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체육관광부는 ‘국민생활정책 현장 이야기 및 사진 공모전’ 입상작 21점을 5월 21일에 발표했다. 국민생활과 관련된 정부정책에 대한 체험을 주제로 한 이번 공모전은 이야기 부문에 총 81명이 81점, 사진 부문은 56명이 196점을 응모했다. 다음은 이야기 부문 대상을 받은 이호권 씨의 수기다.
7년을 근무해 오던 출판사가 출판계 불황으로 문을 닫게 되었습니다. 직장이 하루아침에 문을 닫았지만 처음에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당분간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서른넷의 나이로 아직 젊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뛰면 충분히 구직이 가능하리라 믿었습니다.
실업급여를 신청한 후에 온라인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재하고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하루, 1주일, 2주일, 시간은 흘러갔지만 온라인 구직 사이트에서는 아무런 회신도 없었습니다. 이력서 조회 수를 보면 처음에는 하루에 두세 건 정도 조회 수가 늘어났지만 1주일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조회 수가 더 이상 늘지 않았습니다. 출판사 기획일 7년의 경력 외에 다른 자격증이나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서른네살 남자에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은 흘러 실직한 지 석 달 가까이 흘렀고 아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버스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큰 규모의 갈빗집에서 서빙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섯 살, 세 살의 두 아이를 둔 가장인 저는 더 이상 이력서를 넣는 일에만 매달릴 수 없어서 두 아이를 부모님댁에 맡기고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젊고 덩치가 좋아서인지 처음에는 곧잘 일거리가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건설일용직 일도 젊고 덩치가 좋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역시 현장에서 다져진 오랜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작업반장들도 처음에는 몇 번 저를 지목했다가 일도 제대로 못하고 실수만 저지르는 저를 보더니 더 이상 새벽 인력시장에서 지목하지 않았습니다. 새벽 인력시장을 통해 3주간 일한 덕에 제가 얻은 것은 어깨 인대가 늘어난 것과 온몸의 근육통이었습니다.
아무런 기술도 전문지식도 없는 30대 대졸 실직남자에게 이직의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었고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한다는데 비빌 언덕 조차 없었던 저는 실의에 빠져버렸습니다. 묵묵히 참고 견디던 아내가 고용노동부라도 한 번 찾아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한마디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의 말에 울컥했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고용노동부 인천북부고용센터를 찾아갔습니다.
고용센터에서 실직자 위한 ‘내일배움카드제’ 소개
취업 알선을 위해 서류를 뒤적이던 주무관님이 저에게 실직자와 구직자를 위한 내일배움카드제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일정한 금액 내에서 직업능력개발 훈련을 지원해 주는 제도라고 했습니다. 제가 일하던 출판 분야는 불황인 데다가 경력직의 이직이 쉽지 않기에, 아직은 젊은 나이니까 새로운 기술을 배워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며 주무관님은 이번 기회에 평생직업이 될 수 있는 자격증을 딸 수도 있다면서 내일배움카드제 팜플렛과 안내서를 제 손에 쥐어주며 한번 고려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중략…)
검색으로 내일배움카드제를 지원하는 몇 군데의 교육기관을 찾을 수 있었고 다시 고용센터를 찾아서 주무관님과 상담을 했습니다. 주무관님의 조언과 상담을 통해 제가 선택한 곳은 국제기술직업전문학교의 전기시스템제어 과정이었습니다. 총 4개월간 수업일수는 93일, 훈련시간은 560시간에 가까운 과정이었습니다. 하루에 수업시간만 6시간이 넘는 거의 전일제로 수업해야 하는 과정이었지만 도전해 볼만하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아내도 생활비 걱정은 하지 말고 열심히 수업을 들어보라며 저를 격려해 주었습니다.
처음에 학원에 가서 등록 상담을 하는데 강사분이 저를 만류했습니다. 고민 끝에 선정해서 배우겠다고 찾아왔는데 강사님이 만류하니 힘이 빠졌습니다. 강사님의 의견도 타당했습니다. 정부에서 하는 일이라고 일단 교육 등록만 했다가 안 나오는 수강자들이 있어서 수업 분위기를 해친다, 또 관련 분야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처음부터 배우기는 쉽지 않다, 수강생들의 결석률이 높으면 학원이나 강사분에게도 피해가 갈지 모른다는 것 등이 이유였습니다. 초반의 의지들은 다들 대단하지만 1개월도 지나기 전에 어렵다고, 모른다고, 다른 것을 하고 싶다고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정말 그럴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있으면 저에게 다른 과정을 찾아보라는 것이 강사분의 말이었습니다.
무조건 잘된다가 아니라 처음부터 사실대로 말해 주니 오기 같은 것도 생기고 최선을 다해서 해 봐야겠다, 무너지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는 절대로 마지막 수업까지 결석하지 않겠다고 이야기하고 꼭 수료하고 자격증도 딸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강사님도 저의 표정을 보더니 “그럼 열심히 해 보죠, 우리!” 하고 저에게 힘을 실어주었습니다. 문과였고 책 만드는 일을 하던 저에게는 옴이니 암페어니 하는 단위가 나오는 전기기초 입문과목이 가장 기초 과목이었는데도 처음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저는 고등학교 물리 교재를 부모님 집에서 가져다가 고등학교 물리부터 다시 보면서 예습을 했습니다. 주말에도 학원에 나가 강의실에서 공부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공부를 했고, 실습이 있는 날은 끝까지 남아서 실습에 몰두했습니다.
전기관련 학원수강료 250만원 중 정부서 200만원 지원
4개월간의 수업 비용은 250만원이 넘는 큰 금액이었는데 제가 부담하는 비용은 50만원 정도였고 나머지 200만원은 내일배움카드로 국가에서 지원해 주었습니다. 아내는 제가 실직하고 내일배움카드제로 학원에 다니는 총 8개월 이상을 실질적으로 집안의 가장이 되어서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학원비가 200만원 넘게 지원되는 것이 저희 가정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아이들은 부모님댁에 맡겨두었는데 주말에 보러 갈 때마다 이렇게 가족이 떨어져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 때문에 더 열심히 공부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원 수강을 마치고 제가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은 전기기능사 자격증과 승강기기능사 자격증 등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생활비가 걱정인데 자격증을 딸 때까지 아내에게 가장의 일을 부담시킬 수는 없었고, 또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는 것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전공자가 아님에도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고 늘 성적도 나쁘지 않았던 저를 강사님이 잘봐 주셨던지 전기설비 관련 업체에 일용직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일당이 나쁘지 않으니까 일이 있을 때는 거기서 일하고 일이 없는 날에는 자격증을 준비하라는 것이 강사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기에 강사님이 소개해 준 업체에서 일용직으로 일하면서 자격증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취득을 목적으로 한 것은 전기기능사 자격증이었습니다. 가장 범용적인 자격증이고 기본이 되는 자격증인지라 꼭 따야겠다는 생각이었고 되도록 한 번에 따고 싶었습니다. 1년에 여러 번 있는 시험이기는 하지만 꼭 한 번에 따고 싶었고, 일하고 온 날에도 새벽 2시까지 공부하고 일이 없는 날에는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공부했습니다. 결국 두 번 만에 전기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자격증 취득 후 취업을 위해 다시 고용센터를 찾았습니다. 저에게 내일배움카드제를 추천해 주었던 주무관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사히 강의를 수료하고 자격증까지 따서 나타난 저를 보며 주무관님은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더군요. 관련 자격증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일자리를 열심히 찾아주셨고, 여기저기 면접도 알선해 주셔서 현재는 인천에 있는 건실한 중소기업의 전기배전관리반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취업되었다고 전화드렸을 때도 저보다 더 좋아해 주셨던 주무관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선합니다.
출판사에서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작업환경과 근로환경이지만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일이고 매일 출근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실감하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온 가족이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승강기기능사 자격증에 도전했고 지난해 세 번의 시험에 도전해 결국 7월에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마음먹은 자격증은 꼭 따고 싶었고 나중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기에 1월, 4월 시험에 도전해서 필기에 붙고 6월 실기시험에 합격해 7월에 최종 자격증을 받았습니다. 현재 회사 사장님도 대단하다며 저를 격려해 주셨고 자격증을 딴 날에는 저희 부서 회식을 시켜주시기도 했습니다.
전기기능사로 ‘평생직장’ 대신 ‘평생직업’ 성취
30대 중반의 나이에 회사가 문을 닫아 실직하고, 이제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분야에서 일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하루종일 PC 앞에 앉아서 책을 만들던 사람이 공구를 가지고 전기배전반을 누비는 지금의 일을 하게 될 줄은 저 자신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누구보다도 행복합니다. 새로운 직장의 동료들과 행복하게 일할 수 있고, 또 이제는 기능사 자격증을 가진 기술자로 평생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든든함이 있습니다. ‘평생직장은 없지만 평생직업은 있다’, 누가 만든 말인지 모르지만 지금 저에게는 너무나 적절한 말입니다. 전기 관련 일은 이제 저의 평생직업입니다.
내일카드배움제는 정부가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해서 실질적인 지원을 해 주는 정말 좋은 제도입니다. 직업훈련비 몇 푼을 지원해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직업훈련이나 교육을 자기주도적으로 설계하고 끝까지 성취해 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으로 저처럼 비전공자라도 전기 관련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지원과 관리를 해 주었습니다. 또 고용센터의 주무관님에게도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처음 상담했을 때부터 자기 일처럼 같이 고민해 주고 내일배움카드제와 학원을 알아봐 주고 자격증 취득 후에는 일자리도 알아봐 주어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다른 분들도 일자리를 찾아 고민하고 있다면 자신의 분야, 혹은 전혀 다른 분야의 기술을 배우고 취업할 수 있게 도와주는 내일배움카드제를 적극 추천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직업,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서 직업훈련을 받고 싶은 사람들에게 내일배움카드제는 정말 좋은 정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