작품을 보고 모사했기 때문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원작을 보지 않고 판화를 보고 그렸기 때문에 좌우가 바뀌고 배경도 일부 달라진 것으로 보고 있다. 밀레의 색감과 필치, 분위기와 차이가 있다.
고흐가 밀레를 존경하고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제 고흐는 밀레의 <낮잠>을 무려 아흔 번이나 모사했다.
고흐가 밀레의 작품에서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마도 고흐는 밀레의 <낮잠>을 보면서 더없는 편안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어쩌면 자신의 불안정한 생활에서 편안함을 찾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밀레를 정신적 아버지로 여겼던 고흐에게 밀레의 <낮잠>은 그 어떤 것도 대신하지 못한 그만의 수면제이자 심신안정제 역할을 했던 셈이다.
이 그림이 1889년 생레미 정신요양원에 들어간 이후 1890년에 제작된 그림이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고흐가 사망하기 6개월 전에 완성한 <정오의 휴식>은 그림을 통해서나마 현실에서 맛보지 못한 달콤한 안식을 찾고자 했던 고흐의 절대적 희망이 응축된 그림으로 꼽을 만하다.
잠을 주제로 한 그림 중에는 밀레나 고흐의 그림처럼 노동의 힘든 과정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잠과 전혀 다른 분위기의 작품도 있다. 아름다운 여자를 모델로 삼아 사실적으로 그리거나 이상적인 이미지로 표현한 그림 등 다양한 그림들이 있다.
잠자는 여인을 그린 대표적인 그림으로 프레데릭 레이턴 (Frederic Leighton, 1830-1896)의 <Flaming June>이란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대중성보다는 마니아층에 사랑받는 작품이다. 화면을 가득 차지하고 있는 의문의 여인은 세상모르게 잠에 빠져있다.
레이턴 <Flaming June> |
프레데릭 레이턴은 영국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이름이지만, 생전에 그가 자국의 문화예술계에 미친 영향력은 대단했다.
‘프레데릭 레이턴 경(Sir Frederic Leighton)’이란 칭호에서 당시 그의 명성을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역사적이고, 성서적, 고전적인 주제가 주를 이룬다.
<Flaming June>이란 작품은 1895년(65세)에 그린 것으로 레이턴의 고전적인 화풍이 잘 드러난 걸작이다. 정사각형의 캔버스 안에 그려진 잠들어 있는 여인의 자세와 옷차림이 대단히 매혹적이다. ‘Flaming June’이란 제목처럼 여인의 붉은 주황색 드레스가 압권이다.
얇은 원피스 사이로 몸매를 그대로 드러나는 시스루(seethrough)가 여인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킨다. 잠든 표정을 보면 평화롭기 그지없다.
장시간 지속하기 어려운 수면자세로 보아, 나른한 오후에 잠시 기대어 잠들었다는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잠자는 님프(주피터의 아내 주노)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작품의 실제 모델은 레이톤이 막대한 유산을 남길 정도로 매우 친밀했던 도로시 딘(Dorothy Dene 1859-1899)으로 추정된다.
밀레, 고흐, 레이턴 그림 외에도 동성애적 사랑을 선정적인 화면구성으로 표현한 사실주의 대가 쿠스타브 쿠르베의 <잠>(1866년)을 비롯해 사막에서 잠들어 있는 집시 여인의 모습을 동화적으로 그린 루소의 수수께끼 같은 그림 <잠자는 집시>, 의자에서 잠든 사랑하는 연인 마리-테레즈 월터를 사실적 표현보다 포근함이 가득한 이상적인 모습으로 그린 피카소의 <꿈>, 순간 정지화면 같은 그림에서 성적흥분을 은밀하게 불러일으키는 발튀스의 <잠자는 소녀> 등 잠을 주제로 한 그림은 다양하다.
피카소의 <꿈>, 1932년, 캔버스에 유채,130×97cm / 발튀스 <잠자는 소녀> 1943년, 보드에 유채, 79.7×98.4cm |
미술사에서 잠에 관한 그림이 다채로운 것은 잠자는 인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가 그만큼 다양하다는 방증이다.
타인의 잠자는 모습, 사랑하는 연인의 잠든 모습 등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잠을 통해 작동하는 꿈이나 무의식에 영향을 받은 예술가의 영감 등이 각양각색의 작품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잠이 보약이다’라는 말이 있지만, 잠을 잘 자는 현대인은 많지 않다. 사람에게 꼭 필요한 적정수면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대인이 갈수록 줄어든다. 잠을 제대로 자고 싶을 때 잠을 주제로 한 그림으로나마 편안함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덤>
◆ 변종필 미술평론가
문학박사로 2008년 미술평론가협회 미술평론공모 당선, 200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부문에 당선됐다. 경희대 국제캠퍼스 객원교수, 박물관·미술관국고사업평가위원(2008~2016), ANCI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며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