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가 발명을 낳는다는 말은 알아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보통 사람’ 윤상구 씨도 그중 하나였지만 이젠 어엿한 준발명가이자 예비창업자다. 취미를 발전시키다 마주한 불편 그리고 아이디어, 제품 개발, 박람회 수상까지 이어진 여정엔 정부의 물적 지원과 멘토링이 주효했다.
바디 팟 개발자 윤상구 씨. 취미에서 얻은 영감으로 창업의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
사진 촬영 때 불편함에서 비롯한 발명품
“사진 찍는 걸 워낙 좋아하다 보니 일이 이렇게 됐네요.”
나이보다 퍽 ‘young’해 보이는 것도 취미 덕일 수 있겠다 싶다. 윤상구(55)씨는 대기업 연구소에서 퇴직한 뒤 줄곧 사진 찍기를 취미로 삼아왔다. 피사체가 될 새로운 사물을 접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삶에 활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양잡지 편집장을 지내기도 한 역사교육 전문가 아내와 협업하며 여러 권의 책을 냈다. 아내는 글을 쓰고 남편은 사진을 찍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동갑내기 부부의 ‘50세 기념사업’으로 출간한 <역사가 보이는 조선 왕릉 기행>. 2009년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관광사진 공모전 입선. 이어 언론사 논픽션 공모전에서도 우수상을 받았으니 성공적인 부창부수 케이스다.
“꼬박 1년 동안 왕릉 사진 찍으러 다닐 때 아쉬운 게 있었어요. 왕릉들이 대개 언덕이니까 다양한 렌즈를 장착하고 촬영하는 게 불편하더라고요. 자세가 불안한 거죠. 삼각대 말고 더 편하게 자세 유지를 해주는 장치가 없을까 고민한 게 사건의 시작이었어요.”
이 사소한 불편에서 비롯된 발명품이 바로 ‘바디 팟(Body Pod)’이다. 바디 팟은 망원렌즈 등 무거운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나 스마트폰을 흔들림 없이 받쳐주는 보조기구다. 목걸이 형태로 몸에 휴대하고 간단한 조작으로 카메라를 받칠 수 있다. 목걸이를 분리하면 받침 샤프트를 지면에 놓고 접사 등 근접촬영도 할 수 있다.
박람회에서 외신기자 선정 Top 3 어워드 수상
바디 팟은 2016년 10월 GMV(Global Mobile Vision) 박람회에서 외신기자 선정 Top 3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GMV는 올해로 9회째인 모바일 전문 세계박람회. 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4개국을 주축으로 세계 각국 모바일 기술 전문업체와 바이어들이 정보 교환과 수출 상담을 한다. IT 모바일계의 중소기업 박람회인 셈.
어워드 수상 이후 윤 씨의 일상은 더 분주해졌다. 독일, 일본, 타이완 바이어들과 수출 상담이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입점도 준비 중이다. 제품 개발 때부터 드나들었던 중소기업청 창업진흥원 문턱도 더 낮아졌다. 관 주도의 창업지원제도에 대해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이제는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고 한다.
“세면대 물막이 꼭지로 첫 샘플을 만들었어요. 지인 예식장 가서 실험해봤더니 주변 반응이 좋은 거예요. 자신감이 생겨서 디자인 보강하고 특허 신청부터 했죠. 그런데 출원해서 등록까지 2년이 걸렸어요. 아는 것도 없이 시작한 일이라 지루하고 어렵다고 느껴져 포기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알게 된 것이 창업진흥원의 창업지원공모. 낙담 직전에 프레젠테이션을 신청했다. 그러나 결과는 두 번의 낙방. 공모된 기발한 개발 아이템들에 기가 질렸다. 한마디로 “선수들이 너무 많았다”고 그는 술회한다.
다행히 기회가 다시 찾아왔다. 거주지인 수원 영통에 중소기업청 경기지방청이 창업진흥센터를 개설했다는 소문에 홀린 듯 달려갔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창업맞춤형사업’으로 선정됐다. 조그만 사무실과 인프라를 제공받을 수 있었고 창업지원금 3000만 원도 지원받게 됐다. 제품개발비 외에 멘토링 비용으로 1000만 원도 배당됐다. 물적 지원도 고마웠지만 무엇보다 ‘나 홀로 연구’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어 좋았다. 입주한 16개 업체와 정보를 교류하며 네트워크도 쌓을 수 있었다.
GMV에서 TOP 3 어워드를 수상한 바디 팟. 휴대하기 편하고 조작하기 쉬운 카메라 거치장치다. |
외국서도 구매 상담… “운 좋은 정책 수혜자”
3000만 원이 큰 액수이긴 하지만 제품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개발 비용으로는 빠듯했다. 큰 몫을 차지하는 사출금형비만도 2000만 원이 넘었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수도 없이 발품을 팔았다. 겨우 찾아낸 방법이 패밀리 금형. 금형 벌수를 줄여 비용을 줄였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목걸이 스트랩과 스틱 소재를 구하기도 까다로웠다. 다행히 연구소에서 부품과 소재를 다루던 직장 경험과 인맥이 도움이 됐다.
“돌아보면 이 모든 게 혼자 내 돈 들여가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요. 창업지원금도 결정적인 계기이지만 GMV 출품한 것도 관의 도움 없었으면 안 될 일이었죠. 이미 창업센터에서 나온 졸업기업은 참가 자격이 없는 걸로 알았는데 코트라(KOTRA)에서 참가를 독려하며 방법을 만들어줬습니다. 박람회 나가서도 바이어들과의 수출 상담에 큰 도움을 주셨고요. 제가 운 좋은 수혜자라고 할 수도 있겠죠. 이번 일로 ‘우리나라 정부가 정말 일 많이 하는구나, 자세히 찾아보면 나를 돕는 정책과 제도가 얼마든지 있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마중물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내가 뭘 하려고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윤씨는 앞으로도 창업지원제도를 십분 활용하려 하고 있다. 창업 멘토링은 물론이고 5000만 원 예산의 R&D 지원도 추가 신청할 예정이다. 마케팅 지원 사업대상자도 신청했지만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미 자신감을 얻은 터라 그에게 길은 늘 열려 있다.
“정부에 고맙습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건 복잡한 서류예요. 절차의 간소화가 절실하다는 거 몸소 느꼈습니다.”
[위클리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