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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수국을 좋아하나요?

2017.06.30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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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포도가 익어가는 계절입니다. 혹시 수국을 좋아하나요? 국수가 아니라 수국 말입니다. 요즘 화원에 가면 터질 듯 피어난 수국에 숨이 막힙니다. 

수국꽃의 색을 유심히 들여다봅니다. 햇살과 흙과 물이 어찌 저런 오묘하고 신비한 색깔을 빚어낼 수 있을까요? 파랑이라고 다 파랑이 아닙니다. 하늘빛이나 녹색이 도는 파랑도 있고, 남프랑스 코트 다쥐르 해안의 쪽빛처럼 형언할 수 없이 깊은 파랑도 있죠. 그 농밀한 코발트 블루에 심장이 물들어 버립니다. 보라는 또 어떤가요? 보라도 다 보라가 아닙니다. 청색이 아련히 감도는 보라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노라면 호흡이 가빠옵니다. 동화 속처럼 아득해집니다.  

순백 핑크 연분홍 연노랑 빨강 파랑 남색 청록 연녹색 하늘색 연두 연보라 청보라 진보라 자주색…. 미묘한 배합(配合)과 농담(濃淡)과 점층(漸層)이 한 송이 안에서 시시각각 조화를 부립니다.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세상 모든 색상의 섞임이 꽃 속에 존재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자태는 또 어떤가요? 푸른 나비가 떼 지어 꽃으로 피어난 것처럼(시인 최원정), 색색의 설탕물을 들인 솜사탕처럼, 여백을 주지 않고 탐스럽게 피어난 꽃은 주변의 것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고귀함입니다. 각각이며 하나입니다. 꽃을 받친 녹색의 넓은 잎들은 힘차게 빛납니다. 참외 배꼽처럼, 작은 십자단추처럼 손톱만한 것들이 모여 있는 피지 못한 꽃봉오리들은 우리말 네 글자 형용사를 시험합니다. 다닥다닥 조롱조롱 자잘자잘 몽글몽글 알록달록….

한 걸음 물러서서 수국 나무 전체를 바라봅니다. 우아하고 청초하며, 풍성하며 단촐하고, 당당하며 수줍습니다. 예식장 카펫에 막 첫 발자국을 떼는 6월의 신부 같죠. 그래서 여름 신부들은 하얀 수국 부케를 드나 봅니다.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해안도로에 활짝 핀 수국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제주시 구좌읍 동복리 해안도로에 활짝 핀 수국이 빗방울을 머금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장마가 시작됩니다. 수국은 장마를 알리는 꽃입니다. 비의 꽃입니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오후, 베란다에 앉아 화분에 피어난 파스텔톤의 풍성한 수국과 창문에 흐르는 빗방울의 배경을 무심히 바라보며 진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노라면 호사스러우면서 왠지 처연합니다.

여름날 새벽 등산길에서 만나는 산수국은 또 얼마나 경이로운지요. 안개비 내리는 숲길을 걷다 초목 사이로 살짝 고개를 내민 산수국을 발견합니다. 화원의 수국마냥 화사하지 않고 키가 작지만 소박하게 아름답습니다. 시골 색시마냥 수줍고 청초합니다. 그 아이를 보고 발길을 멈추지 않거나 탄성을 지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첫사랑에 가슴 졸여보지 못한 사람이요, 삶에 무심한 사람입니다.

흐벅지게 핀 산수국 오져서
차마 아주 떠나지는 못하고
가담가담 오시어 가만히 들여다보는
여우비 갈맷빛 이파리마다 조롱조롱
매달려 가슴 졸이는 물방울

나에게도 산수국처럼 탐스러웠던
시절 있었지 물방울처럼 매달렸던
사랑 있었지 오지고 오졌던 시절

한 삶이 아름다웠지
한 삶이 눈물겨웠지
(산수국/허형만)

수국의 원래 이름은 여러 개입니다. 당나라 대시인 백거이는 어느 절간에서 수국을 처음 보고 쓴 시에서 자양화(紫陽花)란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보랏빛 태양의 꽃이란 뜻이죠. 중국에선 수구화(繡毬花)라고도 합니다. 비단으로 수놓은 공입니다. 색이 변한다 하여 팔선화(八仙花), 칠변화(七變花)라는 별명도 있습니다. 수국(水菊)의 수는 물입니다. 학명은 ‘하이드랜지어(hydrangea)’입니다. 라틴어로 물을 담는 그릇이라는 뜻입니다.

혹 수국의 꽃말을 아시는지요? 특별합니다. 진심과 변심이라는 상반된 두 가지를 갖고 있습니다. 꽃의 색깔에 따라 하얀 수국은 변심, 보라는 진심, 파랑은 냉정, 빨강은 처녀의 꿈이라고 꽃말을 붙이기도 합니다만, 그건 호사가들이 지어낸 것 같습니다. 정반대의 꽃말을 함께 가진 건 수국의 색이 시간에 따라 변하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수국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두 가지 식물학적 비밀이 있습니다. 바로 색깔과 생식이죠. 사람들은 수국의 색이 변화하는 이유를 궁금해 합니다. 수국은 일반적으로 노란색이 도는 흰색으로 피기 시작해 점차 청색이 되고 여기에 붉은 색을 더해 보라색으로 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토양의 성분 때문입니다. 

중성 토양에선 하얀 색이, 산성이 강한 흙에서는 파란 색이, 알칼리성에선 빨간 색이 돋아납니다. 자연의 리트머스 페이퍼죠. 수국에 있는 안토시아닌 성분과 토양 속의 알루미늄 이온이 조화를 부리는 겁니다. 알루미늄 이온이 산성과 알칼리성 흙에서 녹는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죠. 같은 밭에서도 수국마다 색이 변화무쌍하고, 한 그루에서도 뿌리의 길이나 수분 흡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른 색으로 핍니다.

당연히 땅의 성질을 바꾸면 자기가 좋아하는 색을 얻을 수가 있겠죠. 파란 수국을 사와서 계란껍질을 곱게 갈아 화분에 뿌리면 붉은 꽃으로 변해 갑니다. 수국 주위에 백반을 묻으면 흰색의 꽃이 푸르게 변합니다. 지혜로운 선조들은 수국의 색을 보고 퇴비량을 조절했다고 합니다. 꽃을 자기가 원하는 색깔로 피게 하는 첨가제 비료도 팝니다.

또 하나의 비밀은 수국은 사실 거짓꽃이라는 겁니다. 위화(僞花)죠. 헛꽃입니다. 수국은 종류가 무척 많지만 일반적으로 숲에서 자생하는 산수국 종류와, 꽃집에서 흔히 보는 풍성한 관상용 수국이 있는데 후자는 일본에서 개량한 것입니다.

산수국의 참꽃(有性花)은 가운데 몰려있는데 작고 꽃잎이 퇴화해 볼품이 없습니다. 벌과 나비를 유인하지 못하죠.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가장자리에 크고 예쁜 꽃(無性花)을 스스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건 꽃받침이 변형된 것이지 엄밀히 말하면 꽃이 아닙니다. 그걸 보고 내려앉은 벌나비가 참꽃에 있는 암술과 수술을 수정시켜주는 거죠. 꽃가루받이가 이뤄지면 꽃받침은 뒤집어지며 말라 죽고 열매가 영글기 시작합니다. 기가 막힌 분업이자 협업이죠.

그런데 일본이 개량해 관상용으로 널리 퍼진 수국은 산수국의 진짜꽃 부분을 완전 퇴화시키고꽃받침만 풍성하게 피어나도록 한 겁니다. 유성화는 없애고 무성화만 남게 한 거죠. 거세된 수국은 연애를 못하니 삽목을 해서 번식시킵니다. 인간의 손이 아니면 생명을 이어갈 수 없는 식물인 겁니다. 우리나라 자생종인 산수국 탐라산수국 등수국 바위수국 등은 종자번식합니다.

사실 꽃은 인간 보고 감상하라고 피는 것이 아니죠. 식물의 처절한 생식기관입니다. 인간은 꽃의 입장에서 보면 최고로 진화한 벌나비죠. 그 아름다움에 혹해서 인위적으로 대규모로 번식을 시켜주니까요.  

색도 변하고 꽃도 진짜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국을 지조 없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그런데 그러면 어떻습니까? 꽃받침이 아름답게 변형돼 그걸 꽃으로 생각하게 하는 식물들도 많이 있습니다. 수선화 산딸나무 등이 그렇습니다. 산수국이든 개량수국이든 번식하고 사랑받기 위한 애절한 생존전략인 겁니다. 이 세상 한 가지 헛되고 사사로운 게 없습니다.

보란 것 없이 사는 일
늘 헛되구나 그랬었는데

왕시루봉 느진목재 오르는
칙칙한 숲 그늘에 가려
잘디잘고 화사하지도 않은
제 꽃으로는 어쩔 수 없어
커다랗게 하얀, 혹은 자줏빛
몇 송이 헛꽃을 피워놓고
벌나비 불러들여 열매를 맺는
산수국 애잔한 삶 들여다보니

헛되다고
다 헛된 것 아닌 줄 알겠구나
(산수국-섬진강 편지20/김인호)
            
요즘 전국에서 수국 축제가 열리는 곳이 많습니다. 가장 유명한 곳은 부산 태종대에 있는 태종사죠. 대단한 수국밭입니다. 스님이 수십 년간 심었다는데 삼천 그루가 넘습니다. 제주는 곳곳이 수국 천국입니다.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는 종달리 수국길을 으뜸으로 치지만 한림공원, 휴애리, 사려니숲, 카멜리아힐 같은 공원이나 농원, 숲에서 수국 축제를 합니다. 제주는 본디 탐라수국의 본향이죠. 곤지암 화담숲도 수국이 많고 좋기로 유명하고 웬만한 지자체마다 수국 명소가 하나둘 있습니다.

여름에는 수국이 있어 시원합니다. 눈이 호강합니다. 작은 행복입니다. 수국을 좋아하시나요? 지금 가장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기도가 잘 안 되는
여름 오후
수국이 가득한 꽃밭에서
더위를 식히네

꽃잎마다
하늘이 보이고
구름이 흐르고
잎새마다
물 흐르는 소리

각박한 세상에도
서로 가까이 손 내밀며
원을 이루어 하나 되는 꽃

혼자서 여름을 앓던
내 안에도 오늘은
푸르디 푸른
한 다발의 희망이 피네

수국처럼 둥근 웃음
내 이웃들의 웃음이
꽃무더기로 쏟아지네
(수국을 보며/이해인)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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