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여행 가서 아이와 함께 말(馬)을 타본 적이 있다. 파란 하늘 아래 초록 풀밭을 달리며 힐링을 느꼈다. 집으로 돌아와서 승마를 배워보려고 알아보았다. 승마장과의 거리와 레슨 비용 때문에 망설여졌다.
그러던 중 정책기자단 활동의 일환으로 초보자와 어린이를 위한 ‘승용마’ 취재 기회를 갖게 됐다. 한라산 중산간에 ‘난지축산연구소’가 있는데, 봄을 맞아 국내산 승용마의 방목 행사를 한단다. 제주마와 더러브렛을 활용해 36개월령 기준 체고(몸 높이) 145∼150㎝를 목표로 말을 키우고 있는 곳이다. 초원에서 뛰노는 말을 볼 생각에 설레었다.
제주공항에서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에 도착했다. 방역실에서 방역복을 입고 소독을 한 뒤 굳게 닫혀 있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떤 광경을 볼 수 있을지 기대가 됐다.
연구소는 한적한 대학 캠퍼스 같았다. 건물마다 용도가 쓰여 있고 번호가 매겨져 있었다. 본관에서 길을 쭉 따라 내려가니 초원이 펼쳐졌다. 말은 겨우내 ‘마방’에서 지낸다고 한다. 봄에 방목하면 11월까지 약 8개월 동안 초지에서 지내게 된다. 기다리고 있으니 다그닥 다그닥 소리가 난다. 말들이 다가온다. 과연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말들은 초원을 흙바람 나도록 열심히 뛰어다니다 풀을 뜯어 먹고 물을 마시며 쉬기도 했다. 난지축산연구소 최재영 연구사와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알고 보니 이 말들은 생활승마에 적합한 크기와 좋은 품성을 가지도록 사랑과 희망을 담아 키워지고 있었다.
최재영 연구사와 대화한 내용을 Q&A로 정리해 보았다.
Q. ‘국내산 승용마’는 정확히 어떤 말인가요?
A. 국내의 승용마는 주로 경마용이거나 수입한 말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키(체고)가 커 초보자나 어린이가 타기 어렵고 관리도 까다롭습니다. 그래서 경마와 스포츠 승마 외에 일반인이 쉽고 편하게 말을 탈 수 있도록 승용마를 개량하고 있습니다.
국내산 승용마는 우리나라 고유 가축 유전자원인 제주마를 활용합니다. 제주마는 승마용으로 타기에 작은 편입니다. 그 대신 환경에 적응을 잘하고, 강건하며 지구력이 뛰어납니다. 현재 개량하고 있는 3세대는 1세대보다 12개월령 체중이 40.8㎏(191.7→232.5㎏) 무거워졌고, 체고는 4㎝(124.5→128.5㎝) 높아져 개량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품성 개량 연구도 하고 있습니다. 품성은 승용마가 갖춰야 할 중요한 형질 가운데 하나거든요. 말의 품성은 말을 타고 있는 기승자나 보조자의 안전과 직접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국내산 승용마를 통해 승마산업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Q. 말(馬)을 어떻게 개량하나요?
A. 말의 체형을 측정하는 등 성장 특성 분석을 통해 개량하고 있습니다. 말의 털색과 관련한 연구는 혈액 내 DNA를 추출하여 유전자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이 선호하는 털색인 흑색 계열로 고정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품성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승마할 때 말의 품성과 안전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승용마의 온순성, 인내성, 공격성, 과민성, 대인 친화성 등 기질 평가와 시각·청각·촉각 자극에 대한 반응을 보는 접촉 평가 방법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품성 관련 유전자와 신경전달물질도 분석하고 있고요.
Q. 연구하면서 뿌듯한 순간이 언제였나요?
A. 국내산 승용마 연구가 지금 3세대로 접어드는데요. 여기서 태어난 국내산 승용마가 있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말이 저에게 다가와서 교감할 때 뿌듯했습니다. 말들이 기억력이 좋거든요. 오늘 말 방목을 했는데요. 방목한 말의 혈액을 분석하면 마방에만 있는 말에 비하여 운동 후 회복과 관련된 수치가 좋게 나옵니다. 말들이 초지에서 무리생활을 하며 사회성, 지구력을 기르지요.
이곳에서 생산한 말은 제주 축협 등 위탁 경매를 통해 여러 곳으로 옮겨집니다. 망아지는 태어나면서부터 다양한 ‘순치’ 과정을 거치는데요. 순치란 말을 사람과 친숙하게 하고 말들을 관리하기 쉽도록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국내산 승용마의 보급으로 더욱 많은 승마인이 쉽게 말을 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말은 자동차가 나오기 전까지 주요한 운송수단으로 쓰였다. 암행어사의 신분 및 임무를 표시하는데 말이 그려진 ‘마패’를 썼다. 그만큼 우리와 친숙한 동물이다. 승마는 비싼 고급 스포츠라는 인식이 있는데, 건강과 여가를 위한 생활체육으로 자리 잡는데 국내산 승용마가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