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센터의 엽근채소팀 고랭지기동반이 안반데기마을 배추밭을 찾았다. 엄태진 연구원(왼쪽 끝) 등 ‘배추밭 그 사나이’ 3인방이다. |
영동고속도로 횡계IC에서 자동차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의 ‘안반데기마을’. 태백시의 ‘매봉산’과 ‘귀네미마을’, 평창의 육‘ 백마지기’와 함께 대표적인 고랭지배추밭이다. 차량이 서로 비켜가기도 어려울 만큼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지다 시야가 확 트이며 산등성이마다 푸른 멍석을 깔아놓은 듯 고랭지배추밭이 펼쳐진다.
해발 900미터 높이에 위치한 안반데기마을의 배추밭 면적은 약 198만 평방미터에 이른다. 제11호 태풍 ‘할롱’이 지난 며칠 후 이곳 배추밭을 찾은 이들은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농업관측센터의 엽근채소팀 고랭지 기동반이다. 엄태진(30) 연구원을 중심으로 박재영(30), 송영민(24) 씨 등 3인이다. 농업관측센터는 농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 엽근채소·양념채소·과일·과채·축산·곡물·버섯 등에 대한 작황 및 시장 출하 관측을 하고 있는데, 현지에 상주하며 작황 등을 관측하는 경우는 고랭지배추가 유일하다. 고랭지 기동반은 5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평창군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상주 관측활동은 지난해부터 시작했다.
출하량 따라 가격 등락폭 커 5월 말~10월 초 상주 관측
엄태진 연구원은 “배추만 상주 관측을 하는 것은 배추가 출하량에 따라 가격 등락폭이 가장 큰 작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여름철부터 추석까지 시중에 출하되는 배추의 90퍼센트 이상이 고랭지배추이다 보니 고랭지배추 작황에 따라 가격이 폭등·폭락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이들의 보고는 농업관측센터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관측정보에 반영되고 있다. 그렇지만 기동반이 배추를 직접 기르는 것도 아닌데, 가격 안정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궁금했다.
“기동반이 현지 배추 작황을 관찰해 병이나 수해로 작황이 나빠져 일주일 뒤 혹은 한 달 뒤 출하물량이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해 보고하면 농업관측센터에서 관련 정보를 종합, 정부의 비축물량을 더 풀거나 줄여 시장가격을 안정시키게 됩니다.”
엄 연구원은 “가격이 폭락했을 때에는 산지 폐기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극단적인 경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고랭지 기동반의 관측 대상은 강원지역 고랭지배추밭(약 5천 헥타르)의 70퍼센트가량이다. ‘반장’ 역할을 하는 엄 연구원이 안반데기·귀네미·매봉산 등 고랭지 3곳을, 박재영 씨와 송영민 씨는 삼척·태백·정선의 중고랭지(해발 600미터 이하)를 대상으로 매일 오전 8시부터 자신이 맡은 지역 배추밭에서 바이러스병·무름병·무사마귀병 등의 발병 여부와 기상 상태를 관찰하고 당일 오후 6시 이전에 대전의 농업관측센터로 보고서를 보낸다. 이들이 각각의 차량으로 평창군 대관령면 수하리의 숙소 겸 사무실을 출발해 약 200킬로미터 거리를 오가며 들르는 배추밭이 1인당 30~40곳이다.
엄 연구원은 올해 고랭지배추 작황에 대해 “해발 600미터 이하의 중고랭지 작황은 지난해보다 안 좋고, 600미터 이상인 고랭지의 경우 지난해보다 좋아 서로 상쇄할 것으로 본다”고 예측했다.
보통 6월 말까지는 중고랭지에서 출하가 이뤄지고 이후 배추 수요가 가장 많은 추석 무렵까지 고랭지에서 출하가 이뤄진다. 추석 이후에도 평창군 방림면 지역에서 2기작 배추가 출하된다고 한다.
엄 연구원은 “올해는 지난해와 비교해 볼 수 있어 관측이 좀 더 용이해졌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동경로를 좀 줄여보려고 아무리 찾아봐도 샛길은 없더라고요, 하하.”
올해 처음 고랭지 기동반에 참여한 송영민 씨는 “내비게이션에 관측 대상 배추밭 위치를 일일이 입력하고도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워낙 배추밭이 넓다 보니 이 배추밭이 그 배추밭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도시민·농가 입장 모두 반영한 가격 안정에 주력
원칙적으로 기동반 활동은 주중 5일이지만, 할롱이 지날 때처럼 큰 기상이변이 있을 때에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주말에도 자신이 맡은 지역을 돌아본다. 다행히도 이들 모두 미혼이다 보니 주말 관측활동에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매일 배추밭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 좁은 길을 따라 200킬로미터를 오가고, 비 오는 날 굴러떨어진 돌에 놀라기도 하며, 배추를 실어나르는 5톤 트럭과 좁은 길에서 마주쳐 ‘차가 작은 죄’로 서로 비켜갈 곳이 나올 때까지 무조건 후진하는 일을 겪기도 한다. 때로는 배춧잎을 들여다보고 사진을 찍다 배추밭 주인에게 야단을 맞기도 했다.
엄 연구원은 “이곳 농민들이 정부에 대해 하고 싶은 이런저런 말씀을 우리들에게 하신다”고 했다. “가격 상승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폭락에 대한 대비도 해 달라고들 하세요.”
농림축산식품부는 배추가격 안정을 위해 고랭지 기동반을 통한 모니터링 강화 이외에도 올해 처음 강원도와 함께 고랭지배추 주산지 5개 농협의 참여로 고랭지배추 출하를 일원화하는 노력을 더하고 있다.
8월 18일까지 배추 도매시장 평균가격은 작년과 평년 동기 대비 각각 44퍼센트와 22퍼센트 낮은 수준이며, 8월 하순과 9월 상순 가격도 작년과 평년 대비 낮아질 전망이다. 1년 내내 우리 밥상에서 빠지지 않는 배추. 배추가 적당한 가격으로 우리 밥상에 오르는 데 기여하는 ‘배추밭 그 사나이들’이 강원도 고랭지에 있었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