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명품’이라고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 혹자는 가격에서, 혹자는 가치에서 그 답을 찾으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럼 공예에서 찾아보면 어떨까. 12월 12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코엑스 C홀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진흥원(KCDF)이 함께한 국내 최대 규모 공예전문박람회 ‘2024 공예트렌드페어’가 진행됐다. 올해 주제는 ‘일상명품, EXTRAORDINARY OBJECTS that shine in my life’으로 이 행사에서는 ‘일상명품’을 이렇게 정의했다. ‘개개인의 삶과 긴밀하게 호흡하며 일상의 가치를 품고 있는 공예품’이라고.
갑자기 나도 궁금해졌다. 나에게 일상명품은 무엇일까. 또 전시를 보고 나면 일상명품에 관한 생각도 달라질까. 이러한 호기심을 가지고 전시가 열리는 현장을 찾았다.
■ ‘2024 공예트렌드페어’의 4가지 특징
“이번 행사에서 본인만의 명품을 발견하는 기쁨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올해 행사의 강재영 총괄감독이 말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장동광 원장의 인사말로 시작된 기자간담회는 강 감독의 설명을 들은 후 행사장 투어로 마무리했다.
“이전에는 주제에 맞는 작가들을 섭외했다면, 올해 284개 부스들은 엄격하게 선발해 참가하도록 했어요.”
강 감독은 올해 달라진 점을 4가지로 꼽았다. 먼저 신진공예가관이 신설됐다. 신진공예가관은 한 작가가 최대 3번까지 참여할 수 있다. 무려 10대 1의 경쟁률을 뚫은 신진 공예가들은 90여 개의 부스에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였다. 두 번째는 K-크래프트의 흐름과 전망을 볼 수 있었다. 현재 한국 문화는 전 세계에 다양한 분야로 뻗어가는데 그중 하나가 공예다. 강 감독은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홍보마벨이란 행사를 사례로 들었다. 세계 500여 명의 작가가 출품하는 이 행사에서 초청작가가 4번째로 많은 곳이 한국이며 한국 작가들이 최우수 작가상 및 다수의 상을 수상했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올해 코로나 이후 주춤했던 국제네트워크 문화적 교류의 장을 열었다. 이탈리아, 일본, 대만, 미얀마 등 4개국 6개 기관을 초청해 해외초청관 부스를 열었다. 마지막으로 행사가 단순한 공예 유통 플랫폼이 아니라 문화적인 교류의 장이 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에 해외초청관에서 온 연사들의 컨퍼런스와 전문 도슨트의 투어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공예를 좀 더 깊이 다각도로 볼 수 있었다.
■ 행사구성
주제관
주제관은 한옥의 구조와 많이 닮아 있었다. 개막식장 앞에 툇마루가 길게 놓여 전시장과 개막식장을 연결했다. 그래서일까 편안함이 느껴졌다. 주제관에서 만난 주제전은 자연의 선, 마음의 선이라는 이름으로 29명(팀)의 작품을 전시했다. 각기 다양한 작품들이지만 모두 우리나라 공예의 아름다움과 철학이 담겨 있었다. 또한, 한국공예의 직선과 곡선을 담은 작품들은 자연과 맞닿아 있었다. 찬찬히 하나씩 바라보면서 한국 공예가 가진 독특한 분위기를 음미했다.
KCDF사업홍보관
KCDF사업홍보관에서는 KCDF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사업 중 공예품과 관련있는 사업과 한지 사업 및 2024년 공예상 수상작 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전문문화유산활용 상품개발 사업, 공예샛별프로젝트, 공예매개인력양성 공예머천다이저 분야 심화 워크숍 결과전, 2024 고부가가치 후속상품 개발 사업등으로 탄생한 작품들을 둘러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머나 진짜 금박이 있는 듯해“
참관객들이 감탄한 건 올해 공예상을 받은 장연순 작가의 작품이었다. 뒤에서 비춘 빛이 통과하며 내는 아름다움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특히 올해는 작년과 달리 공예작가뿐만 아니라 이론부문을 신설해 창작. 매개, 이론 3개 분야에서 수상자를 선정했다.
해외초청관
코로나 이후 올해 처음 국제교류네트워크를 재개해 특히 아시아 지역 기관을 초청해 아시아 공예를 조망했다. 4개국 6개 기관이 참여했다.
고포코게이(Go For Kogei)
일본의 고포코게이는 호쿠리쿠 지역 공예를 기념하는 행사다. 2020년부터 매년 개최하며 공예와 현대미술 등 타 분야와 협업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보여준다.
“한국의 공예와 일본의 공예는 꽤 연결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의 백자 등 일본에 영향을 줬고 이번에 강 총괄 감독님의 초청으로 오게 돼 한국의 공예를 직접 보게 돼 무척 기쁩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좋을까 싶지만 세미나(프리젠테이션)를 통해 들을 수 있어 기대됩니다”. 큐레이터를 맡고 있는 다카이 야스미츠 디렉터가 관련해 답변을 들려줬다.
또한, 개인적으로 이번 부스에 전시된 3개의 작품이 궁금했다. 나무, 뼈 등 재료는 달라도 가늘고 힘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는 일본 공예는 기술과 표현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며 이번 전시에 나온 3인의 작가는 전반적인 구성과 디테일을 균형을 맞추며 잘 표현한 작가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봐도 놀랍지만 또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척 세세한 부분까지 느껴볼 수 있다고.
이탈리아의 ‘호모파베르’
“‘호모파베르’는 도구를 만드는 사람이란 뜻인데요. 전 세계 창의적인 장인에 중심을 두는 문화운동입니다.”
미켈란젤로 재단에서는 ‘호모파베르’라는 이름으로 2년에 한 번씩 국제전시를 개최한다. 이곳 부스 담당자는 “한국 작가들과 만나 공예를 교류하고 싶어 처음 참여했다”고 강조했다.
이외에도 마루누마 예술의 숲과 대만, 미얀마 등이 참여했다. 이러한 공예인들의 교류가 자주 있으면 좋겠다.
신진공예가관
신진공예가관에서 시선을 끈 작품들은 참 많았다. 정말 신진작가 맞을까 싶을 뛰어난 실력에 ‘신진공예가관’이라 적힌 안내판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 중에서도 두 명의 신진작가에게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싱가(SINGA!)의 신가은 도예가는 자연에서 직접 기르고 관찰한 농작물의 형태와 색감을 도자기 속에 표현했다. 해마다 다른 농작물을 접목해보는데 올해는 콩이라고. 검정콩, 강낭콩은 물론 시중에서 보기 힘든 제비강낭콩과 밤콩 등도 있었다. 작품은 단지 콩의 모양과 색이 아닌 일반 콩의 색, 껍질을 깐 색, 코투리 등을 활용했다. 싱가(SINGA!)의 신 도예가에게 간단하게 질문을 던졌다.
Q. 참 독특하다. 어떻게 자연으로 활용할 생각을 했는지.
A. 아버지가 농사를 지어 2020년부터 마늘과 양파 같은 시리즈로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2021년에는 토마토를 해보고 22년 이후로는 콩에 집중해보고 있다. 앞으로는 쌀과 접목하지 않을까 싶다.
Q. 이번 주제가 일상명품이다. 명품이 무엇이라고 생각 하는지.
A. 공예품들이 일상생활에 잘 녹아들려면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 작품도 그렇게 일상명품, 내 삶의 반려공예품이 되도록 만들려고 한다.
“가까이서 보면 좀 달라보여요. 반짝 거리는 게 잘 보이거든요.”
스튜디오 현화의 이현화작가가 말했다. 검은 작품에 빨간 실이 남달라 보였다. 검은색은 놀랍게도 자신의 머리카락, 반짝이는 건 소금이란다.
그에게 묻자 그는 “제 마음속 부정한 기운을 몰아내고 평안을 찾고 싶었다고 할까요. 이 재료를 쓴 건 세상에서 가장 검은 물질을 고심했고 모든 걸 태운 잿가루라는 생각이 떠올랐죠. 또 소금을 재료로 사용한 것 역시 썩지 않게 보존하는 힘을 가졌다는 느낌이 있잖아요. 거기에 빨간 줄이 하나 있는 건 우리 삶에서 인연을 표현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에게 일상명품을 묻자 “저는 계속 새로운 영감과 생각을 주는 것이 명품같다고 느꼈어요. 제 작품들도 저 스스로에게는 명품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사물이나 작품을 바라볼 때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 또 일상에서 색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매개체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넌지시 말했다.
공예매개관
공예매개관은 일반소비자와 공예가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기관과 갤러리를 뜻한다. 이곳에서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과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가 내 시선을 끌었다.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은 올해 5월 국가유산기본법에 따른 한국문화재재단의 새로운 명칭이다. 이곳에서는 한국에서 인증을 받은 우수공예품과 국가무형유산 전승자와 디자이너의 협업 작품 등이 소개됐다.
“렉서스는 차 아냐?” 누군가가 말에 마냥 웃을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에 관해 행사를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렉서스 크리에티브 마스터즈는 2017년부터 국내공예분야 신진 작가드를 발굴하고 지원하며 크래프트맨쉽 문화를 만들기 위한 인재육성사회공헌프로그램이다.
이외 공예에서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열고 있는 공예공방관과 협력기업관 부대행사가 열렸다.
‘일상명품’은 무엇일까
“나무수저가 입에 들어가잖아요. 나무가 단단해야 하고 물이 드나드는 통로 도관이 작아야 해요.” 칠몽의 김현중 연구실장이 말했다.
평상시 우리가 하루 세 번 사용한다는 수저와 젓가락. 생각해보면 식생활에 이용하는 만큼 꽤 우리와 밀접한 도구다. 언젠가 옻칠수저를 선물받아본 적도 있고 코로나19 동안 나무 수저를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깊이 생각해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칠몽 부스에는 수저와 젓가락에 적합한 나무들과 부적합한 나무가 전시돼 있었다. 그는 각자 나무의 특성에 맞는 식기를 사용하라고 강조했다. 그에게 명품이 무엇인지 묻자, 그는 “제가 생각하는 공예에서 명품은 사람이 사용하기 위한 것이잖아요. 미적인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실용성과 건강을 봐야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차는 보관이 제일 중요해요. 또 봄차는 봄의 기운을 마신다고 생각하면 돼서 우리 몸에 무척 좋지요.”
제주도 애월에서 온 차만(茶慢)의 박정아 대표(애월 하귀점)가 말했다. 이 곳에서 보이차를 마시는 시음회에 참가해 두 가지 봄차를 맛봤다. 아침도 점심도 거르고 4시까지 계속 페어를 둘러보느라 지쳤던 몸이 차 한잔에 생기가 돌아 신기했다. 작은 일상명품은 이런 곳에서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아침부터 개막식 전까지 오롯이 공예에 심취했다. 특히 강 총괄감독이 언급한 대로 부스들의 꾸민 모습이 그냥 전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만큼 특이하지 않으면 눈에 들어오기도 쉽지 않겠지만 또 그 기대에 부응할 만큼 솜씨가 뛰어났다. 작은 부스는 흑백만으로 혹은 강렬한 원색으로 또는 공방을 형상화 하거나 나선형 계단 전시장 등으로 개성있게 꾸며져 부스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2024 공예트렌드페어’는 지금까지 알고 있던 공예에 관해 좀 더 깊숙이 볼 수 있었던 자리였다.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생각하는 K-공예도 들어볼 수 있었다. 또 신진 작가들의 창의적인 작품에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예쁜 찻잔에 마시는 따뜻한 차 한잔이 사람의 기분을 온화하게 만든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공예는 사전적 의미로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켜 일상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만든다’고 한다. 잘 만든 작품을 내 방에 놓으면 이 것이 명품이 되지 않을까. 정성껏 빚은 그릇에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면 그 역시 명품이 아닐까. 가격이나 재료를 간과하기는 어렵지만, 내가 가치를 부여한 작품이 나에게는 최고 명품 같다. 적어도 내 생각엔. 그런 공예품 하나를 소장한다면 오늘 내 생활을, 내 방을, 내 기분을 명품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내 일상에 들어와 명품이 돼줄 찬란한 공예를 다양한 곳에서 만나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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