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 이렇게 맛있을 수 있구나. 장만 먹어봐도 느낌이 다른데요.”
10월 25일 서울 성북동 삼청각 일화당에서는 농림축산식품부와 한식진흥원이 함께한 ‘2024 한식 컨퍼런스’가 열렸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한식 컨퍼런스’는 K(케이)푸드의 열기를 지속적으로 전 세계에 확산시키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이 한식의 가치와 브랜딩 전략 등을 토론하는 자리다. 행사에 앞서 이틀 동안 국내·외 셰프와 관계자들은 한식의 맛과 멋을 체험했다. 그런 만큼 25일은 한식의 역사와 미래를 모색하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특히 12월에 있을 우리나라 장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무형유산 등재를 기원하며 ‘한국의 장 문화’와 ‘미래 인재양성’, ‘글로벌 한식 비즈니스’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른 시간이라 아침을 먹지 못한 채 삼청각을 찾았다. 나 같은 사람이 많지 않았을까. 앞마당에는 스탠딩 테이블과 함께 간단하게 한식을 시식해볼 수 있었다. 추운 아침 까칠해진 입맛을 잡은 건 뭐니 뭐니해도 한식이다. 따끈한 국 한 모금에 편안함이 전해졌다. 먹고나자 테이블에 놓인 한국의 장에 시선이 갔다. 전국 7개 종가의 고추장, 된장, 간장 등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 맛있다는 소리에 나도 한 입 먹어보니 보기와는 다른 풍미가 전해졌다.
“이렇게 맛있는 주악은 처음 먹어봐요.”
주악은 찹쌀을 막걸리로 반죽해 캐러멜 간장을 살짝 입힌 떡이다.
“이것은 간장 조청으로 지진 주악이고요. 이것은 씨간장 소금으로 간을 한 간장 약과입니다. 보통 약과를 튀기는데 오븐에 구워서 만들었어요. 여기 생란이라고 하는 걸 오븐으로 구운 거고 홍시타락죽 안에는 된장으로 버무린 곶감이 들어있어요.”
디저트를 만들던 신용일 셰프(카페 합)가 말했다. 그는 기존에 만들던 음식도 있지만 이번 행사로 새로 신경 써 만들었다고 했다.
“간장이 들어갔다고요? 말씀 안 해주셨으면 전혀 모르겠어요.”
옆에 있던 여성이 말하자 같이 온 여성은 “난 타락죽에 된장이 들어간 거 모르겠더라”라고 말했다. 장맛에 익숙한 한국인들도 모르는데 외국인이라면 더 하지 않을까.
■ 2024 한식 컨퍼런스
9시 30분 개회사를 시작으로 ‘2024 한식 컨퍼런스’가 시작됐다. 관계자들을 비롯한 250여 명이 장내를 메웠다. 더욱이 행사는 유튜브 스트리밍으로 진행돼 보다 많은 시청자가 관람할 수 있었다. 두 시간가량 진행된 행사는 세션 1, 2로 나눠 오래된 미래와 한식의 미래를 알아보도록 구성됐다.
“버터 없는 프랑스 요리나 올리브유 없는 이탈리아 요리는 설명하기 어렵잖아요. 한식에서는 장이 그런 존재라고 생각해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가 ‘오래된 미래:한국의 장(醬)’에 관한 이야기로 본격적인 문을 열었다. 그는 장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장을 만드는 지역 온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맛은 비슷하지 않냐고? 그는 간장은 은은한 단맛에 감칠맛, 산미와 고소한 향이 더해진다, 고추장에서는 꽃 향까지 느껴진다고 말했다.
“장은 장점이 많아요. 이런 장의 다양한 맛들이 요리 안에서 증폭되고 재료의 맛까지 살려줍니다. 또 음식에서 나는 쓴맛이나 풋내를 감춰주기도 하죠.”
더해 장을 재료로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방법과 어울리는 식재료 등을 소개했다. 또 장을 해외에서 처음 보면 꽤 어려운 식재료지만, 현지인의 음식에 장을 조금씩 첨가해 비슷한 듯 다른 뉘앙스를 줄 때 호응이 높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세션은 ‘한식의 미래’로 세계 3대 요리학교 중 하나인 미국 요리학교 CIA(The Culinary Institute of America)의 양종집 교수 및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양종집 교수는 미국 CIA의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교육방법 등을 이야기했다. 그는 한식의 글로벌화는 교육과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식 집중교육 과정이 생긴다면 등록하겠다고 대답한 학생들이 70%를 넘어 큰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으로 박정은 대표의 진행으로 박정현 셰프(아토믹스(Atomix))를 비롯한 호르헤 바예호 셰프(킨토닐(Quintonil)). 지미 림 셰프(대만 제이엘 스튜디오(JL Studio)). 상훈 드장브르 셰프(벨기에 레르 뒤 탕(L’Air du Temps))등이 함께 한식에 관한 전략과 비전에 관해 토론했다.
박정현 세프는 “확실히 뉴욕에서 처음 오픈할 때보다 한식에 관한 관심이나 이해도가 높아졌다. 한식 열풍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해외 사람들이 한식은 특별한 날 먹는 게 아니라 일상식으로 인식해야한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한식 교육은 물론, 관련 콘텐츠 등이 많아지면 더 가깝게 다가올 거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박정은 대표는 “미국에서는 미국인 셰프가 태국, 일식 레스토랑을 하고 있다. 한식 또한 한식에 관한 프로그램이나 교육이 많아져 한식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들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되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미 림 셰프는 “근간이 없이는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없다. 진정성 있는 전통교육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호르헤 바예호 셰프는 “우리 레스토랑에서는 멕시코 음식뿐만 아니라 문화를 보여주려고 한다. 음식을 통해 식재료가 어떻게 쓰이는지 지역과 연관성 등을 보여주며 레스토랑을 통해 멕시코 문화를 알려주는 소통의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한식진흥원 전시·행사
‘2024 한식 컨퍼런스’는 끝났으나 한식진흥원 전시 및 행사는 열리고 있다.
오는 11월 8일에는 한식연구 학술세미나가 한식진흥원 한식문화공간 이음에서 준비돼 있으며 10월 25일부터 12월 8일까지 금·토·일요일에 한해 ‘장페스타’가 열리고 있다. 이곳에서는 장에 관해 둘러보고 장 담그기에 관한 유네스코 등재 기원 문구 작성, 작은 쌈장 만들기 같은 이벤트에 참여해볼 수 있다. 특히 고추장 아이스크림을 한정수량으로 맛볼 수 있다. 처음 맛본 고추장 아이스크림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두 외국인이 오자 안내자는 한국의 스파이스 소스 아이스크림이라며 권유했다. 처음에는 매운 것에 약하다는 두 사람은 한 개를 받아 둘이 시식해 본 후 생각보다 고추장 맛이 나진 않지만 끝에 살짝 맵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끝이 알싸한 맛이 감돌았다.
‘2024 한식 컨퍼런스’에서는 인기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 등장한 여러 셰프들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은 공개된 후 2주 연속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시청된 비영어권 시리즈로 외신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해서도 한식이 나아갈 길이 조금 더 넓어지지 않았을까. 한국의 장이 서서히 스며들면서 세계의 입맛을 사로잡기를 바란다. 고추장 아이스크림을 처음 접한 프랑스 두 사람의 말처럼 말이다.
“먹을 때는 몰랐어요. 끝에 감도는 매운맛이 한국의 고추장이라는 소스군요. 좋은데요.”
오는 12월 ‘한국의 장 담그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길 기원한다.
한식문화공간 ‘이음’
이용시간 : 화요일 ~ 일요일(월요일 휴무), 10:00~1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