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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식이’를 위한 변명

2017.11.30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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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들과 삼식이 매운탕을 먹었다. 삼식이는 산란기인 이맘때가 제철이다. 삼식이를 본 사람은 아마 그 흉측한 모습에 놀랄 것이다. 아귀와 함께 못 생긴 물고기로는 쌍벽을 다툰다. 못 생긴 물고기가 맛은 좋다. 살이 부드러워 매운탕이나 속풀이로 제격이다. 삼식이의 표준어는 ‘삼세기’다. 쏨뱅이목 삼세기과에 속한다. 강원도에서는 ‘멍텅구리’라고도 하고 전라도에서는 삼식이로 통한다. “이런 삼식이 같은 놈”이라는 욕은 그 생김새에서 유래했다.

그런데 한 친구가 매운탕을 앞에 놓고 질문을 했다.
“삼식이가 어디에 사는지 알지?”
“깊은 바닷속에 살지 않나.”
“넌 아직 삼식이가 아닌가 보네.”
친구들의 웃음소리에 비로소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이런 것도 ‘아재 개그’인지는 몰라도, 삼식이의 주서식지는 심해가 아니다. 정답은 안방이다. 서식지에서 쫓겨나고 지위는 더 격하돼 이제는 ‘삼세끼’가 되어버렸다. 존경스런 형님뻘로 영식님, 일식씨, 두식군이 있다.

은퇴한 남자들의 모임에서 삼식이는 빠지지 않는 술안주다. 누군가 새 버전을 소개하면 한바탕 웃고 서로를 쳐다본다. 하지만 짐짓 호탕한 체하는 그 웃음 속에 자조와 울분이 있음을 서로 모를 리 없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이날 들은 새 버전은 이런 것이다. 
“이사갈 때 은퇴한 남편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애완견을 안는 것.”
“아내가 다이아 반지 끼고 잘 차려 입고 외제차 타고 여고 동창회에 갔는데, 시무룩해져 돌아와 이유를 물으니 ‘나만 남편이 있더라’고 말하더라.”
이쯤 되면 늙은 남편은 개보다도 못한 신세요, 일찍 죽어주는 게 도리인 것이다.

은퇴해서 집에 눌러 앉은 남자에 대한 블랙 유머가 우리 사회에 넘쳐나고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삼식이’나 ‘은퇴 남성’을 검색하면 별의별 신조어와 유머들이 생산 유통되고 있다. 누가 만들어내는지는 몰라도 상상력과 창의력이 놀랍다. 좀 재미있다 싶으면 금세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진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세상물정에 어둡다는 취급을 받는다.

(착각일지 모르지만) 나는 아직까지는 ‘다행히’ 아내에게 ‘끼니 수’로 불리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말 궁금했다. 친구 사이니까 정말 한번 솔직하게 까보자고 제안했다. 진짜로 아내로부터 삼식이 취급을 받는지. 대답은 대체로 이랬다.
“그냥 웃자고 하는 말 아닌가. 요즘 세태가 너무 팍팍하다 보니까. 그런 말 들으면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뭐 같이 웃어주면 돼. 사내가 그리 쫀쫀하게 따질 일 있어? 아내한테 잘들 하자고. 자, 우리 모두 삼식이를 위하여!”
 
남자는 늙어도 사내다. 세태가 못마땅하긴 해도 아내를 원망하는 친구는 없었다. 한국의 남편들은 월급봉투를 내놓지는 못 한다 하더라도 가장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유달리 강한 DNA를 갖고 있다. 영화 ‘국제시장’(2014년)이 한국 영화 역대 2위 관객(1426만 명)을 기록한 것은 그런 한국적 정서에 모두들 공감했기 때문이다. 노인이 된 덕수가 아버지 영정을 보며 혼자 울면서 하는 말, “아버지, 내 약속 잘지켰지예? 이만하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요.” 그게 한국 중년의 자화상이고 한국 남자의 눈물이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에서 중년의 은퇴남은 이리저리 치이고 조롱당하고 ‘은퇴남=삼식이’가 공식처럼 회자되고 있을까. 우리는 우울했다.

남녀 출연자들이 나와서 수다를 떠는 TV 예능프로를 보고 있자면 대한민국의 은퇴남은 대체로 힘이 빠지고, 고독하고, 갈 데가 없고, 철이 없고, 제 몸 하나 제대로 건사 못 하고, 아내 눈치나 살피고, 그러면서도 소통할 줄 모르고, 아는 체하고, 권위의식은 버리지 못하는, 가정과 사회에 별 이득이 되지 않는 존재로 묘사된다. 사회자는 성 대결을 부추긴다. 예능은 서로를 헐뜯을수록 시청률이 올라간다. 남편 흉도 보고 아내 험담도 한다. 결과는? 대체로 남성 이 먼저 ‘깨갱’ 하며 여성의 판정승으로 끝난다.  

통계치를 보면 남자에게 더 문제가 있는 게 맞는 듯하다. 이혼하는 중년부부 열 쌍 중 8~9쌍은 아내가 먼저 요구하는 경우라고 한다. 상처한 남편은 그렇지 않은 남성보다 사망률이 네 배나 높고 자살률도 두 배 이상이다. 반면 남편과 사별한 아내는 큰 차이가 없다. 은퇴한 남성이 살아가는(사는 게 아니고 ‘생존’으로 표현된다) 지혜를 말해주는 책이나 강좌나 칼럼은 차고 넘치는데, 중년 여성이 남편과 잘 살아가는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것들은 보지 못했다.

한 친구가 어려운 학술용어를 들이댔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fallacy of hasty generalization)라는 심리학 용어다. 인간이나 현상의 한 단면만을 보고 전체도 “당연히 그럴 것이다”고 단정하는 오류라고 한다. ‘하나만 보면 열을 안다’는 식이다. 인종적 편견이나 지역감정이 대체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학술적 분석까진 못 미쳐도, 나는 삼식이는 혐오 풍조의 확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된장녀’가 상징하는 여혐, ‘한남충’으로 불리는 남혐, 여혐을 혐오하는 ‘여혐혐’처럼 우리 사회에 점차 골이 깊어가는 성별 혐오의 풍조가 나이로 공격 대상을 넓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남녀 혐오의 최전선인 ‘일베’나 ‘메갈리아’는 그들만의 좀 특별한 리그로 받아들여지지만, 나이 혐오는 별 저항 없이 일반적으로 통용된다는 것이다.
그 대표어는 ‘꼰대’와 ‘아재’를 지나 단연코 ‘개저씨’다. ‘꼰대’라는 말은 소신이라도 돋보인다. ‘아재’는 예능 프로에서 몇몇 중년들의 활약 덕에 친숙한 이미지로의 반전에 성공했다. 그런데 ‘개저씨’는 무개념에다가 나잇살로 갑질한다는 욕이다. 인간미가 전혀 스며들지 않은 진짜 욕이다. 백주대낮이든 음습한 곳이든 개저씨는 잠재적 가해자다. 개저씨와 삼식이가 다른 건, 전자는 사회적 문제이고 후자는 가정적 문제라는 점이다. 삼식이는 나이 혐오에 남편이라는 구체적 대상이 덧씌워진 것이다. 

정말 남편이 일찍 죽으면 행복해지는 아내가 몇이나 될까. 대다수 한국의 가정은 여전히 단란하게 살기를 원하고, 대다수 보통의 아내는 여성호르몬의 변화가 있다 해도 여전히 현모양처라고 생각한다. 블랙 유머가 때로는 각성과 사유를 주지만, 너무 넘쳐나면 유머의 지위를 잃어버린다.

그런데 이런 의문도 들었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말이 있는 나라에서, 왜 하필 하루 세 끼 먹는 걸 갖고 조롱의 소재로 삼을까.

많은 남편들이 청소나 설거지, 분리수거 같은 가사에 크게 인색하지는 않은데, 유독 잘 넘지 못하는 벽이 밥이다. 밥은 한국 사회에서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밥은 곧 밥상이다. 밥상은 가족의 위계질서가 그나마 유지되는 몇 안 되는 곳이고, 가장의 권위와 체면, 아내의 정성과 사랑, 가족의 화목이 확인되는 곳이다. 전기밥솥 사용법이 세탁기 작동보다 쉬운데도 남편들이 아내가 차려주는 밥에 집착하는 건, 그런 잠재의식 때문이 아닐까. 어느 분께서이 시대 중년 남성들에게 “중년기는 곧 취사기(炊事期)”라고 일갈하신 칼럼을 읽었는데 크게 공감한다.

아내도 남편만큼 고생했다. 지근거리에서 헌신하느라 척추협착증이니 족저근막염이니 이리저리 몸도 고장났을지 모른다. 흔한 말로 “내가 그동안 어떻게 가족과 회사와 나라를 위해…” 라며 공치사를 하자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은퇴한 중년 남편들이 돈도 못 벌고 거실에서 섭생한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사회가 도매금으로 삼식이 이미지를 씌우고, 때로 가치의 변화에 적응 못 한다 해서 ‘개’라는 접두사를 싸잡아 붙이는 세태는 온당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성별과 나이 혐오만을 부추기는 것이다.

아프리카 수사자는 늙으면 무리에서 쫓겨난다. 광야를 헤매다 굶어죽는다. 그게 수사자의 운명이다. 인간의 가정은 밀림의 법칙만이 지배하는 ‘동물의 왕국’이 아니다. 비록 사냥과 생식의 힘이 소진했다 해도, 빛나는 갈기가 찢기고 날카로운 발톱이 무디어졌다 해도, 한국의 중년은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여전히 가장이고 남편이고 아버지고 그리고 사람이다. 

한기봉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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