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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가는 길, 길섶 사연이 덤이로구나~

[올림픽 아리바우길 4~6코스를 가다]

2017.11.17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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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안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길에 무슨 역사가 있겠나 싶겠지만 올림픽 아리바우길 4~6코스는 어느 코스보다 역사가 깊게 서려 있다.

4코스 관문 ‘배나드리마을’은 뗏목이 드나들던 곳이라는 뜻을 지녔다. 조선시대 고종 때 경복궁 복원사업에 쓸 나무를 베어 실어 나르기 위해 뗏목을 띄웠던 지점이 바로 배나드리마을이 있는 송천이다.

5코스 안반덕은 1960년대 안반덕 인근에 살던 화전민의 피땀 어린 노력이 일군 땅이다. 자갈투성이 비탈길을 일구며 가을에는 도토리로 끼니를 때우고, 겨울이면 헬리콥터가 던져놓고 간 음식을 먹으며 개간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곳이다.

6코스 대관령옛길에는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을 비롯해, 강릉 친정집으로 향하던 신사임당 등 역사 속 위인들의 이야기가 서려 있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4~6코스는 강원도를 터전으로 삼았던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더듬으며 걸으면 더 운치 있는 여행이 될 것이다.

국내 최대의 고랭지 채소 생산지인 안반덕. 배추를 수확하고 난 다음에는 호밀을 심는다. 사진은 배추를 수확하고 난 후의 모습.(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내 최대의 고랭지 채소 생산지인 안반덕. 배추를 수확하고 난 다음에는 호밀을 심는다. 사진은 배추를 수확하고 난 후의 모습.(사진=문화체육관광부)

4코스 지도





배나드리마을 - 바람부리마을 - 안반덕

모정탑을 지나 산길을 쭉 내려오면 4코스의 관문인 배나드리 마을에 다다른다. 4코스에는 길동무가 기다렸다는 듯이 반긴다. 바로 코스를 걷는 내내 이어지는 송천이다. 송천은 강원 평창군 구절리와 유천리를 지나 아우라지에 이르는 강이다. 송천은 중간 중간에 다른 물길을 여러 번 만나 합쳐진 후 한강까지 흘러간다. 아우라지에서 골지천을 만나 조양강으로 불렸다가 정선군 가수리에서 동대천을 만나 동강이 된다. 동강은 영월에 서 서강을 만나 남한강이 되고, 남한강은 경기 양평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섞여 마침내 한강으로 불린다.

배나드리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숲길은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가 선선한 그늘을 만든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배나드리마을로 가는 길에 있는 숲길은 하늘 높이 솟은 소나무가 선선한 그늘을 만든다.(사진=문화체육관광부)

송천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곳인 배나드리마을은 마을 이름도 강 때문에 붙여졌다. 한양으로 물건을 실어 나를 배가 마을 앞을 왔다 갔다 해 배나드리마을이 되었다. 송천을 끼고 배나드리 마을을 지나 도암댐까지 가는 구간에 발왕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발왕산을 끼고 걷는 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아 걷기 좋다. 왼편에는 발왕산이 오른편에는 고루포기산이 길을 에워싼다. 응달에 자리한 고루포기산은 벌써 겨울을 맞을 채비를 마친 모습이지만 발왕산은 아름다운 가을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

곧 흰 눈으로 뒤덮일 발왕산은 말 그대로 ‘산이 불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화려한 단풍이 수를 놓아 장관을 이룬다. 겨울을 머금은 세찬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이 후루룩 떨어진다. 바람을 타고 새처럼 날아가는 낙엽은 늦가을에만 만날 수 있는 진풍경이다. 바삭바삭한 낙엽을 밟는 재미도 쏠쏠하다. 발아래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와 마른 낙엽이 신발에 닿는 촉감이 좋다. 하늘을 올려다보면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들어온다. 미켈란젤로의 그림 ‘천지창조’에 어울릴 법한 장엄한 모습이다. 평소에 보던 햇빛, 구름도 강원도에서 만나면 왠지 모르게 새롭다. 스산한 바람에 옷깃을 다시 여미고 걷다 보니 어느덧 도암댐 입구가 보인다. 도암댐 입구에서는 또 다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 발왕산 정상 언저리에 있는 용평리조트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저 아래로 흐르는 송천은 깊은 골짜기를 비집고 흐르는 협곡을 이룬다. 도암댐을 지나면 안반덕까지 가파른 산길이 이어진다.

5코스 지도





안반덕 - 고루포기산 - 능경봉 - 대관령휴게소

하늘아래 첫 동네, 안반덕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해발 1100m) 지대에 자리한 마을이다. 안반덕이라는 이름은 지형이 떡을 칠 때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 판인 안반 같은 모양을 띠고 있어 지어졌다. 안반덕은 배추밭이다. 백두대간과 만나는 가파른 산비탈에 펼쳐진 배추밭은 국내 고랭지 배추밭 중에서도 가장 넓다. 고원에 형성된 널찍한 배추밭은 제법 이국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안반덕에서는 추석 전에 배추를 수확해 늦어도 여름이 한풀 꺾인 9월 초에는 와야 넓게 펼쳐진 배추밭을 구경할 수 있다.

안반덕이 한눈에 보이는 멍에전망대.
안반덕이 한눈에 보이는 멍에전망대.

이곳은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곳이다. 1965년 전에만 해도 이곳은 자갈투성이 비탈길에 불과했다. 그러다 정부가 강원도 산자락에 흩어져 살던 화전민에게 직접 땅을 가꾸면 가꾼 사람에게 땅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 말을 듣고 모인 화전민들이 밤낮없이 땅을 일궈 자갈투성이 땅을 오늘날의 안반덕으로 개간해냈다. 쟁기를 채운 소와 낫을 들고 허리 필 새 없이 비탈과 씨름했던 과거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이 만든 새로운 역사가 됐다.

안반덕을 지나 대관령으로 가는 숲길.(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안반덕을 지나 대관령으로 가는 숲길.(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배추 수확이 끝난 안반덕의 모습은 여전히 푸릇푸릇하다. 비료작물로 심은 호밀이 배추가 있던 자리를 대신하고 있어서다. 호밀밭에서 풍력발전기를 연결하는 길은 어디를 걸어도 눈앞에 거스를 것이 없는 탁 트인 풍경을 자랑한다. 멀리 골짜기 너머로 보이는 백두대간을 향해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안반덕 구간을 지나면 이제부터 백두대간길이다. 고루포기산으로 접어드는 오솔길을 따라가면 5코스의 종점인 대관령휴게소가 나온다. 고루포기산에서 대관령휴게소까지 가는 길은 7km 정도. 이 구간이 올림픽 아리바우길에서 유일한 백두대간 구간이다. 그래서 5코스는 올림픽 아리바우길 코스 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대에 속한다. 그러나 해발 1000m가 높은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인지 걷기 쉬운 구간에 속한다. 그리 평탄하지도 그렇다고 험준하지도 않은 산마루를 따라 오르다보면 백두대간이 품고 있는 숲길이 나타난다. 숲길은 울창하다는 말이 모자랄 정도로 나무가 빼곡하다. 그 나무 사이를 비집고 걷다보니 어디선가 산짐승이 튀어나올 것만 같다. 그 옛날 봇짐을 지고 재를 넘던 사람들이 왜 목숨을 걸고 산길을 다녔는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6코스 지도





대관령휴게소 - 선자령 - 대관령옛길 - 보광리 게스트하우스

대관령휴게소에서 한숨을 돌린 뒤 다시 길을 나선다. 한참 산을 올랐으니 이제 내려갈 차례다. 6코스는 내리막길이 이어지는 구간이다. 올림픽 아리바우길 중 가장 역사에 얽힌 이야기가 많은 구간이기도 하다. 선자령으로 접어들면 국사성황당이 보인다. 이곳에는 산신과 국사성황신을 모시는 신당 두 곳이 있다. 산신은 김유신 장군, 국사성황신은 범일 국사다. 국사성황당은 두 신에게 제사를 올리면서 강릉단오제의 시작을 알리는 곳이다.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릉단오제는 파종을 끝낸 강릉 사람들이 액막이 제사를 지내고 한바탕 노는 세시풍속이다. 936년 강릉에 사는 왕순식이 왕건을 도우려 병사를 끌고 원주로 가는 길에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 것이 강릉단오제의 시초였다고 전해진다.

꼬불꼬불 굽은 대관령옛길을 넘어 반정으로 향하는 길.(사진=문화체육관광부)
꼬불꼬불 굽은 대관령옛길을 넘어 반정으로 향하는 길.(사진=문화체육관광부)

국사성황당을 뒤로하니 대관령옛길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관령옛길 6.3km 구간은 명승 제74호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대관령옛길로 접어드는 구간은 반정까지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진다. 사임당과 아들 율곡이 강릉으로 향했던, 강릉에 살던 많은 선비가 과거를 보기 위해 넘어야 했던 그 길이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니 강원 강릉시 구산면과 평창군 횡계면의 중간 반정이 보인다. 반정에 서서 저 멀리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를 바라본다. 대관령을 넘던 많은 사람의 땀을 식혔을 바람이 불어온다. 반정에서 길은 다시 숲으로 접어든다. 구불구불한 길도 다시 시작이다. 굽어진 길을 걷다보면 주막터가 나온다. 2008년 강릉시가 복원한 초가 주막터는 잠깐 엉덩이를 붙일 만한 툇마루가 있다. 다시 산을 내려간다. 한 3km쯤 내려왔을까. 우주선 모양의 화장실이 보인다. 이제 대관령옛길 구간이 끝났다. 이곳은 ‘원울이터’라고 불린다. 강릉 부사가 부임할 때 이 길에 들어서면 길이 험해서 울고, 임기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아쉬워서 울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관령옛길이 끝나도 내리막 구간은 이어진다. 설렁설렁 걷다보면 대관령 박물관과 보광리 갈림길이 나온다. 그 길을 조금만 더 지나다보면 보현사 버스 종점이다. 어느덧 6코스가 끝이 났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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