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전통문화를 퍽 좋아하는 1인이다. 가끔씩 공예도 한다. 그렇지만 전통문화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본 적은 얼마나 있었을까 싶다.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에 오기 전까진 말이다. 이 근처를 오가면서도, 문화재 전수교육관은 나와는 먼 장소인 줄로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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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릉역에서 발 빠르면 비 안맞고 갈 수 있는 곳. 그곳에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강남)이 있다. |
우연히 전수교육관 SNS에서 ‘놀이, 뜰-소목장 소병진과 제자동행전’ 소개를 봤다. 소목을 이용한 다반(작은 쟁반) 만드는 체험이 꽤 재밌어 보였다. ‘혹시 나도?’ 하고 생각했다. 다행스럽게도 초보자도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무엇보다 ‘각각 말을 걸어오는 전통공예품 전시’도 함께한다니 흥미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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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이 집중하는 모습에 열기가 느껴졌다. |
“장과 농의 차이를 아십니까. 장은 통으로 짜는데, 농은 각 층이 분리된 가구에요.” 소병진 장인이 말했다. 장과 농은 지역적 특성도 담겨 있단다. 농이 유명한 통영은 나무가 귀했던 지역이라, 나무를 잘라 포개 만들었다. 교통이 발달한 전주는 장으로 큼지막하게 만든다고 했다. 평소 장롱이라고 여긴 걸, 또 이렇게 깨닫다니. 신기했다.
프로그램은 전통문화 체험과 수리상담소로 진행됐다. 소목장 소병진 장인에게 전주장 강의를 듣고 다반을 만들며 전시를 둘러봤다.(소목장은 목가구, 목기 등을 제작하는 장인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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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장에 다산을 의미하는 주꾸미 장식은 몇 개일까. |
“이 전주장을 자세히 보세요. 여기 금속 장식은 다산(多産), 장수 같은 걸 뜻해요. 이건 주꾸미인데 다리가 8개거든요. 근데 여기 있는 주꾸미가 모두 몇 마리일까요?”
장인은 전주장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했다. 주꾸미 다리 수는 다산을 뜻한다는데, 장장 40명은 낳아야 할 듯하다. 모두 ‘오~’ 하며 다시 쳐다봤다. 나도 앞으로 전통가구를 볼 때마다 금속 장식을 그냥 지나치진 못할 듯하다.
비가 퍼붓던 날이라 열쇠가 잘 열리지 않는 가구도 있었다. 날씨에도 달라지는 전통가구의 자연스러움에 정감이 느껴졌다. 500년 넘은 고사목은 여전히 숨쉬는 듯했다. 물론 다른 장점도 많다. 나무에 홈을 파 맞춘 통판이라 먼지도 쌓이지 않는다. 세월에 따라 결이 달라지는 건, 나무 특성이니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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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주장을 열자 미닫이 막과 작은 서랍이 나왔다. |
전주장 내부를 본 건, 처음이었다. 내부는 미닫이 같은 막이 있고, 작은 서랍장이 있었다. 여기에 옛날 양반들은 족보 같은 걸 넣어 두었단다. 전주장도 없건만, 난 뭐를 넣어둘까부터 생각했다.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었다. 오동나무는 빨리 자라는 데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습기와 벌레에 강해 가구에 적합한 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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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포로 문질렀더니, 나뭇결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
이날은 그런 오동나무로 다반을 만들어 봤다. 각각 책상에 재료가 놓여 있었는데, 특이하게 오동나무 색이 검었다. 색칠한 줄 알았는데 인두로 태웠단다. ‘낙동’이라는 멋진 이름의 기법이었다. ‘낙동’을 하면 병충에 강하고 나뭇결을 잘 살리며 색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단다. 태워서 강해진다니, 나무란 건 참 오묘하다.
설명에 따라 검게 태운 나무를 사포로 쓱싹 문질렀다. 검은 가루가 우수수 떨어지면서 나뭇결이 살아났다. 각자 원하는 정도로 문지른 뒤, 물에 담궈 결을 살리고 동백오일을 발랐다. 손잡이는 참죽나무인데 광택이 있고 잘 뒤틀리지 않는 목재란다. 옛 도구를 쓰고 있으니, 마음부터 정갈해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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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 ‘놀이, 재’가 열리고 있다. |
이곳에서 조용한 전통공예만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제 청아해진 마음을 흥겹게 즐겨볼 차례다. 전수교육관 2, 3층에는 전시공간이 있다. 이름도 예쁜 결, 올. 국가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들 작품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전시장이다. 난 갓 만든 다반을 뿌듯하게 들고, 2층 전시 ‘놀이, 재’를 관람했다.
전시는 전통공예의 모든 매력을 보여줬다. 다양한 작품을 모았지만, 복잡하지 않은 깔끔한 미(美)는 도대체 어떻게 가능할까. 설치미술에서 나아가 VR, AR 같은 실감콘텐츠까지 체감할 수 있었다. 생각지 못한 재미가 솟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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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치미술로 탄생한 ‘숨-결, 장인정신’. |
‘숨-결, 장인정신’은 쓰임이 줄어든 전통베틀과 수공예품 제작 과정을 설치미술로 구현했다. 내겐 꽤 위안을 줬다. 물레 소리, 대패를 깎는 소리, 삼 삼는 소리 같은 소리가 모여, ASMR 같달까. 편안해졌다.
풀무질, 실 잣는 소리 등을 오디오로 들어보고, 삼면이 화면으로 된 독립된 공간에서 홀로 자연을 감상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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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유산을 VR과 AR로 체험해볼 수 있었다. |
수원화성 성역의궤를 MR 애플리케이션로 체험해볼 수 있다. 화면 위로 수원화성의 팔달문과 화서문, 방화수류정 등이 증가입체 영상으로 나타난다. 무형문화유산 볼륨매트릭 AR은 하회별신굿 탈놀이, 택견, 종묘제례악, 택견 등을 시·공간 제약 없이 체험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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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디어아트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 문화재를 머금은 4차 산업. |
미디어아트로 구현된 콘텐츠도 있었다. VR 기기를 쓰자 난 이미 신명 나는 경복궁 속에 들어와 있었다. 이곳은 또 다른 세상. 내 옆에서 춤꾼이 춤을 추며 지나가는데 저절로 몸이 움츠려졌다. 생각보다 무척 가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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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층 입구에는 무형문화재 현황이 적혀 있다. |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은 1997년 국가무형문화재의 전승을 위해 문화재청이 건립했다. 이곳에선 국가무형문화재 기·예능 보유자 및 단체의 전승활동이 이루어지며, 다양한 전통문화를 경험하고 향유할 공간을 제공한다. 현재 전국 164곳에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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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용한 공간에서 세 화면을 통해 자연을 감상할 수 있다. |
한편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에서는 2013년부터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활성화 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전수교육관의 운영 및 역량 강화에 힘쓰고, 모두가 무형문화재의 가치를 느끼길 바라는 취지다. 올해는 전국 70여 곳에서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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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성된 나만의 오동나무 다반. 볼수록 예쁘다. |
옛 전통에서 흘러 온 가치가 현대 문물과 조화를 잘 이룬 만족감 때문이었을까. 전시를 보고 다반을 만들고 나니 뭔가 벅찬 느낌이 올라왔다.
전통문화를 조금씩 체험하고 느껴보고 싶다면,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을 찾아가 보자. 여러 지역에 많이 분포된 만큼 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국가무형문화재전수교육관(강남) https://www.chf.or.kr/cms/content/view/421
문의처 : 문화체육관광부 정책포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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