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부터 실내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 그 소식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청각장애인이었다. 조금이나마 수월해지지 않았을까. 청각장애인은 수어를 하면서 손짓, 몸짓뿐만 아니라 입 모양과 표정까지 본단다. 언젠가 청각장애인과 인터뷰를 할 때, 그는 내게 투명 마스크를 건네며 알려 주었다.
코끝이 시리게 춥던 날, 국립고궁박물관으로 향했다. 종종 가던 박물관이지만,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오늘은 온전히 청각장애인용 수어해설영상 기기에 의존해 전시를 감상할 생각이었다.
살면서 간혹 듣기 벅찬 이야기들이 넘쳐 고요한 시간이 그립기도 하다. 그렇지만 계속 들리지 않는 삶이란 어떤 건지, 나로선 상상이 되진 않았다. 단 몇 시간으로 알 순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고궁박물관 입구에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안내판이 있었다. 도움이 필요한 경우, 벨을 누르면 안내데스크로 바로 연락이 간다.
안내데스크 맨 끝에 있는 ‘음성안내기 대여’ 코너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기기를 대여할 수 있다.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총 3대의 청각장애인용 전시해설영상 기기가 있다고 한다.
기기와 함께 리플렛을 받았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영상 QR코드 안내서였다. 안내서에는 QR코드 사용 방법과 각각의 QR 및 이용 가능한 전시실 위치가 나와 있었다. 기기를 켜자 문체부 산하 비영리 단체인 GKL사회공헌재단과 시립서대문농아인복지관에서 함께한 수어해설영상이라고 표기돼 있었다.
전시실 가는 길에서 늘 말을 거는 AI로봇 ‘고북’을 만났다. 매번 고북의 인사에 답했겠지만, 오늘은 조용히 들여다봤다. 그러자 로봇 안에 자막이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기기에서 국립고궁박물관을 소개하는 첫 번째 영상을 본 후, 전시실을 둘러보았다. 그동안 못 느꼈던 점이 또 보였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해설영상 번호와 기호가 음성 해설기와 달랐다. 모든 전시에 수어해설영상이 있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머지는 영상이나 책자, 설명이 있어 감상에 큰 불편은 없었다.
오가는 학생들이 내가 보는 수어해설영상을 신기한 듯 슬쩍 곁눈질했다. 나 역시 조선을 거쳐 대한제국 등을 고요하게 걸어갔다. 보통 왕은 하루에 5끼를 먹었지만, 영조는 3끼만 먹은 덕에 장수한 게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특히 재밌었다. 2층과 1층, 지하까지 샅샅이 보면서 크게 불편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었다. 적어도 처음 체험하는 내게는 그랬다.
2월 3일은 ‘한국수어의 날’이다. 수어는 수화언어의 줄임 말로 손짓, 몸짓과 표정같은 시각적 형태로 의미를 전달한다. 한국수어의 날은 2016년 2월 3일 ‘한국수화언어법’이 공식 제정돼 한국수어가 국어나 영어와 같은 독립된 언어로 인정받게 된 날을 기념하고 있다.
문체부는 시청각장애인의 정보 접근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수어통역과 점자번역을 지원하고 영화, 박물관 등 문화 정보에 대한 수어통역영상 제작 지원 등을 통해 시청각장애인의 문화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초석을 다질 계획이다.
장애인들이 운전하는 고요한 택시나 청각장애인이 운영하는 수어로 주문하는 식당, 3D 아바타로 전시를 맞춤형 감상하는 한국수어 번역 서비스 등을 볼 수 있다. 아직 더 많은 곳에 필요하지만,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흐뭇하다. 한국수어의 날을 맞아 청각장애인들도 더더욱 불편 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김윤경 otterki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