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3시 30분, 도봉산 광역환승센터에 정차해 있던 A160 버스가 출발 준비를 마쳤다. 이른 출근길에 나선 어르신들이 버스에 하나둘 올랐다. 겉으론 평범한 시내버스와 같지만, 운전자 없이도 스스로 달리는 자율주행버스다. 다음 정거장에서 이 버스를 기다리던 이정수 씨(73)는 "버스 없는 새벽에 무료로 태워줘 일하러 가기 수월해졌다"며 미소 지었다.
A160 버스는 2024년 4월 국토교통부의 '자율차 서비스 지원사업'에 선정돼 같은 해 11월 26일부터 정식 운행 중이다. 기존 160번 버스에 자율주행을 의미하는 'A(Autonomous)'를 붙였다. '도봉산역~쌍문역~미아사거리~종로~공덕역~여의도환승센터~영등포역'을 잇는 25.7㎞ 구간을 운행한다. 안전 확보를 위해 인적 드문 심야·새벽에 운행하는데 환경미화원, 경비원 등 새벽 근로자들의 수요가 많은 지역으로 노선을 정했다. 교통 취약층의 이동을 돕는 새벽동행 자율주행버스는 글로벌 자율주행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개발했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최근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가이드하우스가 발표한 '2024 자율주행 기술 순위'에서 11위를 차지했다. 국내기업으로는 유일하게 2년 연속 순위에 오르며 한국 자율주행 기술력을 세계에 입증했다. 이 회사 최고전략책임자인 유민상 상무를 만나 성장 스토리, 자율주행 산업의 현황과 비전, 정부의 신산업 지원·청년 정책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유민상 상무는 "서울·세종·안양·경남 하동에서 자율주행버스를 운행하고 있고, 인천공항 제1터미널~장기주차장 코스로 자율주행셔틀을 도입했다"며 "전국 자율주행 사업의 90% 이상을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진행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특히, "마을버스 운전을 할 젊은기사가 부족한 경남 하동의 경우, 자율주행버스 도입으로 고령 주민들의 이동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며 "자율주행은 인구고령화 시대에 꼭 필요한 기술" 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올해 3월 20일부터는 운전자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레벨4 자율주행 자동차'의 B2B거래법규(성능인증제도)가 시행돼 정부 인증 자율주행차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정부 수주 주행사업에서 자율주행차 판매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유 상무는 "안전 법규 마련, 규제 완화도 중요하지만, 신산업분야 초기 특성을 고려한 보급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하며 정부에 "자율주행차도 전기차·수소차 전례를 벤치마킹 해 보조금 지원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유 상무는 "오토노머스에이투지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사'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라면서 "개인적으로는 자율차 상용화에 역사적으로 큰 기여를 한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다음은 유 상무와의 일문일답.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세종시·안양시에서 자율주행버스를 운행하고, 인천공항 제1터미널에 자율주행셔틀을 투입하는 등 역량을 빠르게 확대해 가고 있는데요. 오토노머스에이투지의 주력사업은 무엇인가요.
현재 저희가 만들고 있는 자동주행차는 레벨4 수준으로, 정해진 구간에서 운전자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완전 자율주행을 의미합니다. 레벨4 자율주행 자동차는 아직 안전기준이 없기 때문에 임시운행허가를 받아 정부와 지자체에서 발주하는 사업을 수주해 운행하고 있습니다. 현재 정부가 발주하는 대부분의 사업은 자율주행버스 기반 여객운송사업이기에 우리도 이 분야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 중 인천공항 자율주행버스는 제1터미널에서 장기 주차장까지의 왕복 운행하고 있습니다. 위험하거나 길지 않은 구간이기 때문에 자율주행을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인천공항을 포함해 전국 자율주행 사업의 90%를 저희가 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20일부터는 세계 3번째로 제정된 레벨4 자율차의 B2B거래법규(성능인증제도)가 시행되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인증을 받은 자율차를 판매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는 이 인증을 법규제정 단계부터 준비해왔기에 빠른 인증을 받아 자율차를 판매하는 사업으로 주력사업을 전환할 계획입니다.

◆유민상 상무님은 단연 자율주행 분야 차기 유망주로 주목받고 있는데요. 상무님이 처음 자율주행 분야 연구와 창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현대자동차에서 함께 일을 했던 선배 책임연구원 4명이 창업한 기업의 3년 차에 합류했는데, 정책·전략 담당 CSO(최고전략책임자)를 맡았습니다. 저희 창업자들은 현대자동차 재직 시절 얻은 경험들을 통해 정해진 구간에서만 완전자율주행이 되는 레벨4 자율주행셔틀 시장이 먼저 열리고 자동차 제조사는 뒤늦게 따라갈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그리고 이 레벨4 자율주행셔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창업에 도전했는데, 다행히 그 예측이 잘 맞았고, 현재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은 자동차 제조사들보다는 스타트업 중심으로 레벨4 셔틀시장부터 열리고 있습니다.
저는 현대자동차에서 10년 동안 신기술 관련 정책과 제도를 만드는 역할을 했습니다. 자동차의 신기술은 법과 제도가 없으면 적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신기술의 안전기준을 마련하는 과정에 국토부, 산업부와 일을 많이 했습니다. 신기술의 집약체가 자율주행 자동차라 흥미로웠습니다. 새로운 기술을 남들보다 먼저 보고 그 기술을 제도화 해가는 역할이 재미있고 의미 있게 느껴졌습니다.
이 회사에 합류한 후엔 세계 최초로 레벨4 자율주행 자동차의 정부 인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법안은 2022년에 저희가 건의해 2024년도에 만들어졌고요. 이를 기반으로 현재는 정부 인증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사업추진 과정에 정부의 지원으로 위기를 극복했거나, 성장을 이룬 사례가 있었을까요?
앞서 말씀드린 세계 세번째로 제정한 레벨4 자율차의 B2B거래법규는 저희 회사가 2022년 5월 국무조정실 규제혁신TF에서 입법건의를 해 2년 만에 제정된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작은 스타트업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주시고, 전세계 세번째로 법규를 제정할 만큼 정책선도국으로서 적극 지원해 주신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안전연구원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독일이 세계 최초로 자국 법규를 만들었고 일본이 두 번째, 우리나라가 세 번째 입니다. 이제 이 법규대로 올해 정부인증을 받아 세계 최초로 판매가 가능한 레벨4 자율차 제조사가 된다면, 더 크게 성장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여기에 자율차 보조금, 보급 정책까지 지원이 더해지길 희망해 봅니다. 천문학적 자본으로 AI시장을 점령해가는 미국과 중국의 틈바구니에서 자율주행 관련 한국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한민국형 모델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신산업 발전과 청년 벤처·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해 정부가 특히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점은 어떤 부분이 있을까요?
정책과 규제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어렵게 제도를 마련하고 인증을 받아도 신산업분야는 가격 장벽이 높을 수밖에 없는 시장입니다. 전기차가 처음 나왔을 때 안전성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좋지는 않았지만, 정부는 공공기관 의무 보급제를 도입했습니다. 이에 따라 공공기관은 2016년도부터 모든 차종의 50%를 전기차로 보유해야 하고, 2018년도부터는 70%, 현재는 100%. 이렇게 공공기관은 전기차만 삽니다. 그리고 전기차에는 매해 2조 원에 가까운 보조금이 투입됐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전기차 60만 대 시장까지 올라오게 된 겁니다.
이렇게 실제 보급 정책과 보조금 지원 정책을 병행해야 하는데 아직 자율차는 그런 정책은 없습니다. 신산업분야 초기 특성을 고려한 보급·확산 지원이 병행 되어야만 신산업 기업들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에게 매출은 기본적인 생존조건이고, 우수 인재들을 영입해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신산업분야 혹은 자율주행 분야 개척에 도전하려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자동차'란 나와 다른사람의 생명에 영향을 주는 제품이기 때문에 상용화가 매우 더딥니다. 지금 선택율이 99%인 자동변속기는 상용화 되기까지 50년이 소요되었고, 에어백도 상용화까지 25년이 걸렸습니다.
자율주행 시대는 결코 빠르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구고령화와 더불어 인간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기에 반드시 도래할 시장이기도 합니다.
"멈추지만 않는다면 얼마나 천천히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공자의 말처럼, 미래의 기술은 여러분이 주인공입니다. 꾸준함과 성실함이 결국 성공으로 이어지더라고요. 느리지만 반드시 올 미래를 향해 묵묵히 달려가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오토노머스에이투지와 상무님의 날로 성장하는 모습이 기대가 됩니다. 유민상 상무님의 사업적 비전,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오토노머스에이투지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자율주행자동차 제조사'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입니다. 자동차 산업은 국세의 10%를 차지하는 국가 기간산업이지만, 우리나라에는 1967년 현대자동차 이후 설립된 자동차 제조사가 없습니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은 진입 장벽이 상당히 높은 산업입니다.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모빌리티의 변화는 다시 한 번 우리가 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차량의 효용성을 증명해서 사회적 가치를 향상하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자율차 상용화에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는 것이 목표입니다. 지금의 현대자동차처럼 '100년 기업'을 바라보는 국내대표 '자율주행 제조사'가 되기를 꿈꿔 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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