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스런 새 소리에 눈을 떴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다. 소나무 숲에 이르자 새소리와 함께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시목해변이다. 해변이 활처럼 구부러진 모래해변이다. 신안군에는 500여개의 크고 작은 모래해변이 있다. 프라이빗 해변부터 명사십리에 이르는 해변까지 다양하다.
모래해변의 크기와 역할도 70여개의 유인도와 800여개의 섬만큼이나 다양하다. 갯벌만 아니라 모래해변도 다양하고 많다. 해변을 살피면 그 섬의 섬살이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섬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아침 해가 오르자 해변 가장자리에 잡은 갯메꽃이 수줍게 얼굴을 내밀었다. 통보리사초도 이슬에 취해 영롱하다. 아침은 사구식물이 목을 축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밤새 섬과 바다의 기온차이로 생긴 미세한 물방울이 하나 둘 모여 제공해주는 생명수다. 뜨거운 여름날 모래밭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이유다.
바다가 만들고 사람이 가꾼 길
시목해변 길은 모래해안 길과 숲길로 이루어져 있다. 모래 해안길이 자연이 만든 길이라면 숲길은 인간이 머물기 위해서 만들어진 길이다. 여행자들을 위해서 만든 길이 아니라 시간이 만들고 삶이 만든 길이라 자연스럽고 부담스럽지 않다. 그래서 좋다.
숙소에서 나와 캠핑장을 지나면 모래해변으로 이어진다. 해안을 따라 서쪽에서 동쪽 끝에 이르러 언덕을 오르면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만난다. 그 길을 따라 다시 돌아오는 길이다. 모래해변을 걷는 것과 다른 풍경들이 펼쳐진다. 파도소리는 멀어지고 휘파람새 소리가 다가온다. 아카시 꽃이 만발했다. 새벽산책으로 안성맞춤이다.
시목해변은 도초도 남쪽에 있는 모래해변이다. 바다건너 남쪽에는 하의도와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흑산도가 있다. 그 사이에 우이도가 있다. 시목해수욕장은 도초면 엄목리에 속한 시목마을 해변이다. 백사장 길이가 2.5㎞에 폭이 100m에 이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활처럼 구부러진 해안이며 배후에 모래와 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소나무와 편백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갯메꽃의 환영을 받으며 걷는 해안에서 여러 조개들을 만났다. 비록 껍질이지만 맛, 맛조개, 백합, 큰구슬우렁조개, 피뿔고둥, 바지락, 가무락 등 다양하다. 해안에는 모래갯벌이지만 바다 속으로는 혼한갯벌과 펄갯벌도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생물종도 다양하다.
해류와 하안류의 해에 운반된 모래가 시나브로 쌓이면서 생겨난 사구에 나무를 심어 방풍과 방사림을 조성한 것이다. 안쪽에는 습지가 만들어지고 지하수를 보관하는 물통 역할을 한다. 동해안에서 만날 수 있는 석호가 대표적이다. 서해안에도 섬과 연안에서 가끔씩 마주치는 해안경관이다.
어쩌다 어부, 그가 행복한 이유
아침 산책이 즐거우면 하루가 행복하다. 숙소에서 가까운 식당에서 전복죽을 준비했다는 전갈이다. 걸어가기 딱 좋은 거리다. 역시 해안을 따라 걷는다. 어제 저녁은 민어찜이었다. 여름에 민어회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민어는 회보다 탕이다. 민어회를 찾는 것은 탕을 먹기 위함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여름철 최고의 복달임으로 꼽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회는 민어탕과 곁들일 수 있지만 민어찜도 오롯이 찜으로 끝내야 한다. 잘 말려 보관해야 하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민어회는 제철에만 먹을 수 있지만 찜이나 간국은 잘 말려 보관했다면 언제라도 낼 수 있다. 각각 장점과 단점이 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그물을 들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주민을 만났다. 전복죽도 잊고 그를 따라 모래해변으로 내려섰다. 그런데 어부의 품이 어색하고 서툴다. 저 사람 주말이면 오는 사람이요. 와서 그물 놓아 고기도 잡고 노래도 부르고 그라요. 언제 왔는지 식당 안주인이 그물을 치는 어부에 관심을 갖는 것을 보고 하는 말이다. 서툴고 어색한 이유가 있었다.
그물을 치고 나오는 얼치기 어부에게 숭어라도 잡히느냐고 했더니, 도다리를 욕심냈다. 걸리면 좋고 걸리지 않아도 괜찮은 어쩌다 어부다. 그저 주말이면 복잡한 서울을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어쩌면 섬사람들이 반기고, 도시민들이 원하는 귀촌방식일 수 있겠다. 갈등과 욕심으로 가득한 귀촌정책을 지양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섬주민을 존중하고
아침을 먹고 나오다 엉뚱하게 영화 ‘자산어보’가 떠올랐다. 완도 신지도로 유배를 갔다가 다시 추가된 형으로 더 멀리 절해고도 흑산도로 가야 했던 정약전과 섬 청년 창대의 케미가 돋보였다. 여기에 가거댁의 양념은 감칠맛을 더했다. 이 영화를 촬영한 곳이 시목해변에서 멀지 않다.
요즘 흑산도를 다녀온 여행객들이 목포로 나오다가 중간기착지인 도초도에 들러 꼭 찾는 곳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면 정약전이 눈을 감았던 우이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독특한 영상을 고려한 독특한 한옥 때문에 영화의 장면처럼 사진을 찍어 SNS에 남기려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객들이 이곳을 즐겨 찾는 이유다.
필자가 영화에서 찾은 명대사는 ‘홍어댕기는 길은 홍어가 알고 가오리 댕기는 길은 가오리가 앙께요’라는 말이다. 섬살이는 섬 주민에게 배워야 한다. 어촌에서 생활하려면 어촌의 문화에 공감해야 한다. 이를 ‘진입장벽’이라고 접근하는 것은 어촌문화나 섬살이를 왜곡할 수 있다. 자꾸 육지의 법과 제도로 어촌이나 섬의 생활문화를 계몽의 시선으로 접근하려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그렇다고 개선할 것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촌과 섬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바람이다.
여행객을 배려하는
기왕에 도초도까지 왔다면 하의도나 신의도를 들려보는 것을 권한다. 옛날에는 생각도 할 수 없었지만 뱃길이 열려 가능하다. 시목선착장에서 대야도와 능산도를 지나 하의도 당두선착장으로 이어지는 뱃길이다. 신안군이 마련한 공영여객선이다. 큰 섬은 민간 여객선사가 항로를 만들어 허가를 받아서 운항을 하지만 수익성 없는 작은 섬은 주민들이 스스로 교통편을 해결했다.
최근 여객선공영제가 논의되는 것도 국민기본권 차원에서다. 섬이 많은 신안군에서는 국가정책이 만들어지기 전에 섬과 섬을 잇는 뱃길이나 섬 안에서의 교통편에 공영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시목에서도 하의도로 잇는 뱃길이 마련되면서 주민만 아니라 여행객들도 비금도와 도초도를 돌아보고 다시 하의도와 소금섬인 신의면 상하태도까지 건너갈 수 있게 되었다.
운항시간표를 보니 1일 4차례 오간다. 다시 국토가 술렁인다. 오랜만이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래서 더 절제된 여행이 필요하다. 과거와 다른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여행자들을 위해 도초도 시목해변을 추천한다.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