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11월 17일, 자정이 다 된 시각. 당시 추밀원장인 이토 히로부미가 덕수궁 중명전에 들어오고, 을사오적인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찬성한 채 조약을 승인받습니다.
이 조약은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빼앗기고, 사실상 일제의 보호국으로 전락해버린 을사늑약. 이후 대한제국은 모든 권한을 일제에 빼앗겼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가 됐습니다.
덕수궁 중명전에 전시된 을사늑약 체결 당시 모습. |
사실상 대한제국의 종말을 고했던 1905년 11월 17일. 임시정부 요인들은 을사늑약을 잊지 않았습니다. 당시 임시정부를 이끌었던 지청천 장군과 차리석 선생은 1939년 11월 21일 제31차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국권이 실질적으로 침탈당한 을사늑약 체결일을 잊지 말고, 일제에 의해 순국한 순국열사를 공동으로 기리자는 의미로 ‘순국선열기념일’을 11월 17일로 결의했습니다.
타국에서 공포한 순국선열의 날. 80년이 흐른 채 우리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타국에서 꿈꿨던 나라 대한민국에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이 거행됐습니다. 이들이 잊지 말자던 을사늑약을 기억하며 114년 전 강압적으로 체결된 덕수궁 중명전에서 11월 17일에 진행됐습니다.
덕수궁 중명전에서 거행된 순국선열의 날 기념식. |
이번 기념식의 주제는 ‘들꽃처럼 불꽃처럼’. ‘무명 선열을 유루(有漏)없이 다 알 수 없다’는 지청천 장군의 말처럼 무명 순국선열을 기리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희망의 표상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시작에 앞서,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애국가는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선생의 4대손 최일리야 씨와 일본에서 독립운동을 한 강수원 선생의 손녀 강신혜 씨가 함께해 의미를 더했습니다.
기념식의 시작은 기념공연. 1막은 ‘역사를 마주하다’라는 주제로 대금연주와 함께 배우들이 을사늑약 체결 직후 독립운동가의 울분과 국권 회복의 다짐을 극과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1막 공연, 배우들은 을사늑약 체결의 울분과 독립운동의 의지를 노래했습니다. |
기념공연 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독립유공자 포상자 중 이낙연 총리가 다섯 명의 독립유공자에게 포상했습니다. 이중 지익표 지사는 일본인 교사의 민족 차별적 언행에 대항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던 애국지사로, 이낙연 총리가 직접 대통령 표창을 전하자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이낙연 총리는 모든 순국선열과 독립유공자에게 감사를 표하며 “선열들은 들꽃이자, 불꽃이었다. 농부와 상인, 기생과 지게꾼 등 주변에서 알아주지 않았으나 질기게 살던 들꽃 같은 백성들이 항일투쟁의 맨 앞줄에 섰고, 불꽃처럼 싸우다 스러졌다”고 말했습니다.
이낙연 총리가 독립유공자를 표창했습니다.(사진=저작권자(c) 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이어 “순국선열의 피를 딛고 조국은 빛을 되찾았다. 그런 조국에서 지금 우리는 풍요와 안락을 누리며 산다”고 언급했습니다.
이낙연 총리는 “올해는 역대 최대인 647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포상했다”며 “들꽃처럼 사셨으나 불꽃처럼 싸우다 스러지신 선열에 대한 후대의 의무로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번영의 과실을 조금씩이라도 나누는 포용사회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낙연 총리의 기념사. |
이낙연 총리의 기념사 후, ‘독립정신을 잇다’라는 주제로 기념공연 2막이 열렸습니다. 안동시소년소녀합창단이 슬픔의 나날 반주에 맞춰 ‘들꽃’을 합창했는데요. 이름도 없이 들꽃처럼 살다 간 무명 선열을 추모했습니다.
기념식의 끝은 순국선열의 노래. 이낙연 총리를 포함한 모든 참석자가 반주에 맞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먼저 죽은 열사를 기리며 순국선열의 날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합창단의 들꽃 연주와 이낙연 총리. |
우리나라는 수많은 순국선열의 희생 속에 세워졌습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순국선열, 독립군은 전체의 1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90%의 독립운동가는 이름도 성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들꽃처럼, 그리고 불꽃처럼 살다 간 순국선열, 잊지 않겠습니다. |
들꽃이 만들어낸, 그들이 꿈꿔온 나라 대한민국에서 순국선열의 날이 80년을 맞았습니다. 순국선열의 날 제정과 기념을 부르짖었던 지청천 장군과 차리석 선생처럼, 우리도 이날을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