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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식용유로 희망의 불을 켜다

전 세계 언론이 주목하는 LED 램프 개발 ‘루미르’ 박제환 대표

2018.02.01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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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도시들이 밤마다 불야성이라지만 아직도 약 13억 명의 인구가 ‘빛 부족’으로 불편을 겪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초 하나만으로 작동하는 램프를 만들고, 개발도상국 주민들을 위해 등유로 작동하는 램프, 폐식용유로도 불을 밝힐 수 있는 제품을 만든 국내 기업이 세계적으로 화제다.

뉴욕타임스, ABC 뉴스, 가디언, CCTV 등 전 세계 약 40개국 480개의 언론매체가 주목하는 조명 업체는 바로 루미르다. 루미르는 빛을 의미하는 ‘루미(Lumi)’와 세상을 의미하는 ‘미르(Mir)’의 합성어로 세상을 빛으로 밝힌다는 의미다.

박제환 루미르 대표 앞에 나란히 자리한 제품. 왼쪽부터 루미르K(폐식용유 이용 LED 램프), 루미르C(양초 이용 LED 램프), 루미르S(오른쪽 두 개).(사진=C영상미디어)
박제환 루미르 대표 앞에 나란히 자리한 제품. 왼쪽부터 루미르K(폐식용유 이용 LED 램프), 루미르C(양초 이용 LED 램프), 루미르S(오른쪽 두 개). (사진=C영상미디어)

루미르 박제환(31) 대표를 회사가 입주해 있는 서울 성동구 성수IT종합센터에서 만났다. 박 대표는 중앙대 전자전기공학부 4학년 1학기를 마친 ‘휴학생’이다. 그는 2014년 12월 루미르 법인을 설립했다. 루미르의 대표 제품 중 하나인 루미르K의 연료는 폐식용유다. 박 대표는 이 발광다이오드(LED) 램프로 정전이 일상인 인도네시아의 오지마을을 밝히고 있다.

루미르 램프는 루미르C(캔들·양초)부터 루미르K(케로신·등유), 루미르S(쉐어·나눔)까지 세 개 버전으로 진화했다. 첫 버전인 루미르C는 양초를 이용한 램프다. 초의 90%에 해당하는 열을 작은 금속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로 변환해 빛을 낸다. 밝기가 양초만 켰을 때보다 무려 60배나 환해진다. 또 양초는 작은 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단점이 있는데, 이를 루미르만의 기술로 해결했다.

루미르K는 개발도상국을 타깃으로 한 저가 제품이다. 박 대표는 “전 세계 약 13억 명의 인구는 지금도 건강에 해로운 등유램프를 사용하려고 연 수입의 30%를 연료비로 쓴다”며 “등유램프 대신 루미르 제품을 사용하면 연료비는 거의 들지 않으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8% 이상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루미르K는 루미르C와 달리 열을 전기로 바꾸는 원리는 똑같지만 원료가 다르다. 처음에는 등유를 썼지만, 현지의 필수품이자 값싼 식용유를 이용하기로 발상을 전환한 제품이다. 대중성을 살려 최근에는 루미르S를 추가 출시했다. 일반 콘센트나 컴퓨터의 USB 포트, 보조배터리에 꽂아 쓰는 간편한 램프다. 지난해 말 이 제품은 네이버 해피빈 크라우드펀딩에서 마감 전에 2500여 만 원어치 선판매를 기록하며 ‘대박’을 냈다.

박제환 대표는 “개도국에는 ‘빛의 가치’를 선사하고, 선진국 시장에는 합리적 가격의 고품질로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했다.(사진=C영상미디어)
박제환 대표는 “개도국에는 ‘빛의 가치’를 선사하고, 선진국 시장에는 합리적 가격의 고품질로 수익을 창출하겠다”고 했다. (사진=C영상미디어)

창업의 길로 이끈 인도 여행

박제환 대표도 여느 학생과 마찬가지로 취업 걱정을 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그러나 군 복무 시절, 군단 직할 K-9 자주포 전기병으로 근무하면서 농어촌에 기승을 부리는 ‘차떼기’ 절도 문제를 접했다. 농민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문제 해결을 위해 폐스마트폰 배터리를 이용한 태양광 CCTV를 교내 실습과제로 고안·제작하면서 ‘기술을 통한 사회적 문제 해결’에 눈을 뜨게 됐다.

2014년 친구와 떠난 인도 여행은 그를 창업의 길로 이끌었다. 저녁에 시내의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갑자기 일대가 정전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가게 주인들은 태연하게 발전기를 꺼내 돌리거나 호롱불을 켰고, 손님들 역시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 박 대표는 “모두가 정전을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는 사실이 안타까워 전공인 전자공학 지식을 살려보기로 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우선 빛을 만드는 데 집중하기로 하고 무정전 전원 공급장치(UPS) 같은 소켓부터 차근차근 개발을 시작했다. UPS는 전기를 모아뒀다가 정전이 됐을 때 자동으로 켜지는 원리를 이용한 장치다. 이 아이템으로 그는 교내 교양강좌인 ‘캠퍼스CEO’ 프로그램에서 대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10여 군데 대회에 출전해 무려 8곳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2억여 원의 자금을 모았다. 소비자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 코트라가 주관한 국제 LED 엑스포에 출전, 바이어들의 풀타임 매칭을 받기도 했다.

박 대표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사업을 NGO식으로 할지, 비즈니스화할지 고민했다. 결국 그는 공학도의 사회적 문제 해결을 가능하게 하려면 사업화로 해야 한다고 결론을 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루미르C. 전기 대신 양초를 이용한 LED 램프다.

2015년 초 개발에 돌입해 1년 만에 마침내 시제품을 출시했다. 2016년 초 미국 크라우드펀딩 채널인 킥스타터(Kick Starter)에서 첫선을 보였고, 6개월의 정식 양산 기간을 거쳐 첫 배송을 시작했다. 박 대표가 미국을 첫 시장으로 선택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시장 조사차 미국 뉴욕의 ‘나우’와 한국의 ‘메가쇼’ 두 박람회를 방문했는데, 여기서 테라스 문화에 익숙한 미국을 공략해보라는 조언을 받은 것이다. 또 미국은 양초 사용량도 많고 사회적 가치에도 관심이 높기에 루미르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장이었다.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펀딩에서 총 1000명의 선구매를 끌어내며 무려 1억 6000만 원을 단숨에 벌어들였다.

그러나 불상사도 발생했다. 일부 소비자가 받침대를 추가로 요구하면서 급히 제작하는 바람에  초의 열기에 녹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는 손해를 감수하고 곧바로 전량을 리콜 조치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루미르를 더욱 단단하게 해줬다. 박 대표는 얼마 안 가 일본의 ‘마코아케’라는 펀딩 채널을 통해 3000만 원을 추가로 모았다. 일본은 지진 등의 자연재해가 많아 재난용품으로 비상용 랜턴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의 제품이 현지의 한 언론에도 소개되면서 판매량도 급증했다.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 지역 주민들이 루미르K(폐식용유 LED 램프)를 켜놓고 독서를 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 지역 주민들이 루미르K(폐식용유 LED 램프)를 켜놓고 독서를 하고 있다.

루미르K, 1월 중 인도네시아에 첫 대량 유통

그러나 양초를 사용한 루미르C는 절반의 성공이었다. 루미르C로는 개도국을 도울 수 없었다. 생산 단가가 맞지 않은 데다 당장 생활이 빠듯한 주민들이 양초를 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기술 기반 청년 스타트업을 통한 개발 지원 사업인 ‘CTS 프로그램’ 개최 소식을 접한 박 대표는 이를 통해 그의 숙원사업을 이루고 싶었다.

그는 2016년 하반기 등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루미르K를 고안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연료로 사용하는 등유의 유통구조가 열악해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었다. 이 때문에 루미르K가 잘 작동하지 않았다. 고민하던 그는 문득 폐식용유를 떠올렸다. 식용유는 인도네시아의 7대 필수품이다. 인도네시아는 식용유의 일종인 팜유 생산 대국이다. 식용유 1리터에 800원 정도면 200시간 사용이 가능하다. 1달러로 한 달간 램프를 켤 수 있었다. 게다가 식용유를 사용한 루미르K는 일반 등유램프와 비교해 20%의 연료만으로 2.5배 밝은 빛(광량)을 낸다. 램프도 열전소자를 부품으로 사용해 10년 이상 사용이 가능하다.

박 대표는 “현지에도 태양광을 활용한 LED 램프도 있다”면서도 “태양광 패널 및 리튬전지의 짧은 수명과 60일 이상 이어지는 우기와 그늘진 열대우림 지역이라는 동남아시아 특성상 충전의 효율성 문제가 있다”고 했다. 루미르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5년 내 빛 없는 지역을 사라지게 만들겠다”는 공약에 힘입어 마침내 2016년 12월 말 사업 파트너로 선정되며 인도네시아의 고효율 열전발전 램프 개발 및 보급 사업을 맡게 됐다.

2017년 4월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을 방문한 박제환 대표를 비롯한 루미르 직원들이 현지인들과 함께 루미르K의 현지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2017년 4월 인도네시아 칼리만탄 지역을 방문한 박제환 대표를 비롯한 루미르 직원들이 현지인들과 함께 루미르K의 현지 필드 테스트를 진행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인도네시아의 한 가정에서 루미르K를 부엌에 걸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사진=루미르)
인도네시아의 한 가정에서 루미르K를 부엌에 걸고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사진=루미르)

“인도네시아는 1만 7000여 개의 섬으로 이뤄져 있어 발전소의 전력을 전국에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쉽지 않아요. 또 수도인 자카르타는 소득수준이 매우 높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에 루미르C와 K를 모두 공급할 수 있어 물류비 절약도 가능합니다.”

박 대표는 곧바로 현지 테스트에 돌입했다.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인도네시아인 두 명을 채용해 인도네시아 서부 칼리만탄에서 150가구를 대상으로 8개월 동안 제품을 검증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았다. 주민들은 편리성, 경제성, 밝기, 구매 의사에서 거의 만점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박 대표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와 거래하는 국내 기업 사회적공헌활동(CSR) 부서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다행히 뜻을 모아준 GS글로벌 인도네시아 지사로부터 현지의 주요 광산업체를 소개받았고, 덕분에 루미르K를 지난해 12월 현지에 처음으로 대량 유통했다.

루미르의 경쟁력은 첫째로 기술력이다. 제품의 핵심 기술을 직접 개발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특허까지 등록을 마쳐 독자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해외 주요 국가에 상표와 디자인 특허까지 등록해 총 15건의 지식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루미르는 단가를 더욱 낮추기 위해 올해는 인도네시아 현지 공장을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올 5월에는 ‘루미르B’라는 새로운 디자인 전구 신제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소비자의 선택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다. 이 제품은 조만간 인도네시아의 사회적기업을 통해 제작할 계획이다.

세계 LED 조명 시장 규모는 2015년 290억 달러에서 연평균 28% 성장해 2020년 1015억 달러까지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루미르는 선진국에 디자인 무드 램프를 판매해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 빛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투트랙 전략을 세우고 있다. 루미르는 2019년까지 10만 개의 루미르K 보급과 판매를 달성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빛 부족 문제 해결에 획기적 솔루션을 제시해 아시아를 대표하는 기술 기반 소셜벤처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전략이다.

르가 출시한 제품 라인업. 왼쪽부터 루미르K, 루미르C, 최근 새롭게 출시한 루미르S(전기 작동 제품).(사진=루미르)
르가 출시한 제품 라인업. 왼쪽부터 루미르K, 루미르C, 최근 새롭게 출시한 루미르S(전기 작동 제품). (사진=루미르)

박 대표는 “이를 위해 2016년 첫 제품인 ‘루미르C’를 첫 출시하면서 13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고 올해는 일본의 마코아케를 통해 300만 엔의 펀딩에 성공했다”며 “작년 12월부터 수익 창출용 디자인 램프인 ‘루미르S’를 네이버 해피빈을 통해 펀딩 진행 중”이라고 했다. 박 대표는 양초나 폐식용유를 연료로 사용해 LED를 밝히는 램프를 개발해 포브스 30세 이하 사회적기업인 30인(아시아)에 선정됐고, 세계 3대 인명사전 중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 인명사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에도 등재됐다.

그는 올해 개발자가 아닌 진정한 사업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과거 1~2년은 ‘조금 더 밝게, 조금 더 실용적이게’라는 ‘공대생 마인드’에 빠져 있었다면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에게 루미르를 보급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고 말한 그는 “궁극적으로 루미르가 신발 브랜드 탐스(TOMS)나 미국 온라인 안경 유통 업체 와비파커(Warby Parker)처럼 착한 브랜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고 했다.

[위클리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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