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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은 언제부터 주고받았을까?

알고 나면 더 흥미로운 세시풍속 이야기

2016.02.08 2016 설 고향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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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세배하기, 정월 대보름에 부럼깨기, 동짓날에 팥죽 먹기…. 24절기와 명절에 하는 의식이나 놀이를 ‘세시풍속’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라졌거나, 현대에 와서 그 의미나 형태가 달라진 세시풍속에 대해 알아본다.

설날 아침, 차례가 끝나면 집안의 어른들께 세배를 한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원하는 일 이루어라.” 세배를 하면서 훈훈한 덕담도 오간다. 아이들에게 세뱃돈을 주기도 한다.

이러한 풍경은 오랜 전통처럼 이어져 내려온 것 같지만, 사실 ‘세뱃돈’을 주고받는 풍습이 생긴 건 얼마 안 됐다. 전문가들은 세뱃돈 풍습이 중국에서 건너온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에는 아랫사람이 새해 인사를 하면 웃어른이 붉은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주며 ‘궁시파차이(恭喜發財, 돈 많이 버세요)’라는 덕담을 건네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이 일본으로 전해졌고, 일제강점기에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라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 대신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반까지 세배에 대한 성의 표시로 돈 대신 곶감, 대추 등의 과일과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이후 경제 발전과 함께 1960년대 후반이 돼서야 10원짜리 지폐를 세뱃돈으로 주고받으며 세뱃돈 문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시풍속이란 음력의 월별 24절기와 명절에 관례적으로 해온 전승적인 행사나 놀이를 말한다.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풍속이 있는가 하면, 옛 문헌에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것도 많다. 또 전래 과정에서 풍속의 내용이나 시기, 때로는 그 기원에 대한 설명까지 바뀌는 일도 있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풍속이 많지만 세뱃돈처럼 중국이나 일본 등 외래의 것들이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변형되어 정착한 것도 있다.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박현순 교수는 세시풍속에 대해 “어떤 놀이가 특정 시점에 베풀어지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면서 “그 이유를 속속들이 알기는 어렵지만, 농경사회의 성격과 그 문화의 특징적 요소들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 해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세뱃돈 문화 1960년대 후반 등장

세시풍속을 소개한 조선시대 문헌 〈경도잡지〉에는 설날과 정월 대보름에 지면을 많이 할애할 정도로 음력 1월에 세시풍속이 집중되어 있다. 이 가운데 ‘나무 시집보내기’나 ‘동신제’, ‘사자놀음’, ‘지신밟기’, ‘들놀음’, ‘매귀놀음’, ‘풍어놀이’ 등 기록으로 전해지지만 현재는 잊힌 행사나 놀이가 대부분이다.

‘소발(燒髮)’은 1년간 빠진 머리카락을 밀랍 종이 포대인 납지대에 보관했다가 설날 해질 무렵 문 밖에서 태우는 풍습이다. 조선 후기 집필된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소발은 나쁜 병을 물리치기 위한 예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발간된 〈만국사물기원역사〉에는 정월 16일에 머리카락을 태운다고 기록돼 있다.

‘인일하례(人日賀禮)’라는 풍속도 있었다. 인일은 정월 7일로, 고려 때는 이날 왕이 사람 모양의 장식품인 ‘인승’과 녹패를 내려주었다고 한다. 조선에 와서는 각신(閣臣)들에게 동인승(머리꾸미개)을 나누어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동인승은 신선을 새긴 자루가 달려 있으며, 조그마한 둥근 거울 모양으로 구리로 만든 것이다.

정월 대보름의 풍속 중 ‘석전’도 있었다. 삼문(숭례문, 돈의문, 소의문) 밖의 주민과 아현(阿峴) 사람들이 만리동 고개에서 돌을 던지며 서로 싸웠는데, 삼문 밖 편이 이기면 경기 일대에 풍년이 들고, 아현 편이 이기면 팔도에 풍년이 든다고 했다.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행사라고 해도 관청에서 거듭 금하려고 할 만큼 위험한 놀이였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이를 금지하며 완전히 사라졌다.
섣달그믐날 밤에 잠을 자지 못하게 하는 ‘수세’도 있다. 이날 잠이 들면 눈썹이 센다는 속설로 만든 놀이다. 설날 밤에는 아이들로 하여금 신발을 감추어두게 하는 놀이도 있었는데, 흔히 ‘야광귀신 쫓기’라 부르는 이 풍속은 오늘날 일부 지역에서 전해진다. 대개 설에 행해지는데 어떤 지역에서는 대보름에 나타난다. 지역에 따라 신발이 아닌, 아이의 옷을 입고 간다는 식으로 바뀌거나 귀신이 할멈의 형상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이는 오늘날에는 사라진 풍속이다.

윷놀이는 신년 운세 보는 도구

전래 민속놀이 중 오늘날에도 가장 널리 행해지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윷놀이다. 명절날 모인 일가친척들이 참여해 친목을 다질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동국세시기〉에는 윷놀이가 섣달그믐날의 풍속으로 기록됐다. 그 시절 윷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닌 운세를 보는 도구이기도 했다. 〈경도잡지〉에는 이와 관련한 64괘의 요사가 소개됐는데, 세 번 윷을 던져 순서대로 얻은 점수를 요사와 대비했다. 개, 도, 걸을 얻었다면 ‘활이 화살을 얻은 것과 같다’는 요사에 해당한다.

그네도 지금과는 다르다. 그네는 단오 전후에 여성들이 하는 놀이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옛날에는 남녀 모두 즐겼으며 한식날 놀이로 삼기도 했다.

줄다리기는 정월 대보름 풍속으로, 풍년을 비는 농경의식에서 비롯됐다. 1년에 농사를 시작하는 시점에 풍흉을 점치는 행위인 셈이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는 한가위에 줄다리기를 했으며, 동래 지방에서는 단오에 하는 등 시기는 각기 다르다.

‘쥐불놀이’는 보통 논둑이나 밭둑에 불을 놓던 놀이로, 지금은 화재의 위험으로 금지하는 분위기다. 6·25전쟁 이후로는 빈 깡통에 불씨를 담아서 빙빙 돌리는 놀이로 달라졌다. 이때 마을 간 경쟁도 일어나서 어느 마을의 불길이 더 센지, 혹은 어느 마을에서 더 빨리 불길을 잡는지에 따라 길흉을 점치기도 했다. 유래는 다양한데, 조선 초기 혹은 그 이전부터 ‘쥐날’에 불을 놓는 풍속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귀밝이술’도 있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 식전에 소주나 청주를 차게 해서 마시는 풍속으로, ‘이 술을 마심으로써 귀가 밝아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정월 대보름 풍속이지만 옛 문헌에는 ‘설날에 일찍 마시는 술’이라는 기록도 발견된다.

도움말 박현순(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사진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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