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금지법의 시행 등 청렴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 일환으로 국민권익위원회는 청탁금지법으로 바뀐 삶의 이야기 등 청렴과 관련된 국민들의 수기 공모전을 진행했다. 올해로 세번째를 맞이한 공모전 우수작을 정책브리핑에서 공유한다. 과연 우리는 생활 속 청렴을 얼마나 실천하고 있을까? 쉬운 듯하면서도 어렵게 느껴지는 청렴의 의미를 국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번 더 생각해보자.(편집자 주)
* 수상자 중에는 공익신고자가 포함돼 있어 개인 실명 등은 밝히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우리나라에는 아름다운 산이 많다. 그 산을 끼고 유명 사찰이 자리하기에 예로부터 명산대찰이라 불러왔다. 사람들은 그런 산에 올라 호연지기를 기르고 절을 찾아 기도하며 지나온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
예전에는 이런 명산대찰에 들어가자면 입장료가 필요했는데 2007년이 넘어서자 국립공원의 입장료가 폐지되었다. 대신 사찰에 입장하는 사람에게는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런데 국립공원 내에 있는 사찰에 입장하는 사람들에게 문화재 관람료를 받자니 미안하기도 하고 때론 마음이 내키지 않을 때가 있다.
“우리 일행은 절에 들어가지 않고 등산만 할 건데 무엇 때문에 문화재 관람료를 내라는 거요?”
국립공원매표소 앞에서는 입장객들이 이런 말을 하면서 매표소 직원과 하루에 한두 번씩은 크고 작은 실랑이가 벌어지곤 한다. 그렇다고 절은 구경하지 않겠다는 입장객의 말을 믿고 입장권 없이 그냥 들여보내는 것도 규정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 국립공원을 관리하는 직원들은 매표소에 서서 입장권을 요구하면 내가 신도로 있는 절에 가는데 돈을 내느냐고 따진다. 또 등산객들은 절에는 들어가지 않을 건데 돈을 내라면 어쩌느냐고 따지고 든다.
그러니 어떤 때는 미안함에 손이 오그라들고 입술이 떨어지지 않지만, 임무를 게을리할 수는 없다. 국립공원에 입장하는 사람들이 문화재 관람료를 내지 못하겠다고 주장하는 말에 전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국립공원매표소에 근무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국립공원입장료가 폐지된 후 사찰을 포함하고 있는 국립공원에서는 문화재 관람료라는 명목으로 1인당 1000원에서 많게는 4000원까지 받는 것이 사실이다.
사찰의 신도라고 우기며 표를 끊지 않고 입장하려는 사람들에 대응하는 길은 조계종에서 발행하는 불교 신도증을 보여 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 모양새로 보아 등산을 하는 사람이 분명한데 사찰의 신도라고 우긴다. 그래도 매표소에서는 불교 신도증을 보여 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정말로 등산객이라면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되었으니 당연히 입장료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국립공원 입장객이라도 모두가 절에 구경을 간다고 예상해 입장료를 받거나 불교 신도증을 요구하고 있으니 서로가 곤혹스럽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국립공원 아랫동네에 사시는 어머니와 형수님께서 부처님께 올릴 공양물을 들고 매표소로 다가오셨다. 그런 두 분께 내가 말을 걸었다.
“절에 가시려고요?”
“그래, 오늘이 초하루라서 아들과 손자들을 위해 불공 좀 드리려고 한다.”
어머니는 형수님을 데리고 한 달에 보름도 넘게 절에 가셔서 불공을 드린다. 그러자니 두 분은 내가 지키는 매표소를 반드시 통과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어머니나 형수님께 입장권을 끊으라거나 사찰의 신도증을 요구하지 않는다.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입장을 시킨다.
두 분이 사찰의 신도는 분명하지만 사찰의 신도증은 가지고 있지 않다. 어머니와 형수가 무료로 입장할 때마다 남들이 볼까 봐 여간 조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국립공원의 매표소를 지키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입장권을 구입하라고 말한다. 또는 불교 신도증을 보여주어야 입장을 시킨다. 그런데 어머니와 형수에게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그냥 입장을 시키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부정을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통해 볼 때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 가족의 부정으로 인해 휘청거린 정부가 여럿 있었다. 또는 자식과 형제가 저지른 부정으로 대통령이 사과하고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때도 있었다. 가장 가까운 예로 40년 지기가 저지른 국정농단에 의한 부정으로 국민이 촛불까지 들고 목청을 돋우지 않았던가?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나는 핏대를 세우며 부정을 성토했다. 그리고 지도자를 지켜주지 못하고 부정을 저지른 그들의 가족을 원망했었다. 그랬었는데 나는 그런 사실도 잊고 내 가족인 어머니와 형수를 국립공원에 부정으로 입장을 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러자니 내 얼굴이 붉어지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생각을 바꾼다.
‘이까짓 입장권 몇 푼이나 된다고……. 어머니와 형수는 우리 가족이고, 사찰의 신도가 분명하지 않은가? 또 내가 문지기인데 입장시키지 못할 까닭이 있나?’ 나는 애써 몇 푼 안 되는 돈이라고 자위했으나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양심이 거리낀다.
‘누가 내 이런 부정한 행동을 안다면 뭐라고 할까?’ 때론 불안하기도 하고 양심에 찔리기도 해 나는 얼마 전부터 부모님께 불평을 늘어놓았다.
“어머니, 차라리 조계종에서 사찰 신도증을 신청해 발부받아 가지고 다니세요. 그러면 어머니도 떳떳하고 저도 부담스럽지 않고…….” 그러면 어머니는 역정부터 내셨다.
“아니, 아들이 절간의 매표소에서 일하는데 엄마 하나 입장을 못 시킨다고?” 정말 못 말리는 어머니시다. 아들이 국립공원매표소에 근무하는 것을 기회로 공짜로 입장을 하겠다는 얄팍한 술수를 쓰고 있는 것이다. 아니면 신도증을 발급하는데 돈이 아까워 그러시는 건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머니나 형수가 분명히 사찰의 신도인 것은 맞다. 그러나 신도증을 갖추지 않았으니 무단입장이나 마찬가지다. 이처럼 나는 어머니와 형수를 국립공원의 사찰에 입장시킬 때마다 마음의 갈등을 겪으며 고민을 했다. ‘아무리 적은 돈이라도 부정은 부정인데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부정과 양심의 두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때가 여러 번이다. 국립공원에 입장하는 불교신자로써 신도증을 소지한 사람은 입장료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는 입장료를 받고, 불교 신도들한테도 신도증을 확인하고 입장을 시킨다. 그런데 부모라 하여, 형수라 하여, 돈도 받지 않고 신도증도 확인하지 않고 그냥 국립공원의 사찰에 한 달에 보름 이상을 입장시키고 있으니 이는 부정이고 특혜인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그동안 부정과 부패를 척결해 건강한 나라를 만들려고 온 국민이 부단히 노력해왔다. 그런데 내 세대에 와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문화재 관람료라는 적은 돈이라 하여 눈을 질끈 감고 있으니 언제부터인가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얼마 동안을 고민하던 나는 문화재 관람료라는 적은 돈으로 청렴과 결백이 무너질 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새로운 방법을 생각해 냈다.
“형수님, 조카한테 어머니 사진과 형수님 사진을 좀 보내주세요.”
“사진은 어디에 쓰시게요?”
“두 분께 신도증을 발부해 드리려고요.”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겪은 갈등의 이야기를 대충 해드렸다. 그러자 형수는 빙그레 웃으며 반문했다.
“나도 그동안 삼촌을 생각해서 신도증을 발급받자고 어머님께 말씀드렸다가 역정만 들었어요. 아들이 매표소에서 일하는데 왜 헛되이 돈을 쓰냐고…….”
사실 신도증을 발급받자면 1만원의 돈이 필요하다. 거기에다 매년 1만원을 내고 갱신을 해야 한다. 그러니 90살에 가까운 어머니께는 아까운 돈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신도증을 발급받지 않고 입장하는 것은 법을 지키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머니와 형수의 신도증을 발급받으려면 매년 2만원이 필요하다. 어머니께서는 그 돈을 왜 낭비하느냐고 역정을 내실 게 분명했다. 예전에도 그런 일 때문에 언성을 높인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믿는 부처님이 계신 내 절에 가는데 왜 돈을 내라고 하는 거야?” 그렇게 우기시다가 뜻대로 안 되면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이 있다. “국립공원매표소에 근무하는 내 아들 덕 좀 보려고 그러는데 누가 시비야?”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목이 턱 막히며 누가 들을까 무섭기까지 하다. 어떻게 생각하면 가족인데, 그깟 몇 천 원짜리 공짜로 입장을 시켜주는 것인데, 뭘 그렇게 따지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부정이라는 것은 애초 아주 작은 돈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한마디로 부정과 부패는 바늘도둑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나는 서울의 조계종으로 돈과 사진을 보내 어머니와 형수님의 불교 신도증을 발급받았다. 그런데 발급받은 신도증을 두 분께 전해주지 못하고 매표소 책상 속에 넣어두고만 있다. 분명 어머니께 신도증을 건네주면 역정을 내실 것이 뻔하다. 그러면 내 마음도 편치 않고 어머니 마음도 편치 않을 것 같아서다. 그래서 흔히 말하는 장롱면허증이 아닌 장롱신도증이 되고 만 것이다.
그리고 해가 바뀔 때마다 신도증을 갱신해 매표소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있다. 누가 가족이라 하여 공짜로 입장을 시킨다고 이의를 달면 신도증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이제는 매표소에 서서 다른 사람들에게 입장권을 요구하고 신도증을 보여 달라고 해도 떳떳하기만 하다.
“오늘부터는 백중기도를 드려야 하니 며칠은 절에 오르내릴 게다.” 어머니와 형수는 오늘도 매표소를 지나가시면서 나한테 기도 사실을 알렸다. 이제는 두 분이 문화재 관람료를 내지 않고 들어가셔도 걱정을 하지 않는다. 책상 속에는 두 분의 신도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그깟 돈 얼마나 된다고……. 우리 가족의 일인데 설마 괜찮겠지. 이렇듯 아주 조그마한 일에 눈을 감고 부정과 결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 보면 점점 일이 커져 개인은 물론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이는 개미구멍으로 저수지의 둑이 무너질 수 있다는 얘기와 같으니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조그맣게 뚫어진 내 마음의 개미구멍을 막기 위해 조계종으로부터 불교 신도증을 발부받고 매년 갱신하고 있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할 수 없으니 서럽기만 하다. 어머님은 돌아가셨고 나는 올해 퇴직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어머님의 심기를 편하게 해드린다는 뜻으로 어머니께 사찰 불교증을 전해드리지 못했던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다.
자료제공: 국민권익위원회 블로그(http://blog.daum.net/loveacr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