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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나무는···

[김창엽의 과학으로 보는 문화] 12월의 기부

2017.12.19 김창엽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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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돈을 대출을 받아 불우이웃 돕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럴 것 까진 없잖아요. 좀 여유 있을 때 하면 안되나요? 그렇잖아도 요즘 영업이 시원찮아 가뜩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넉넉하게 생활비 쓰고, 그때 그때 남는 돈으로 기부하는 건 정성이 떨어지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밀린 세금도 좀 내야 해서 겸사겸사 대출을 받은 거예요. 돈 좀 융통했다고 해서 우리가 당장 굶어 죽는다든지, 큰 일 나지 않는다는 건 당신도 잘 알잖아요.”

50대 중반으로 둘 다 자영업을 하는 부부가 가볍게 논쟁을 벌인다. 이런 저런 이유로 대출을 받은 쪽은 아내, 기부 행위 그 자체는 찬성하는 편이지만 대출까지 받은 돈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쪽은 남편이다. 각자의 주장은 그 나름 일리가 있다.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줄게 없어서 미안해하는 헌신을 이야기 한다. 2017년 겨울.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다시금 나무를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도 따스할 듯 하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쉘 실버스타인의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소년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고도 더 줄게 없어서 미안해하는 헌신을 이야기 한다. 2017년 겨울.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다시금 나무를 생각하며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도 따스할 듯 하다.<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 해가 저물면서 기부 혹은 이웃 돕기가 새삼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기부하는 사람들의 숫자도 전반적인 액수도 줄었다는 얘기들이 심심치 않게 언론매체 등을 통해 나온다. 아무래도 보통 사람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예전과 같지 않다는 방증일 게다.

어쩌면 한국 사회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기부는 연말 풍속, 혹은 세모 문화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 물론 꾸준히 국내외의 자선단체 등에 매달 일정액을 건네는, 즉 기부를 계절 가리지 않는 일상의 문화로 여기는 사람들도 적지는 않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기부 문화는 서구 사회가 주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종 자선단체나 공익단체들의 활동이 활발하고, 또 이들을 시민들이 금전적으로 지원하는 게 서구 사회에서는 일상적인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반면 한국 사회에서는 기부 행위 자체를 좀 껄끄럽게 생각하는 경우들도 드물지 않다. 돈이나 선행을 베푸는 데 꼭 인색해서만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알아서 남몰래 도우면 됐지, 무슨 단체니 기관이니 하는 곳에 ‘작위적으로’  금전을 지출하는 걸 심정적으로 불편해 하는 예가 있는 것이다. 공개적이기보다는 이른바 ‘남몰래’ 선행이 그런 예이다.

서구 사회와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한국 사회의 전통 가운데 기부와 유사한 역할을 한 것들이 적지 않다. 품앗이나 두레 등은 물론이요, 경조사 때 축의금이나 부의금 같은 것들 또한 크게 보면 기부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 전통의 이웃 돕기 방식은 소규모 마을 공동체 등의 해체와 핵가족화, 산업사회화 등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크게 약화돼 가는 실정이다. 전통적인 이웃 돕기가 더 이상 유효한 기부 수단이 되기 어려워진 것이다. 

기부 문화 혹은 이웃 돕기 문화의 확산은 사실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공동체의 필수불가결 요소 가운데 하나인 까닭이다. 기부나 이웃 돕기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문화가 아니라 꼭 존재해야 할 요소라는 얘기이다.

특히 한국처럼 작금 양극화가 심화되는 사회에서 기부 문화의 확산은 절박하기까지 하다. 기부 문화가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에 자연스레 자리잡는다면 양극화로 인한 간극이 최소한 심정적으로라도 크게 좁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웃의 정성을 느낄 수 있는 사회라면, 물질적으로 다소 부족해도 심적으로는 크게 빈곤하지 않을 수 있다

기부 문화는 한 사회 혹은 공동체 차원에서 형성되지만, 그 근간이 되는 건 십중팔구는 개개인의 심성이라고 할 수도 있다. 물론 법이나 제도가 기부 문화를 증진하고 지속시키는데 한 몫을 할 수는 있다.

기부 문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 사회 전반에 걸쳐  ‘선 순환’이 일어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누군가로부터 기부를 받아 따스한 사랑을 체감하고, 또 기부한 측에서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선 순환이 시작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빅터 그리가스=독일의 한 동네에 마련된 무료 기부 물품코너. 기부가 일상 문화인 서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빅터 그리가스=독일의 한 동네에 마련된 무료 기부 물품코너. 기부가 일상 문화인 서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제공=빅터 그리가스)

사람을 포함한 거의 모든 생물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이라는 게 일반의 인식이다. 전문가들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아서, 생물학이나 심리학,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 자체가 이기적이며 사고나 행태 또한 이기적 차원에서 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기적 동물’이라는 전제는 허점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오로지 이기적이라면, 지속적으로 생존해나갈 수 없는 탓이다. 단적인 예로 엄마의 갓난아이에 대한 사랑은 이기적 행위와 정반대되는 헌신적 행동이다.

사람은 당연하지만, 혼자 살 수 없는 생물이다. 집단 혹은 공동체를 이뤄야 궁극적으로 생존 확률이 높아진다. 개인들이 전적으로 이기적이기만 하다면,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고, 사회는 끝내 해체될 수 밖에 없다.

호모 사피엔스가 수만 년 동안 진화해 오늘에 이른 건, 이기적 유전자보다는 이타적 유전자에게 더 큰 신세를 졌기 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타적 유전자는 인류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인류를 보전한 이기적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낸 것이다.

사람이 이기적이라는 사실은 유전자까지 들먹거리지 않아도 자명하다.  동시에 사람이 이타적이라는 점 또한 헌신적 희생적 행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타적 유전자의 존재까지도 최근에는 과학적으로 규명되는 실정이다.

독일 본 대학의 한 연구팀에 따르면 ‘COMT’로 명명된 유전자가 이타심 발휘에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유전자는 크게 3가지의 유형이 있는데,  이 가운데 2가지 유형이 이타심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남녀 101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는데, 먼저 기억력 테스트 같은 걸 실시해 잘 맞추는 사람들에게 돈을 줬다. 또 내기도 할 수 있게 해서, 실험에 참여한 사람들이 쏠쏠한 현금을 손에 쥐도록 했다.

이후 남미 페루 출신의 불우 이웃 소녀 사진을 실험 참가자들에게 보여주고, 기부를 독려했다. 그 결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사람의 COMT 유전자는 총 3가지 유형이 있는데, 그 중 1가지는 기부에 상대적으로 인색하고, 나머지 2개 유형은 관대한 것과 밀접이 관련이 있다는 점이 드러났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색한 유형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은 나머지 2개 유형 중 하나를 가진 사람들과 기부액수를 비교할 때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연구팀은 개인별로 이타심이 다른 건 이 유전자가 모종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이타심 유전자’는 개인적으로만 다른 게 아니라, 인종적으로도 차이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또 이타심에 영향을 미치는 건 COMT 유전자 외에 다른 유전자들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타적 유전자에 대한 연구는 사실 이것 하나에 국한되지 않는다.  또 엄격한 과학적 연구가 아니더라도 개개인의 성격이 일정 부분 유전자의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점은 직관적으로도 알 수 있다. 성격이 관대한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성격은 선천적일망정 후천적인 교육이나 개개인 특유의 체험을 통해서도 변할 여지가 전혀 없지는 않다. 하지만 관대하고 남에게 잘 베푸는 등의 기질이 주로 태생적이라는 사실 역시 부인하기 힘들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등 육훈에서 보듯 경주 최부잣집 가문은 함께 사는 사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등 육훈에서 보듯 경주 최부잣집 가문은 함께 사는 사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기부를 잘하는 성향이 개인이나 민족 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연구결과는 혹자에겐 다소간의 충격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서나 선행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를 통해 얼마든지 그 같은 차이는 극복될 수 있는 게 아닐까?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도 곱다’는 시쳇말이 있다. 서로 사랑과 정성을 주고 받는 문화가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면, 기부 문화가 뿌리 내리는 건 시간 문제일 듯 하다. 

법이나 제도 만으로 공동체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갈 수는 없다. 작은 힘이라도 작은 액수라도 여럿이 보탤 때, 한 사회에 사랑의 총량은 획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김창엽

◆ 김창엽 자유기고가

중앙일보에서 과학기자로, 미주 중앙일보에서 문화부장 등으로 일했다. 국내 기자로는 최초로 1995~1996년 미국 MIT의 ‘나이트 사이언스 펠로우’로 선발됐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문화, 체육, 사회 등 제반 분야를 과학이라는 눈으로 바라보길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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