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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불자 딜레마, 딜레마…“원칙이 이기더라”

[실록 경제정책] ② 신용불량자 뇌관 해체…“이젠 가르마 타졌다”

신불자 400만명 시대에서 ‘신용테크’ 시대로

2008.01.23 특별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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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위기, 미-이라크 전쟁, 신용불량자와 카드채 사태…. 돌아보면 먹구름 뿐이었다. 2003년 위기 상황에서 출범한 참여정부는 신중한 경기조절 등으로 살얼음판 위를 조심스레 건너갔다. 인위적인 경기부양과 결별하는 대신 경제체질을 튼튼히 하고 중장기적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주력했다. 단기적 성과보다는 근본적인 해결을 추구하고, 본질적 문제 접근을 통한 제도화에 초점을 맞췄다. 혁신경제와 공정한 시장, 한미자유무역협정(FTA)등 적극적 개방정책, 금융허브 추진을 비롯한 금융산업 선진화정책, 지속적인 연구개발(R&D)투자 확대, 남북경협 등 오늘보다 내일을 위한 투자에 집중했다.

‘한 손에는 성장잠재력 확충, 다른 손에는 사회안전망 확대’. 참여정부는 특히 IMF 외환위기 이후 심화된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해 사회투자를 확대했다. 경제성장과 사회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전략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고질병이 된 ‘저성장 속 양극화’ 문제에 정면으로 맞서고자 했다. 그럼에도 민생의 어려움은 짙은 그림자로 남았다. 우리 경제의 낡은 유산과 싸우며 새로운 성장전략을 추구했던 참여정부의 이러한 비전과 고투가 한국경제의 터닝포인트로 기록될지 여부는 역사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정브리핑은 재정경제부·한국금융연구원·한국조세연구원 등과 함께 참여정부 경제정책의 탄생 배경과 전개과정, 정책효과와 의미 등을 실록 형태로 정리한 ‘실록 경제정책’을 기획, 연재한다. 전·현직 정책 담당자들의 증언과 각종 정부기록물, 학계 연구보고서 등을 밑그림으로 삼아 ‘읽는 재미’와 함께 경제정책의 원리와 방향을 이해할 수 있는 폭넓은 안목을 제공하려 한다. 연재 내용은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할 예정이다. <편집자>

① 카드사태와 금융시장 안정: “문 닫을까요, 외국에 팔까요, 당신이 살 거요?”

2003년 3월 1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가계부채 현황과 대응방안’ 보고를 끝냈다. 굳은 표정의 노무현 대통령이 입을 뗐다.

“이 보고만으로는 답을 얻지 못하겠다. 대책이 없이 대강 짚고 넘어가자는 것 아닌가. 향후 추진대책이 이대로라면 대책이 없다는 거다.”

싸늘한 공기가 회의장을 훑고 지나갔다. 노 대통령은 “가계대출 중 교육비 비중, 총 가계대출 중 카드대출 비중, 위험한 대출액과 대응방안, 과거에 시행했던 가계대출 안정대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600명이 채 안 되는 신용불량자가 혜택 받는 개인워크아웃제도의 실효성을 높이는 게 무슨 대책이냐”고 질책했다.

김 부총리는 금융기관들이 소극적이어서 개인워크아웃제도 확대가 어렵다고 보충답변했다. 노 대통령은 “가계대출 연체가 과대 포장돼 있다면 악성과 초기 연체를 명확히 분류하고 카드대출의 최종 책임을 금융기관들이 서로 떠넘기는 상황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백만 명의 신용불량자 문제는 갓 출범한 참여정부 앞에 놓인 최대 해결과제였다. 2003년 3월 2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COEX) 컨퍼런스센터에서 열린 ‘2003 신용불량자 문제해결을 위한 포럼’에서 김진표 당시 경제부총리가 개회사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대충대충 만든 대책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금융감독기관과 협의해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을 관치라고 해도 밀고 가야 한다.” 노 대통령은 발언 말미에 ‘시장붕괴 상황에 대한 위기관리’라는 표현까지 덧붙였다.

‘경제부총리가 전 국무위원이 보는 앞에서 대통령에게 질책을 받았다’는 소식은 정책당국자들의 귀에도 속속 전달됐다. 재경부의 한 고위인사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회고한다.

“대충대충 만들어내는 대책은 좌시하지 않겠다는 경고이자, 대통령이 직접 신불자 대책을 챙기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노 대통령이 ‘격노’한 이유는 무엇일까. 갓 출범한 정부의 최고통치자가 ‘시장붕괴 상황’을 가정하도록 만든 신용불량자는 어떤 과정을 통해 잉태됐을까.

■ 2002년 한국경제 회고…카드부양의 그림자

국민의정부 말기인 2002년 한국경제는 불투명한 대외여건 속에서도 7%대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했다. 2001년 3.8%에 비하면 2배 가까이 뛰어오른 수치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2002년 3분기 국내기업들의 경상이익, 순이익은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135%, 203% 증가하는 기염을 토했다. 소비도 급팽창했다. 성장과 소비 모두 ‘과열’ 수준이었다.

이 화려한 지표들이 한국경제의 맨 얼굴, 내공의 발로였을까. 속사정은 간단치가 않다. 급증하는 소비와 1년 새 2배로 치솟은 성장률의 배후에는 카드론과 가계대출 확대가 있었다.

‘개도 신용카드를 입에 물고 다닌다’

국민의정부 시절, 내수 진작을 위해 동원한 신용카드 현금서비스한도 폐지 등 카드부양책은 카드 남발과 카드사들의 과당 경쟁을 낳았다. 1998년 63조 5000억원 규모이던 카드 이용실적은 2002년 622조 9000억원으로, 현금대출은 32조 7000억원에서 357조 7000억원으로 늘었다. 2002년 당시 시중에 돌아다니던 신용카드 수는 1억480만장. 경제인구 한 명당 4.6장의 카드를 지갑에 넣고 다닌 셈이다. ‘개도 신용카드를 입에 물고 다닌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추경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현 OECD 참사관)의 회고다.

“불균형과 무리수는 뒤탈을 낳게 마련이다. 신용카드 연체율이 10%를 넘었고 대환대출을 포함할 경우 부실률은 30%에 다다랐다. 신용카드사들이 일제히 부실금융기관으로 전락하고 있었다.”

카드버블에 의한 과잉 소비의 힘으로 7% 성장을 달성한 한국경제는 이후 지난한 ‘경기부진의 늪’을 헤맸다. 제일 먼저 가계부채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2002년 9월 가구당 평균 부채는 2910만원, 전체 가계 빚은 424조원. 금리가 1%만 올라도 가구당 300만원에 가까운 이자를 더 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특히 신용카드사 등 여신전문금융회사 가계대출이 연평균 50%의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저금리 정책과 부동산 시장 과열 현상이 맞물리면서 주택담보대출 역시 급속도로 불어났다.

외환위기 5년 만에 시한폭탄 안고 살얼음 위로

금융시장은 외환위기 5년 만에 다시 시한폭탄을 안고 살얼음 위를 걷는 처지에 놓였다. 1997년 ‘기업부채’에서 촉발된 외환위기의 어두운 그림자가 ‘가계부채’의 얼굴로 다시 찾아오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번졌다. 1997년 상황이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험한 말기암 상태였다면, 2002년 상황은 약으로 치료가 가능한 종양 상태라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 ‘신용불량자’ 400만

우려되던 부작용이 본격화됐다. 그 중심에 ‘신용불량자 대량 양산’이 있었다. 2000~2002년 부풀어 오르던 가계부채 버블은 2003년 초부터 터지기 시작해 매월 10만 명의 ‘신규 신용불량자’를 만들어냈다. 은행연합회는 “외환위기 때도 한 달에 8만 명을 넘은 적은 없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고광희 재경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 사무관(현 재경부 인사혁신팀장)의 말이다.

“언제 400만 고점을 통과하나, 초조한 마음으로 만날 그래프만 올려다보던 때가 있었다. 신용불량자들이 채무 문제로 자살했다는 뉴스가 연일 들려왔다. 조기진압하지 않으면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겠다는 위기의식이 파다했다.”


1998년 160만명이던 신용불량자는 2002년 말을 기점으로 드라마틱한 급상승 그래프를 그리며 폭증했다. 2003년 4월 309만명을 넘어서고, 2004년 4월 382만5000명으로 정점을 기록했다. 이들 중 대부분은 2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다중채무자였다. 특히 신용카드 관련 신불자 비중은 2000년말 21.3%, 2002년말 56.7%, 2003년말 64.4%, 2004년말 67.3%로 수직 상승 중이었다.


한 국가나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 신용불량자 수는 각기 다르기 마련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허용범위 이상의 신용불량자를 단기간에 대량 양산하면서 심각한 경제·사회적 타격에 노출된 것이 문제였다. 어쩌다 이런 상황에 봉착하게 됐을까.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자격으로 참여정부 신용불량자 대책 정책보고서 집필에 참여했던 강경훈 동국대 교수의 설명이다.

돌려막기 연명하던 사람들 줄줄이 신불자로

“은행권의 가계대출이 봇물을 이룬 데다 신용카드사의 과당경쟁에 청소년 등 경제적 미성숙자들까지 대책 없이 소비대열에 합류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신용카드사들은 너도나도 대출서비스에 주력하면서 카드 발급을 남발했다. 소비자들은 여러 카드사에서 발급받은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면서 ‘일단 쓰고 보자’는 식으로 신용카드를 긁어댔다.

연체율이 상승하고 금융시장 전반에 경색 조짐이 보이자 감독당국은 2002년 ‘신용카드회사 현금대출 업무 비중 50% 이하로 축소’, ‘대손충당금 산정 기준 대폭 강화’ 등 규제강화 조치를 취했다. 은행과 신용카드사들은 일제히 카드 현금서비스 한도를 대폭 축소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돌려막기로 연명하던 사람들이 줄줄이 신불자로 전락했다. 사회적으로 개인신용에 대한 인식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카드시장이 양적으로만 팽창해 부작용을 불러일으킨 셈이다.”

외환위기(1997)와 대우사태(1999), 그리고 현대사태(2000)를 겪은 이후 금융기관들은 안전성과 수익성이 높은 가계부문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 은행들은 비우량기업에 대한 대출을 기피하고, 대출규모는 작지만 예대마진이 높은 가계대출을 선호했다. 여기에 경기 침체와 거시경제 구조의 변화 등 실물경제 요인, 부실한 개인 신용정보 체제, 개인부실채권 처리를 위한 시장 인프라 미비 등 제도적 요인도 신용불량자 증가에 한몫했다. 다시 강 교수의 지적이다.

위기관리 실패이자 정책 실기(失期)

“이렇게 복합적인 요인들이 얽혀 신불자 문제가 발생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꼽으라면 국민의정부 시절 시행된 과도한 카드부양 탓이다. 신용카드 산업에 버블이 없는 나라는 없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신불자 문제가 경착륙되고 혹독한 홍역을 치른 이유는 정책당국 차원에서 카드부양책의 부작용에 대한 예측과 사전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까닭이다. 위기관리 실패이자 정책 실기(失期)인 셈이다. 2001년쯤 신용카드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금감위에서 신용카드 현금대출 제한 등을 건의했지만 번번이 규제개혁위원회 등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줄어들 기미가 없는 경제활동 불능자들의 한숨과 함께 출범을 목전에 둔 참여정부의 시름도 깊어갔다.

■ 딜레마, 딜레마, 딜레마

“신용불량자 문제는 과거에는 없던 문제였다. 환란 전에는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는데 우리 사회는 이를 해결할 만한 능력이나 준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초유의 사태 앞에서 기초적 준비도 없이 맨땅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정우 전 청와대 정책실장(현 경북대 교수)

해결과정이 순탄한 난제(難題)는 없다. 특히 신불자 문제는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면서도 어떻게든 이들의 신용회복을 도와 정상적인 경제인구로 복귀시켜야 하는 대표적인 정책 딜레마 사례였다.

‘신불자 구제하라‘-‘모럴해저드 부추긴다’

조금만 혜택을 주자고 하면 ‘원금탕감이다, 모럴해저드를 부추긴다’는 비판이 들끓었다. 다른 일각에서는 그 정도 대책으로 신불자를 구제할 수 있겠느냐고 다그쳤다. 정책 당국자들의 고뇌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현 금융연구원 원장)의 증언이다.

“순수한 정책적 판단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용불량자 문제는 금융정책의 문제인 동시에 서민대책의 문제, 정치적인 이슈이기도 했다. 정치권은 탕감을 하든 공적자금을 투입하든 당장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했다. 정책당국은 일단 정부에서 돈을 갚아주면 신용불량자가 더 늘어나 문제를 키운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또 다른 문제는 신용불량자 폭증이 경제·사회 전 분야에 걸쳐 ‘도미노 폐해’를 유발한다는 점이었다. 개별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부실채권 증가로 수익성과 자산건전성이 훼손되는 지름길이자, 금융산업계 전체로서는 금융시스템 붕괴 가능성을 지닌 뇌관이 바로 신불자 문제였다.

신용불량자수 그래프가 높아질수록 ‘일가족 동반자살’이라는 참담한 뉴스도 빈번하게 전해졌다. 가족이 여행을 떠나 여관에서 약을 먹거나, 자녀들과 함께 고층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낯익은 살풍경’이 됐다. 총 범죄 가운데 경제범죄 비중이 1999년 18.5%에서 2003년 23.5%로 늘었다. 같은 기간 경제문제로 이혼한다는 부부 비율은 7.1%에서 16.4%로 높아졌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경제 차원을 넘어 총체적 대응을 필요로 하는 이슈였다.

2002년 말부터 폭증하기 시작한 신용불량자수는 2004년 4월 382만5000명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당시 명동 신용회복위원회를 찾은 신용불량자들이 상담순서를 기다리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여론은 ‘일단 신용불량자 숫자부터 줄이고 보자’는 쪽으로 모아졌다. 가장 줄기차게 제기된 레퍼토리는 ‘원금탕감’과 ‘공적자금 투입에 의한 신용회복지원’이었다. 정치권의 요구는 특히 집요했다. 2005년 2월 18일 제17대 국회 제252회 제1차 보건복지위원회. 전재희 의원(한나라당)은 이렇게 주장했다.

여론은 ‘일단 신용불량자 숫자부터 줄이고 보자’

“현재 금융기관 채무를 변제하지 않아 연체자로 등록된 국민연금 가입자들은 취업 및 사업을 제대로 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신용불량자에게 국민연금 반환일시금을 지급해 경제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구제하자.”

민주노동당과 한나라당이 ‘정책공조’에 나서는 진풍경도 연출됐다. 2004년 10월 재경부 국정감사 과정에서 심상정 의원(민노당)이 “생계형 소액 신용불량자의 연체 원금을 정부가 갚아주되, 이후 채무자가 일정한 소득이 생기면 상환토록 하자”고 제안했다. 다음 달 이종구 의원(한나라당)은 “1000만원 미만 신용불량자 170만명의 채무를 전액 탕감해주자”는 파격 제안으로 맞장구쳤다.

언론은 “지나치게 돈줄을 죄면 되레 신용불량자를 양산하고 금융권 수익을 악화시키게 된다”는 주장과 “성급한 신용사면은 신불자들의 모럴해저드를 부추길 수 있다”는 상반된 비판을 동시에 가했다.

■ 신불자를 구제하라 ‘시장경제 원칙으로’

참여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신용사면은 없다”는 원칙을 못 박아둔 터였다. 새 정부 출범 때마다 특정 대상의 신용불량 기록을 삭제해주던 관례적 조치도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자기책임·시장경제 원칙에 의해, 모럴해저드 없이 신속하게, 신불자들의 정상적인 경제활동 복귀를 돕는 것’이 참여정부 신용불량자 대책의 목표요, 비전이었다. 이 원칙에 대한 합의는 큰 이견 없이 이뤄졌다는 게 당시 정책 관계자들의 일관된 증언이다. 이정우 전 실장의 얘기다.

“일각의 주장대로 신용사면을 해가면서 문제를 풀었으면 소비위축은 다소 빨리 해결됐을지 모른다. 하지만 부작용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성실히 빚을 갚아나가던 서민들의 입에서 ‘정부가 신불자 원금탕감 해주면 나도 신불자 되겠다’는 서슬퍼런 엄포가 공공연히 나오던 때였다.”

“왜 우리는…” 신불자-예비 신불자-정상 채무자 모두 불평

일단 원칙은 마련됐지만 이를 세부대책으로 구체화하고 신용불량자 구제로 옮기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신용불량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금융기관과 개인 간 채권채무 관계다. 이 둘 사이에서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개인이 자기책임 원칙을 지키면서 장기적으로 채무를 분할 상환해나갈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주는 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과정도 녹록치 않았다. 추경호 재경부 금융정책국 은행제도과장(현 OECD대표부 참사관)의 증언이다.

“신불자들은 ‘이자 감면 수준으로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원금탕감을 요구했다. 곧 신불자가 될 지경에 놓인 사람들은 ‘왜 우리는 이자감면 혜택을 주지 않느냐, 이럴 바에는 차라리 신불자가 되는 게 낫겠다’고 했다. 정상 채무자들조차 ‘힘들지만 성실하게 빚 갚는 사람들은 바보인 줄 아느냐. 계속 이렇게 가면 우리도 상환 중지하고 고의적으로 연체하는 수밖에 없다’고 불평했다.”

■ 새 경제부총리 이헌재

“시장은 달면 삼키고, 쓰면 뱉고, 내키면 하고, 싫으면 안 하는 철없는 어린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다. 시장이 깨지든 말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억지나 불장난이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시장은 놀이터가 아니다…은행장들이 직접 나서라”

정부는 2004년 3월10일 개인 신용불량자들의 단계별 구제 방안을 담은 신용불량자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이헌재 당시 경제부총리가 이날 오전 재경부 청사 브리핑실에서 대책을 공개했다.<사진=연합뉴스>
1997년 외환위기 극복의 최대스타였다가 다시 난세의 경제정국을 책임질 경제수장 자리에 오른 이헌재 부총리는 2004년 2월 11일 ‘취임에 즈음하여’라는 글을 통해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그로부터 2주 후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금융기관장 오찬간담회. 취임사 때의 일성(一聲)이 보다 구체화돼 나타났다.

“신용불량자가 될 우려가 있는 한계거래자에 대해 밑에만 맡겨두지 말고 은행장들이 직접 나서 관심을 갖고 여러 방안을 모색하라. 지난 3년간 금융기관들이 경쟁적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확대시켜오다 금년에 만기가 대거 도래하면서 경쟁적으로 회수할 가능성이 우려된다. 회수가 경쟁적으로 일어나 시장의 기틀이 무너지는 경우,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다.”

일차적으로 은행에서 신용불량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주택담보대출 만기연장에 협조해 달라는 당부의 말이자, 은행권이 자사 이기주의에 매몰되는 행보를 보일 경우엔 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경고이기도 했다.

김석동 재경부 금융정책국장(현 재경부 제1차관)은 이 간담회 직후 “은행장들은 주택담보대출 만기연장 등에 대해 시장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소해 나가겠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새 경제부총리의 등장과 함께 정부의 대책마련에도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 “밤을 새워서라도 답 찾아내라”

2004년 1월 28일 재정경제부 업무보고. 노 대통령은 다시 한 번 ‘현장에 즉시 적용할 수 있는 신용불량자 대책 마련’을 강하게 주문했다.

“신용불량, 각 금융기관별로 안고 있는 채권의 종류, 빌린 사람들의 분류에 따라서 분석이 돼 있어야 대응이 나올 것 같은데, 1년 내내 착안도 안 했다고 하면 무엇을 한 것인가.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지적해 가지고 ‘이거 내 놓아라’ 하니까 그제서야 조사하면 어떻게 대책이 나오겠나. 이 문제, 밤을 새워서라도 답 찾아내라. 확실하게 책임 있는 회의 단위를 만들고, 회의록을 남기고 좀 타이트하게 관리해 나갔으면 좋겠다.”

전례 없이 대대적인 실태조사가 시작됐다. 신용불량자 3,919명에 대한 심층 전화인터뷰와 금융기관 직원 970명, 채권추심회사 직원 500명, 신용회복위원회 직원 40명 등 총 1,510명에 대한 설문조사, 전문가 의견 수집 등이 이어졌다. 이병래 금감위 시장조사과장(현 금감위 보험정책과장)의 말이다.

대대적인 신불자 실태조사부터 다시

“실태조사라는 건 왜 신용불량자가 됐고, 이들이 신용회복을 하는 데 어떤 걸림돌이 있는지를 알아보는 작업이었다. 신불자 당사자는 물론 금융기관에 대한 다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정확한 원인 분석을 한 뒤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과정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마스터플랜이 2004년 3월 10일 공개된 신용불량자 종합대책이다. 이헌재 부총리는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개별은행의 채무재조정과 배드뱅크 설립, 법원의 개인회생제 및 개인파산제 등 ‘단계별 방법’으로 신용불량자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부총리는 “원천적인 부채탕감은 법원의 파산절차 이외에는 없을 것”이라면서 “신용불량자 문제는 빚을 진 채무자가 자기책임 원칙 아래 성실하게 상환노력을 다해야 해결될 것”이라는 기본방침도 재차 강조했다.


정부의 신불자 대책은 재정지원을 통한 일회성 구제가 아니라,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면서 금융기관간 협의(정부는 조정자 역할)를 바탕으로 신용회복지원대책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당시 정부는 개별금융기관과 배드뱅크(한마음금융), 신용회복위원회 등 각종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약 97만 명의 신용불량자에 대해 신용회복을 지원했다. 이 가운데 약 75만 명이 신불자 딱지를 뗀 것으로 추정됐다.

공동추심프로그램 성공…참여 금융기관 10개서 620개로

정부는 또 신용불량자가 일을 하면서 빚을 갚아나갈 수 있도록 일자리를 알선했다. 불법적인 추심행위로부터 채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금감원에 불법추심행위 신고센터를 운영하기도 했다. 개인신용평가회사(CB) 등 신용인프라를 확충하기 위한 지원도 계속했다. 소극적인 금융기관들을 다양한 신불자 프로그램에 끌어들였다. 김석동 금융정책국장(현 재경부 제1차관)의 말이다.

“배드뱅크 전에 LG와 산은이 했던 공동추심프로그램이 있었다. 공통된 채무자 채권을 한 군데 모아놓고 1대 1로 추심하는 게 골자였다. 금융기관들은 당연히 소극적인 반응을 보였다. 일단 자기 채권을 내놔야 하지 않나.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일이라 효과를 입증할 수 없으니 미덥지 못한 것이다. 처음엔 딱 10개 기관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 공동추심프로그램이 성공했다. 일단 효과가 입증되니까 더 큰 금액의 채권을 다루는 배드뱅크 때는 금융기관 620개가 참여했다. 수백만 명의 신불자들이 제도권 금융 밖으로 튕겨나가면, 결국 금융기관의 영업기반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정부 설득논리가 주효한 측면도 있었다.”

이헌재 부총리는 “금융기관은 금융기관 창구대로, 개인 워크아웃제도와 배드뱅크 설립 등도 예정대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틈나는 대로 신용불량자 대책이 순항 중임을 알렸다.

■ “신불자 문제, 지혈 단계 진입”

노 대통령은 2004년 말 경향신문과의 송년 특별회견에서 신불자 종합대책 과정에서 시행한 실태조사와 그에 따라 마련된 정책 효과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젠 가르마가 타지는 것 같다. 자료를 갖고 조사해서 웅덩이에 빠진 사람, 안 빠진 사람을 구분할 것이다. 옛날엔 구분이 안 됐다. 구제하기 시작하면 다 빠져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오랫동안 신불자 상태로 있어서 정상적 활동에 지장받고 있는 사람이 내년 중엔 정상적 생활로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하겠다.”

신불자 딜레마 “이젠 가르마가 타지는 것 같다”

이헌재 부총리도 “신불자 문제는 동맥이 단절된 상태에서 지혈을 한 수준으로, 출혈로 인한 생명의 위협은 벗어났다. 시스템의 위기는 막았으며 이제부터는 각 금융기관들이 도덕적 해이가 없이 신불자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공언했다. 첫 종합대책이 발표된 지 7개월 만인 2004년 11월 26일 금융발전심의회 자리에서였다.


실제 각종 신용회복지원제도를 통한 신용불량자의 신용회복 노력이 하나둘 결실을 맺으면서 2004년 6월 처음으로 신불자 증가추세선이 감소세로 반전됐다. 2005년 말에는 30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신불자 문제는 진정 국면에 들어섰다. 금융권 연체율 역시 자기책임 원칙에 기초한 신용회복지원으로 도덕적 해이가 차단되면서 하향안정화되기 시작했다.

■ 사각지대에도 구원을…‘생계형 금융채무불이행자 대책’

2004년 말 노 대통령은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소득수준이 너무 낮아 빚을 변제할 의지는 있지만 채무재조정을 받기 힘든 소외계층에 대한 적극적인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재경부는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김석동 국장 후임으로 온 임영록 재경부 금융정책국장(현 재경부 제2차관)의 말이다.

“1차 대책 후 진행상황을 점검해보니까 실제 장기 분할납부대책이 소용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말하자면 1차 대책의 사각지대가 어딘지를 찾아낸 것이다. 그들이 바로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 미성년자, 군인 등 소득원이 없는 신용불량자들이었다. 기초수급자의 약 10% 이상이 신불자로 등록돼 있었고, 이들에게 최저생계비로 지급되는 국가보조비가 곧바로 채권추심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이 사람들은 법원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개인파산 등 신청에 드는 초기비용만 250~300만원 정도 되는데 이 비용조차 감당할 수 없는 국민들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생계형 금융채무 불이행자 대책’이다.”

“은행들이 빌려준 만큼 지원에 동참해야”

이헌재 부총리는 이듬해 1월 5일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 신년사에서 “기초생활보호대상자 등의 채무조정과 생계형 영세자영업자에 대한 워크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이틀 후 출입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는 “은행들이 기초생활보호대상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며, 은행들이 빌려준 만큼 지원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동참을 유도한 것이었다.

이번에도 정부는 보건복지부 및 국세청, 은행연합회 전산DB를 통해 기초수급자 신용불량자들의 부채규모를 파악하고 1,073명의 기초수급자에 대한 전화·대면조사를 병행하는 등 다각적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2005년 3월 ‘생계형 금융채무 불이행자 대책’이 공개됐다.


정책 수립 및 추진 과정은 순조로웠다. 부처 간, 당정 간 정책조율이 적극적으로 이뤄진 덕분이었다. 금융기관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도 잘 풀려나갔다. 재경부와 금감위, 한은, 자산관리공사 등은 역할 분담을 통해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없는 계층에 대해서도 채무상환의지가 있는 사람들에 한해 상환능력이 생길 때까지 원금상환을 유예해주는 생계형 대책을 추진했다.

2005년 3월23일 오후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신용불량자 대책회의가 열렸다. 노 대통령은 생계형 금융채무 불이행자에 대한 신용회복지원 방안 등을 논의한 이 자리에서 “실태조사를 통해 현장감 있는 정책이 마련됐다”며 만족감을 보였다.<사진=연합뉴스>

2005년 3월 23일 오후 청와대. 신용불량자 대책회의를 직접 주재한 노 대통령은 비로소 만족감을 표현했다.

“이번 대책이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정책”

“지난 해 이맘 때 신용불량자 문제 등에 대한 (재경부의) 보고를 받고 역정을 낸 일이 있었다. 이후 정부가 어려운 문제에 대처하는 능력이 많이 향상되었고, 대책도 머릿속에서 대강 그려낸 것이 아니라 실태조사를 통해 현장감 있는 정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많은 토론과 검증도 거친 듯하다. (중략) 각 부처의 협조로 현장에서 바로 적용될 수 있는 정책이 만들어진 것 같다.”

노 대통령은 아울러 “이번 대책이 신용불량자 문제에 대해서는 마지막 정책”이라고 쐐기를 박았다. 더 나은 대책이 나올 때까지 버텨보자는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를 차단,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다.



■ 법과 제도, 인프라 정비

이와 함께 2005년 3월31일 제정된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률’(일명 ‘통합도산법’)은 그동안 사문화돼 있던 개인회생·개인파산 제도를 살려내는 계기가 됐다. 사채를 끌어다 쓴 신용불량자들은 제도권 금융 내에서 구제받을 수 있는 방법이 요원한데, 개인회생·개인파산 제도는 이들을 구제하기 위한 대책이었다. 2004년부터 서울지법 파산재판부에서 근무하고 있는 문유석 판사의 말이다.

“대한법률구조공단은 개인회생 및 파산에 관한 무료전화상담을 시작했고 2006년 5월부터는 개인회생 및 파산지원센터를 운영했다. 간주면책신청제도를 도입해 채무자가 파산 신청을 하면 자동으로 면책 신청단계까지 이뤄졌다. 덕분에 실수에 의해 면책신청이 누락되는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됐다. 또 신청서와 구비서류 등 서면심리만으로 파산선고와 면책결정이 가능케 됐다. 다만 파산절차가 남용되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 다양하고 구체적인 파산신청 기각사유를 신설했다.”


“정말 대책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타는 버스가 파산신청”

문 판사는 “정말 다른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타는 버스가 파산신청”이라며 “서울지법 파산부가 2004년 처리한 면책사건의 면책율은 98.6%, 2005년 1분기는 99.3%에 달했다”고 덧붙였다.

빚 갚을 능력이 있는 데도 개인파산제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그는 2005년 5월호 ‘법원사람들’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면책결정을 하든, 안 하든 어차피 빚 갚을 능력은 고사하고 신불자로 취업도 안 되고 신용거래도 되지 않아 자기 가족의 기본적 생활도 꾸려나가기 힘든 사람들이 파산선고를 받고 면책을 받는 것이고, 그나마 수입이 조금이라도 있어 기본적인 생활비를 제외한 나머지라도 갚아 나간 후 남은 채무를 면책받는 것이 개인회생이다. (중략) 어차피 못 갚는 빚, 무의미한 숫자 지워주고 경제활동에 복귀하여 자기 앞가림이라도 할 수 있게 해주지 않으면, 결국은 이 사람들은 국민 세금으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하는 사회복지의 대상자가 되거나, 심하면 홈리스, 범죄자가 되어 또 다른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수도 있다. 무엇이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것일까?”

■ 신불자 수, 신용위기 이전 수준 회복

“소비의 발목을 잡고 있던 신용불량자 문제가 이제 거의 정상으로 돌아왔다. 2003년 3월 295만명에서 2004년 4월 382만명까지 늘어났다가 지금은 297만명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 모두가 국민 여러분이 어려움을 참고 열심히 노력해주신 덕분이다. 국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노 대통령은 2006년 1월 8일 신년연설에서 ‘신용불량자 문제 정상화’를 선언했다. 신불자 수는 이후에도 계속 감소해 2006년 말 283만명, 2007년 말 266만명으로 내려갔다. 신용위기가 본격화되기 이전인 2002년 말 수준에 이르렀다. 소비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여정부의 신불자 대책은 단기성과보다 중장기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한 것이었다. 광범위한 사전 실태조사를 통해 대책 실효성을 높인 것도 과거와 다른 점이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의 말이다.

원금탕감 없이 시장경제 원칙대로 간다는 ‘원칙’이 지켜졌다

“일반적으로 경제정책의 성패는 중요한 원칙이 얼마나 잘 지켜졌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신불자 문제의 경우 원금탕감 없이 시장경제 원칙대로 간다는 정책당국 차원의 원칙이 일관되게 지켜졌다. 그 덕분에 오히려 조기에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005년 12월 감사원이 작성한 신용불량자 대책 관련 정책평가 보고서도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시책 추진 시 원금탕감 불인정, 재정투입 불가 등의 원칙을 견지하고, 신용불량자의 채무재조정을 금융기관 자율협약을 통해 실시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면서 정책효과를 거둔 것으로 판단한다.”

■ 금융선진화로 가는 길…이제 ‘신용테크’ 시대다

대량 신불자 사태 극복과정에서 금융산업계, 나아가 한국경제가 거둔 최고의 수확은 이같은 ‘원칙의 승리’와 평소 꾸준한 신용관리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틀이 마련됐다는 점이다. 개인은 물론 금융회사와 정부 모두의 인식의 변화다. 이동걸 금감위 부위원장(현 금융연구원 원장)의 설명이다.

“신용관리 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수십 년은 걸리게 돼 있다. 인프라 구축과 함께 금융 관행까지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적, 합리적 금융관행이 정착됐다고 평가할 단계는 물론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이 변하고 있는 건 분명한 성과다. 이제 금융거래에 있어 신용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부는 신불자 대책 추진과정에서 선진 금융시스템에 필수적인 개인신용 관련 인프라 정비 작업을 병행했다. 개인 신용평가회사(CB) 설립을 지원하는 한편, 신불자 등록제도를 폐지(2005년 4월), 금융회사의 자발적 정보 공유와 신용평가능력을 높이도록 해 신용정보시장의 환경을 바꿔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은 멀다. 한국개인신용(KCB), 한국신용정보, 한국신용평가정보 등 3개 개인신용평가회사 경쟁력을 높여 보다 정밀한 신용정보를 보다 많은 금융기관들이 공유하는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도 큰 숙제다.

2008년 1월부터는 개인 신용도에 따라 대출한도와 금리 차등폭이 더 벌어지게 된다. 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 산정 기준이 보다 강화된 ‘바젤Ⅱ’ 도입에 따른 것이다. 시중은행들은 주택담보대출에 대해서도 차주의 신용등급에 따라 금리 차등 폭을 더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바꾸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대출자에 대한 신용평가가 좀 더 정교해져 신용도가 우수한 고객은 이전보다 더 좋은 대출 조건을 적용받게 되고, 그렇지 않은 고객은 돈 빌리기가 더 어려워지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불과 5~6년 전 수백 만 명의 신용불량자를 잉태했던 한국경제. 지금은 ‘신용점수’가 개인의 경쟁력을 결정짓는 ‘신용테크’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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