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일본 정부는 오랜 경제 불황에 ‘잃어버린 20년이 아니라 잃어버린 30년이 될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고 전국 단위 규제개혁을 총괄하는 총리 자문기관인 ‘규제개혁회의’를 통해 ‘아베노믹스 전략특구’를 제안했다. 이후 여관업법, 의료법, 건축기준법, 도로법, 농지법 등 10여 개의 법을 고치고 새로 만들어가면서 속도감 있는 규제개혁을 단행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했다. ‘국가전략특구’ 전략 덕분에 농업특구로 돌파구를 찾은 효고현 야부시 마을과 가정식 민박으로 성공을 거둔 도쿄도 오타구를 찾아가봤다.
한국의 전형적인 산간마을을 연상케 하는 계단식 논밭과 여기저기 보이는 고령의 농민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일본의 효고현 작은 마을 야부(養父)시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 마을은 일본 규제개혁 성공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곳이다. 일본 오사카국제공항에서 50인승 소형 프로펠러기를 타고 40여 분을 날면, 비행기 한 대만이 뜨고 내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다지마 비행장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부터 다시 40여 분 차를 타고 가야 야부시에 다다른다.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빠져나가고 남은 농업 종사자들은 고령화하면서 나날이 인구가 줄던 이 마을에는 최근 새로운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분명 수년 전까지 ‘이러다 마을이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던 곳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2014년 이후 11개의 농업법인이 들어선 효고현 야부시는 지역 특산물인 산초를 재배· 가공해 유럽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사진은 농부들이 산초를 채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야부파트너스) |
인구 줄던 산간 농업마을 야부시의 변신
2014년 ‘농업특구’로 지정, 농업법인설립 규제 완화
야부시에 변화가 시작된 건 일본 아베 신조 정부가 규제개혁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국가전략특구’ 전략에 따라 2014년 ‘농업특구’로 지정되면서 부터다. 일본 정부가 2013년 국가전략특구 지정사업을 추진하자 위기에 처한 야부시는 ‘농업법인 설립 규제 완화’부터 요청했다. 이전까지는 농업법인을 만들고 농산물 가공과 유통사업화를 하려 해도 기업 출자한도 규제 등으로 제약이 많았다. 법인의 임원 중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이 최소 40%는 돼야 한다는 규정도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러나 2014년 야부시가 농업특구로 지정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현재는 농사를 짓는 사람 한 명만 임원으로 두면 농업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기업의 투자한도도 자본금 총액 기준 ‘50% 미만’으로 높였다. 그 결과 현재 야부시에는 총 11개의 농업법인이 만들어졌고 총 60여 명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었다.
변화는 ‘청년층의 유입’으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야부시가 직접 투자하고 민간이 운영하는 농업법인 ‘야부파트너스’의 직원 4명은 모두 외지인이다. 오사카 등 대도시에서 온 청년들이 야부시의 쌀에 ‘스토리’를 부여하고 타 지역에서 생산되는 것과 풍미가 다른 산초를 특산품화해 유럽 수출에도성공했다. 야부파트너스에서 플래너로 일하고 있는 쓰다 스나오 씨는 오사카에서 잘나가는 웹디자이너로 일하다 야부시로 옮겨왔다. 작은 산간마을의 ‘새로운 도전’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쓰다 스나오 씨는 “처음에는 배타적이고 폐쇄성이 강한 작은 시골마을에서 ‘뭐하러 왔느냐’는 식의 시선을 받기도 했지만 이 마을의 농산품 하나하나를 분석해 차별화 요소를 찾아내고 스토리를 만들어가면서 조금씩 벽을 허물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때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많고 힘들지만, 최근 독특한 풍미를 지닌 야부시의 산초를 유럽에 수출하게 됐을 때 받은 감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며 “결국 이런 도전이 주는 재미와 즐거움이 계속 나를 이곳에 있도록 만든다”고 덧붙였다.
일본 규제개혁의 상징 국가전략특구는 야부시와 같은 산간마을뿐 아니라 도쿄 등 대도시에서도 성장촉진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 기존 숙박업자와 협회의 반발을 달래고 설득하면서 도입한 ‘가정식 민박’ 제도도 그중 하나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숙박시설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도쿄 하네다공항 인근 오타(大田)구를 ‘민박특구’로 지정한 것이다.
‘가정식 민박’으로 돌파구 찾은 도쿄도 오타구
지자체, 민간기업, 중앙정부가 함께 뛰는 일본
이 정책은 ‘스테이저팬’이라는 민간 숙박·주택 중개기업의 제안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이뤄졌다. 스테이저팬의 미쿠치 소노스케 대표는 “에어비앤비 등의 주택 공유 및 제공 비즈니스가 각광을 받기 시작하면서 분명 사업 기회가 생길 것으로 봤다”며 “일본에는 비어 있는 원룸이나 가옥이 많은데, 이를 활용하면 주택 소유자나 비즈니스 혹은 관광차 일본을 길게 방문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동안은 숙박업법 등의 제약에 막혀 이 아이디어를 실현하기가 어려웠지만, 정부가 우리 회사의 아이디어를 수용해 지금의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현재 가정식 민박은 기존 숙박업체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최소 6박 이상일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만들었는데, 장기간 비즈니스를 위해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는 일본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하면서 숙박할 수 있어 점점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오사카를 비롯한 다른 지역에서도 이 전략특구에 관심이 높다. ‘사소하지만 중요한’ 규제개혁도 있었다. 지난해 도쿄 신주쿠 거리 일부 구역에 우리나라의 푸드트럭과 유사한 ‘키친카’가 등장했다. 오사카에서는 길거리에서 바자회와 수공품 축제를 열 수있게 됐다. 일본 국민들은 물론 해외에서 온관광객과 사업차 방문한 외국인들이 먹고, 놀고, 즐길 수 있도록 복잡한 도로법의 각종 규제를 조금씩 풀어서 만들어낸 성과다.
일본 전문가인 산업연구원 김양팽 연구원은 “일본은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위기감 속에 지자체, 민간기업, 중앙정부가 함께 뛰고 있는데 우리는 다른 정치 쟁점에 밀려 좋은 취지와 기획으로 만들어 낸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법제화가 지지부진하다”며 “관광, 의료, 농업과 농생명과학 등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산업을 활성화하겠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제 시간이 얼마 없다”고 조언했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