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초입에 들어선 6월, ‘봄봄’, ‘동백꽃’의 소설가 김유정을 만나러 인문열차에 올랐다. 김유정 생가가 있는 실레마을 등에서 봄의 설렘을 느끼고 돌아왔다.
인문열차 문학속으로 김유정호 출발 |
용산역에서 ITX-청춘 열차를 타고 강촌역으로 향했다. 2018년 ‘인문열차, 삶을 달리다’는 국립중앙도서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코레일의 주최로 열리고 있는 인문학 탐방 기행으로 올해 네 번째 행사다. 현장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통해 생각하는 힘을 길러주는 계기를 마련한다.
실레마을 사람들의 가난한 삶과 애환 속으로. |
강촌역에 준비된 버스를 타고 강원도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으로 이동했다. 지난 해 김유정 문학촌을 다녀온 뒤로 김유정 생가 마당에 있던 ‘봄봄’ 작품 속 주인공들이 아른거리던 참이었다.
김유정 문학촌은 ITX-청춘 ‘김유정역’에 하차하면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김유정역은 원래 경춘선 신남역이었으나 ‘김유정역’으로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소설 ‘봄봄’ 등장인물 조형물. |
김유정 문학촌에서 만난 해학적인 소설 속 한장면이 이곳을 찾은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봄봄’은 일제 강점기, 우리나라 농촌의 일상이 묻어나는 소설이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로 주인공은 점순이와 혼례를 시켜준다는 장인의 약속에 데릴사위로 들어가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해학적으로 담아냈다.
‘봄봄’에 등장하는 장인 봉필 영감은 실레마을에서 욕필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실존인물이라고 한다. 김유정은 딸만 여섯을 두고 데릴사위를 부리며 일을 시킨 욕필의 실제 이야기를 가지고 소설을 썼다고 한다.
유인순 교수가 김유정 문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강원대학교 유인순 명예교수는 ‘실레마을 사람들의 가난한 삶과 애환’을 주제로 “김유정의 고향이자 작품의 배경이 된 실레마을은 마을 전체가 김유정의 문학 현장, 살아 숨쉬는 스토리텔링 현장이었다.”며 해설을 이어갔다.
김유정 문학촌으로 출발~ |
이어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김유정 생가’와 ‘김유정기념전시관’을 방문했다. 김유정 생가는 실제 김유정이 거주하며 작품을 썼던 곳이기에 마치 김유정 소설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사후 57주기를 기념해 세운 동상도 있었다.
김유정 작품집. |
김유정의 문학 세계. |
김유정의 작품에 흠뻑 빠져 몰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노년의 부부가 김유정 작품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습이 한결 여유로워 보였다.
김유정 생가 연못. |
김유정 생가는 김유정의 조카 김영수 씨의 고증으로 상세한 평면도를 그려 복원작업이 이뤄졌다고 한다. 뒤뜰의 굴뚝은 높이를 낮게 만들어 끼니를 거르는 마을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고 한다.
마당에는 연못과 정자도 만들었다. 으리으리한 부잣집일것 같지만, 실제로 이 집은 김유정의 조부가 지은 집이고, 김유정은 움막을 짓고 아이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쳤다고 한다.
김유정 생가에 세워진 소설 속 조형물들이 방문객들을 문학의 세계로 이끈다. |
김유정 생가 마당을 둘러 보고 나오는 길에 또 다른 소설 속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소설 ‘동백꽃’ 소설 속 한 장면. 점순이가 닭싸움을 부추기는 장면이다. 자신의 집에서 키우던 닭으로 주인공 집 닭에게 닭싸움을 부추겨 주인공을 좋아하는 마음을 에둘러 표현한다. 짖꿋은 점순이는 지주의 딸이라 대들 수도 없다. 어느 날 점순이네 닭이 주인공네 닭을 또 다시 괴롭히자 주인공은 홧김에 점순이네 닭을 죽여버린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으로 울음을 터트리는데…
김유정 작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을 만나면서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되는 순간들이다. 김유정의 작품세계를 이해하고 가면 김유정 문학촌이 훨씬 더 흥미롭다.
실레마을의 김유정 기념비. |
실레이야기마을 안내도. |
김유정 작품들이 전시돼있는 기념전시관에는 김유정의 생애와 문학, 1930년대 우리 문학의 흐름에 관한 여러 자료들이 있다. 김유정의 육필 원고, 인쇄물, 책 등이 전시돼 있다. 작품해설을 예약하면 해설사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실레이야기길에 펼쳐진 책 안내판. |
실레이야기길을 걸으며 만나는 김유정. |
이어 유인순 교수의 해설과 함께 김유정 문학촌에서 가장 멋진 실레이야기길을 걸었다. 금병산에 묻힌 마을의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고 해서 실레(시루)는 작가 김유정의 고향이며 마을 전체가 작품의 무대로 지금도 점순이 등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금병산 자락의 실레이야기길을 만들었는데 멀리서 문학기행을 오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한다.
소설 속 이야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
실레마을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 |
‘점순이가 나를 꼬시던 동백숲길’, ‘춘호 처가 맨발로 더덕 캐던 비탈길’ 등 소설 속 주인공을을 만나는 실레이야기길을 1시간 반 정도 걸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의 길이 되고 있었다.
김유정 문학세계의 실레마을 사람들. |
춘천의 김유정 문학촌을 찾았으니, 춘천의 대표적 먹거리인 닭갈비, 막국수를 빼놓을 수 없다. 맛있는 막국수와 수육으로 인문열차 일행들의 초여름 햇살이 행복했다.
실레마을 풍경. |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닿는 조그마한 산골이다. 앞뒤 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들어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옴팍한 떡시루 같다 하여 마을이름을 실레라 부른다. 집이라야 대개 쓰러질 듯한 헌 초가요, 그나마도 오십호밖에 안되는, 말하자면 아주 빈약한 촌락이다. - 수필 ‘오월의 산골짜기’에서
초여름 인문열차는 김유정 문학촌으로. |
김유정 문학촌에 흠뻑 빠졌다 나오는 길에 오후 일정으로 찾아간 청평사는 여행을 맛깔나게 해준다. 청평사 올라 가는 길, 계곡을 굽이쳐 흐르는 물소리는 초여름 날씨의 무더위에 지친 우리를 자연의 위대함에 빠져들게 해준다.
청평사 계곡. |
청평사의 고즈넉한 산사. |
문학과 먹거리, 그리고 자연이 한데 어우러졌던 이번 인문열차. 더할 나위없이 큰 선물을 가슴에 안고 서울로 오는 ITX-청춘 열차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