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일광 건국대학교 중동연구소 연구원·한국 이스라엘 학회장 |
이번 방문을 통해 한국과 UAE는 기존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특수 전략적 동반자관계’로 한 단계 격상시키고 외교·국방(2+2) 차관급 협의체를 가동한다는 데 합의했다. 우리나라가 지금까지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은 국가는 인도와 인도네시아에 불과하다. 관계 격상은 양국이 공통의 비전과 상호이익을 공유하며 특수관계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고 이제 UAE는 명실공히 한국과 가장 가까운 중동국가가 됐다.
1980년 ‘중동 붐’을 타고 외교관계를 수립한 양국의 협력관계는 에너지·건설·플랜트 등 주로 전통적 협력분야에 초점이 맞춰졌다가 2009년 바라카 원전 수주를 계기로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수립한 이후, 이제는 특별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며 국방·방산·보건의료·과학기술 분야로 협력의 외연이 넓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대통령궁에서 열린 한-UAE 단독 정상회담에서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아부다비 왕세제와 악수하고 있다.(사진=청와대) |
UAE 방문의 또 다른 의의는 우리 외교의 다변화를 위해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신남방정책’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이다. 신남방정책이란 아세안과 인도와의 외교를 주변 4강 수준의 경제적, 정치적, 전략적 수준으로 격상한다는 야심찬 내용을 담고 있다. 지역 내 국가들과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튼튼히 하고 이를 활용해 강대국 사이에서 한국의 자율성과 발언권을 높이는 것이 외교 다변화의 방향이다. 물론 신남방정책이 중동을 명확히 명시하고 있지 않지만 21세기 외교에서 지역을 따로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무슬림 인구 2억 5000만 명의 동남아시아와 무슬림 인구 1억 7000만 명의 인도는 중동과의 연결고리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UAE와의 새로운 전략적인 관계는 좋은 출발점이지만 향후 우리의 대중동정책 전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도 확립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중동에서 역내 국가들이 헤게모니와 자국 이익 확보를 위해 종교, 인종, 부족 간의 차이를 정치 도구화하면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수니파와 시아파 간의 이슬람 내부 충돌과 쿠르드와 터키의 인종간의 충돌뿐만 아니라 예멘과 리비아에선 서로 다른 부족 간의 충돌이 뒤섞이면서 기존의 민족국가 정체성을 뛰어넘는 근원적(primordial) 정체성이 대두되면서 중첩된 정체성의 충돌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란, 사우디아라비아와 터키는 이런 정체성 충돌현상을 자국 이익을 위해 활용하고 있으며 중동에서 영향력이 약화된 미국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러시아까지 중동에 뛰어들면서 한 마디로 판이 뒤흔들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시시각각으로 급변하는 정세를 면밀히 모니터링하는 치밀함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더 많은 중동 전문가가 필요하다.
중동에서 큰 이슈가 있을 때에만 중동전문가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금방 식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인력확충과 양성, 이에 필요한 재정 지원이 절실하다. 일본의 중동학회 등록 회원은 800명에 달하지만 우리 중동학회에서 실제 활동하는 학자는 60명 수준이다. 우리도 이제는 중동 지역 일반 전문가를 뛰어넘어 걸프국가 전문가와 이집트 전문가처럼 중동 각 지역 전문가를 선별적으로 양성할 필요가 있다.
아쉽게도 우리 외교부의 현실은 매우 열악하다. 외교부내 아랍어뿐만 아니라 제2중동언어 즉 이란어, 터키어, 히브리어를 구사하는 외교관을 새로 충원하거나 더 양성해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언어도 중요하지만 이슬람과 유대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 중동의 문화와 다양한 종족과 부족을 이해할 수 있는 인문학적 소양도 필수다. UAE에 그치지 않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제2, 제3의 UAE 국가가 빨리 나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