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출발하자 어김없이 새우깡을 들고 갈매기를 부르는 풍경이 벌어진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즐겨 했는데 이제 애 어른 할 것 없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즐거워한다. 반시간을 이렇게 노닐다보니 하는 사람은 흥미를 잃고 갈매기도 먹을 만큼 먹었는지 관심이 없다. 이럴 때쯤 갈매기들 사이로 삽시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갈매기가 안내하는 삽시도. |
서해 섬 중에 요즘 가장 주목을 받는 섬이다. 섬 면적에 비해 해안둘레길이 길고 좋다. 그만큼 해안선 굴곡이 크다. 그 결과 다양한 갯벌이 해안선을 이루고 있다. 서쪽에 해수욕하기 좋은 모래해변과 면삽지나 물망터처럼 해식애와 해식동굴이 발달했다.
특히 진너머, 거멀너머, 밤섬, 수루미 등 모래도 좋고 수심도 적당한 해수욕장이 있고 그사이 작은 해변도 있다. 동쪽 해변은 혼합갯벌이 발달해 바지락, 게, 낙지 등이 서식하는 마을어장과 양식장이 있다. 배는 하루에 세 번 조차에 따라 밤섬이나 술뚱 두 곳 중 적당한 곳에 닿는다.
섬길을 걷는 기쁨
걷겠다는 생각으로 섬에 가면 생각보다 많은 일이 벌어진다. 삽시도는 해안길, 숲길, 모래해변길 모두 좋은 곳이다. 술뚱에 내려서 밤섬으로 가는 길은 해안길을 택했다. 도로와 해안을 따라 걷는 길이니 지루할 수 있다. 마을어장과 접해 있는 길이다.
이 길을 택한 것은 물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새들이 바닷가로 나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서해 여러 섬에서 이맘때 검은머리물떼새를 곧잘 발견할 수 있다. 언젠가는 신안 염전저수지 제방에서 둥지와 알을 발견했다. 안면도 황도 바지락 어장 옆 돌섬에서는 알을 품는 녀석을 확인하기도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바닷물이 만조에 이르자 인도 가까운 곳으로 삼삼오오 몰려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갈매기와 섞여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굴, 조개 등 조개류가 많은 삽시도를 이들이 그냥 둘리가 없다. 밤섬까지 가는데 20마리는 본듯하다.
휴식 중인 검은머리물때새. |
삽시도는 윗마을과 아랫마을 그리고 밤섬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술뚱은 윗마을과 아랫마을에 가깝다. 삽시도 중심지라 할 만큼 사람들이 모여 살고 학교(분교)와 보건소 등이 모여 있다.
같은 배를 타고 온 중년 여행객 몇 명이 앞서가다 갯벌로 내려섰다. 손에는 호미와 그릇이 들려있었다. 바지락을 캐기 위해 삽시도에 온 사람들이다. 그때 지나던 주민이 ‘거기서 나오세요. 여기는 양식장입니다. 체험장이 아니에요!’라며 소리를 질렀다. 엉거주춤 상황을 살피다 도로로 올라와 ‘들어가지 말라고 표지판이라도 세워 둬야지’라며 지나는 주민 뒤통수에 기어이 한마디를 했다.
분명히 이곳은 마을어업을 하는 양식장으로 해산물을 채취할 수 없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삽시도는 어촌체험마을이다. 체험을 원한다면 신청을 하면 편하게 안내를 받을 수 있다. 또 숙박을 하면 펜션에서 준 노란통을 가지고 일러준 체험이 가능한 곳에서 바지락 등을 채취할 수 있다. 이곳에서도 해삼이나 전복 등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양식중인 것은 채취할 수 없다. 삽시도는 작년까지 소금을 생산한 염전이 있고, 작은 섬치고 너른 논도 있다.
걷기 좋은 ‘섬 산림욕장’
수루미해변 산책길. |
복쟁이끝에서 밤섬까지 해안은 모래갯벌이 발달했다. 이곳은 여행객들도 바지락채취가 가능한 곳이다. 숙박을 하는 여행객에 한해 삽시도번영회에서 노란통을 제공한다. 무분별하게 어장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다. 밤섬은 가구 수는 적지만 바닷가와 접한 펜션들이 있어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다.
밤섬에서 시작해 봉구뎅이산 입구까지 소나무 숲은 일상복을 입고도 걸을 수 있는 있는 산책길이자 산림욕장으로 손색이 없다. 바다 쪽으로 수루미해수욕장이 있고 호도와 녹도와 외연도로 가는 툭 트인 바다를 볼 수 있다.
수루미해수욕장 끝에서 봉긋뎅이산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르다. 지금까지 걸었던 길이 산책길이라면 이제부터 걸어야 할 길은 등산수준이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지 않았다면 허기지고 힘들었을 것 같은 구간이다. 하지만 경치가 좋아 고생한 것이 아깝지 않다.
황금곰솔로 이름 붙은 숲길과 물망터 그리고 면삽지는 해식애와 바다와 숲이 만들어낸 삽시도 자랑이다. 잠깐만 오르면 능선을 탈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망터는 석간수로 유명한 곳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물맛이 좋은 샘으로 알려져 있다. 샘물보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와 수리바위를 비롯해 다양한 모양을 한 해식애가 아름답다. 면삽지는 바닷물이 들어오면 삽시도와 떨어져 무인도가 되는 섬이다. 그 사이에 예쁜 조약돌이 쌓여 있다. 물망터, 면삽지 등은 삽시도 서남쪽에 있다.
면삽지. |
노을이 아름다운 해변
면삽지에서 진너머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소사나무와 참나무 군락 사이 길이다. 게다가 왼쪽으로는 파도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술뚱에 윗마을 식당에서 바지락칼국수를 늦은 점심으로 해결하고 걸었으니 하룻밤 묵고 가겠다면 노을을 보며 걸을 수 있다. 일찍 해가 지나는 겨울철은 좀더 일찍 출발해야 할 것 같다.
해가 긴 여름철에는 느긋하게 걸을 수 있다. 숲길을 걷다 보니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아랫마을과 이어지는 길이다. 진너머해수욕장과 마을 사이 언덕빼기 전망 좋은 곳에 펜션들이 있다. 해무에 가렸지만 노을이 아름답다. 숲에서 나오자마자 들리는 것이 노랫소리다. 마당에 노래방 기계를 내놓고 부르는 여행객도 있다.
진너머해수욕장에서 바라본 노을. |
펜션마다 야외에서 고기를 굽고 저녁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바다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는데 별 관심이 없다. 걷는 내내 행복했던 섬길이었다. 저녁이면 고둥을 줍는 사람들이 하나둘 불빛을 밝힐 것이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