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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과 인고의 섬, 이제는 그리운 섬

[김준의 섬섬옥수] 신안 하의도

2017.10.10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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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의도는 신안군 하의면 본섬이다. 크고 작은 섬을 막아 염전과 갯밭을 만들었다.
하의도는 신안군 하의면 본섬이다. 크고 작은 섬을 막아 염전과 갯밭을 만들었다.

대통령 김대중하면 떠오르는 섬. 신안 하의도의 첫 머리는 웅곡선착장이다. 아이들 열댓 명이 주르르 올라왔다. 깜짝 놀라 급히 밖으로 나오니, 유치원생이 줄줄이 오른다. 1박2일 목포로 가는 소풍이란다.

선생님 몇 분이 아이들이 올라타자마자 자리에 앉히고 간식을 꺼내 챙겨준다. 농촌에서도 간난아이 울음소리는 고사하고 아이들 노는 것을 보는 것이 힘들다. 하물며 섬에서 주르르 오르는 아이를 보니 괜스레 가슴이 설렌다.

바로 후광리로 항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곳이다. 생가가 있는 곳은 갯벌을 사이에 두고 개도에서 시작해 저도, 간암도, 문병도, 장병도가 둘러싸고 있다. 멀리 도초도, 비금도, 안좌도, 장산도가 에워쌌다.

큰 섬과 작은 섬 사이에 수천 년에 걸쳐 들고 나는 바닷물에 흙과 모래가 쌓여 갯벌이 형성되었다. 그러니까 후광리는 갯벌로 둘러싸인 섬 속에 섬이다. 원을 쌓아 물길을 막고, 논과 염전을 조성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후광리 너머 소포리뒷들과 역구미도 모두 원을 막아 만든 논과 염전이 있다.

소금 한 가마니가 커피값보다 싸 소금밭은 새우양식장으로 바뀌었다. 소금과 쌀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자존심인 것을.
소금 한 가마니가 커피값보다 싸 소금밭은 새우양식장으로 바뀌었다. 소금과 쌀은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자존심인 것을.

갯밭은 목숨줄이었다

하의도는 후광리만 아니라 대리, 웅곡리, 오림리, 어은리 등 큰 들판은 모두 갯벌을 막아서 조성한 곳이다. 산을 개간하는 것도 힘든 일인데, 바닷물을 막아 갯벌을 논으로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지금처럼 흙과 돌을 실어 나르는 기계가 있을 리 없고, 큰 배가 있지도 않았다.

등에 지고 머리에 이고 날랐다. 갯벌을 그냥 오가는 것도 힘든데. 마을 앞 땅 한 뙈기, 소금밭 한 뙈기가 그렇게 마련된 것이다. 그러니 그 땅이 목숨보다 소중하고 귀했을 것이다. 지금처럼 갯벌에서 나오는 것이 귀하고 비싸지 않았고, 당시 물산 중에 쌀이 으뜸이니, 어떡하든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는 것이 소원 중에 소원이었다. 먹고 사는 것은 뻘밭 ‘갯것’으로 빌어먹고, 남은 여력은 오직 농사지을 땅을 마련하는데 썼을 것이다. 그 심성을 엿볼 수 있는 것이 붕알바위다.

하의도 웅곡리에서 뻘섬 봉도로 가는 길에 있다. 누군가 오줌을 싸다가 급하게 도망가느라 붕알만 놓고 갔다던가. 아들을 원하는 어머니들은 바위를 보고 아침저녁으로 치성을 드렸다. 영험한 바위다. 바위 주변 유호리, 신촌, 봉도 등 오림리 인근 마을에 살았던 사람들은 붕알바위 이야기만 나오면 고향이야기로 밤새는 줄 모른다. 그런 바위나 나무가 시골에는 하나쯤은 꼭 있다. 그 바위가 한때 ‘양세바위’로도 불렸다. 그 내력을 쫓아가면 ‘하의도농민항쟁’으로 이어진다.

하의3동농민항쟁기념관,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세 섬의 조상들은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300년 이상 지주, 일제, 미군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시기에 기나긴 항쟁을 해야 했다.
하의3동 농민항쟁기념관.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 세 섬의 조상들은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해 300년 이상 지주, 일제, 미군으로 이어지는 근현대시기에 기나긴 항쟁을 해야 했다.

붕알바위, 양세바위가 된 이유

발단은 선조의 딸 정명공주에게 주어진 20결 절수지가 남편 홍씨 집으로 넘어가면서 무려 일곱 곱절에 이르는 땅으로 둔갑하면서 시작된다. 여기에 주민들은 홍씨 집안과 국가에 세금을 바쳐야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권력과 자본을 손에 쥔 은행장과 갑부의 손을 거쳐 일본지주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토지는 주민들이 아니라 미군정 신한공사라는 기관으로 이전되었다.

이에 오림리를 중심으로 대리와 웅곡리 주민들이 소작쟁의를 주도하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소작쟁의는 토지탈환운동으로 확산되어 항일민족운동과 사회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오림리 젊은이들이 큰 희생을 치렀다. 심지어 공산도배의 책동이라는 연좌의 사슬에 묶여 후손들이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오림리 붕알바위가 ‘일토양세’ 저항을 상징하는 ‘양세바위’로 불렸던 것이다. 하의3도 농민항쟁은 1950년대 중반이 문제의 땅을 농민에게 적산불하로 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하의3도 주민들의 농지탈환운동을 기념해 2009년 대리초등학교 자리에 ‘하의3도농민운동기념관’을 개관했다.

농민항쟁 중심지인 오림리에는 불알을 닮은 바위가 있다. 주민들은 하나의 토지에 절수자와 국가 양쪽에 세금을 거둬가는 것에 빗대 ‘양세바위’라 부르며 토지반환에 불을 지폈다.
농민항쟁 중심지인 오림리에는 불알을 닮은 바위가 있다. 주민들은 하나의 토지에 절수자와 국가 양쪽에 세금을 거둬가는 것에 빗대 ‘양세바위’라 부르며 토지반환에 불을 지폈다.

에코솔트뮤지엄을 만들자

후광리 앞 갯벌에는 천일염전이 조성되기 전에도 소금밭이 있었다. 화렴이라 부르는 소금으로 큰 가마솥에 바닷물을 부어 불을 지펴 증발시켜 소금을 만들었다. 주민들은 ‘육염’이라고도 불렸고, 사전에는 삶아서 만드는 소금이라 ‘자염(煮鹽)’이라 했다.

이곳에 염막(가마), 염밭(섯등) 등을 복원해 전통소금의 생산과정을, 옆에는 ‘소금전시관’을 만들어 천일염의 생산과정과 특성을 전시 홍보했다. 전통소금과 근대염전, 자염과 천일염을 함께 소개하는 ‘솔트에코뮤지엄’을 지향하는 좋은 시도였다. 하지만 자염 체험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소금전시관도 문을 닫았다. 전시콘텐츠를 보완해 열겠다는 소식만 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볼거리가 없다고 야단이면서 있던 것은 관리를 못하고, 큰 예산을 들여 해양테마파크라며 새로운 건물을 짓이 지고 있다. 벌써부터 운영과 관리비용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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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버린 자염체험장(왼쪽)과 문이 닫힌 천일염홍보전시관.
사라져 버린 자염체험장(왼쪽)과 문이 닫힌 천일염홍보전시관.

하의도, 상태도, 하태도는 한 때 모두 같은 하의면에 속한 섬이었다. 그래서 ‘하의삼도’라고들 한다. 물이 빠지면 노두를 건너 오가거나 개웅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통혼권이었다. 게다가 오랫동안 빼앗긴 땅을 찾기 위한 노력을 함께 한 탓에 비록 떨어져 있는 섬이지만 유대감도 강하다.

상태도와 하태도는 가깝고 갯벌로 연결되어 있어 해방 후 원을 쌓아 논밭을 만들어 연결해 하의면에서 신의면으로 분리했다. 이후 선거철만 되면 하의면과 신의면을 연결하는 연도교가 공약으로 내 걸렸다. 특히 DJ가 대통령이 되고 나서는 기대감이 더욱 컸다. 하지만 주민들은 오히려 예산이 삭감되고 다리를 놓는 공사도 지연되었다고 생각한다.

금년에 세 섬이 연결되었다. 최고 기술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에서 착공 7년 만에 1.39㎞ 다리가 완공되었다. 길지도 않는 다리를 놓은데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세 섬이 하나가 되었다. 이름도 ‘삼도대교’란다. 국도2호선이다.

가까운 섬끼리 연결하면 공공자원을 나누고 정책을 추진할 때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각 섬주민들이 서로 양보와 타협이 전제되어야 한다. 다리를 놓는 다는 것은 물리적인 연결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노력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간 ‘우리 섬’에 꼭 있어야 한다는 논리에서 벗어나 다리로 연결된 ‘이웃 섬’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

하의도 대통령 생가를 돌아 본 사람들이 다리건너 신의면에 멋진 해안도로를 돌아보고 우리나라 최대 소금섬 상태도와 하태도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여행객이 섬에 머물면서 주민들의 삶을 이해하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교류하는 착한여행이나 공정여행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둘이 하나가 되어 서로의 장점을 더욱 강화시키고 약점을 보완하는 섬으로 가꾸어야 한다.

잃어버린 땅을 찾기 위한 하의삼도 조상들이 보여준 기상이 있지 않던가. 연륙을 기회로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세 섬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신의면과 하의도를 잇는 삼도대교, 1㎞ 남짓 되는 다리를 잇는대 7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뱃길과 섬길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기반 시설임에도 여전히 민간투자 개념으로 접근한다.
신의면과 하의도를 잇는 삼도대교, 1㎞ 남짓 되는 다리를 잇는데 7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뱃길과 섬길은 국가가 책임져야 할 사회기반 시설임에도 여전히 민간투자 개념으로 접근한다.

목포와 하의도를 잇는 쾌속선.
목포와 하의도를 잇는 쾌속선.

후광리, 대통령을 낳다

세인들은 하의도를 대통령의 고향으로 기억한다. 김대중은 1924년 하의도 후광리에서 태어나 1936년 하의보통학교 3학년 때까지 어린시절을 보냈다. 그 자리에 초가집이 복원되었다. 정확한 탯자리는 지금 집자리에서 오른쪽 대통령 동상이 있는 자리다.

생가는 종친들을 중심으로 복원사업이 시작되어, 1999년 9월 60여년 만에 원형대로 재현하였다. 생가 앞에 대리석에 적혀 있는 내용이다. 복원사업도 대통령의 인생역정만큼이나 많은 사연이 깃들어있다.

대통령은 자신이 삶을 바꾼 첫 번째 계기를 목포유학을 꼽았다. 그러니까 섬에서 뭍으로 나간 것이 그의 삶을 바꾸는 계기였다. 그 후 줄곧 목포생활을 하다 서울로 옮겨간다. 그러니까 섬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섬생활이 그의 삶에 녹아있다고 볼 수 없다. 반대로 하의도 섬사람은 물론 신안군 섬사람들만 애증을 가지고 있다.

오래전 하의도에서 만난 한 노인은 군고(농악)를 쳐서 돈을 모아 전달할 정도로 애정을 가졌었다고 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선산까지 서울로 옮겨갔다며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태어난 하의도보다는 학교생활과 사업과 정치활동을 했던 목포가 고향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대통령 살아생전에는 선거철이나 정치인들 도원결의 때 드나들던 정치인들 방문도 뜸하다. 최근 여행객이 늘어 다행이다. 생가로 가는 길은 여전히 누추하지만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 위치한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 위치한 고(故)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섬과 섬 사이, 진짜 보물을 찾다

섬도 소중하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곳은 섬과 섬 사이다. 이곳이야 말로 어민들 삶을 결정하는 소중한 자원들이 무궁무진하다. 갯벌이 그 중에 하나다. 오랫동안 논란이 되었던 하의도 농지도 섬과 섬 사이에서 갯벌을 간척해 만들어낸 것이다. 육지와 뭍을 잇는 뱃길도 섬과 섬 사이를 이용한다. 바람을 피하고 파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물이 빠진 갯벌에서 낙지를 잡고 조개를 캐는 정도였다. 그러다 나무를 박아 김양식을 시작했다. 파도를 견딜 만큼 강한 재료를 만들지 못했고 양식기술도 발달하지 못하던 시절에 섬과 섬사이는 문전옥답, 아니 문전옥해였다. 지주식김양식은 물이 빠지면 걸어갈 수 있는, 노를 저어 오갈 수 있는 갯골 가장자리에서 시작했다.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깊은 바다에서도 양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자본과 경제성이다. 예전에는 모든 섬주민들이 똑같이 나누어서 양식을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본과 노동을 동원할 수 있는 소수가 양식을 도맡고 있다. 그래서 섬과 섬 사이 바다가 더 소중하다. 갯골이 더 소중하다. 하의도와 능산도와 신도 사이 갯골과 바다가 보물이다.

섬과 섬 사이 갯골과 갯벌은 섬살이에 꼭 필요한 곳이다. 때로는 갯밭이 되고 양식장이되고 염전이 되고 바람과 파도를 막아 주는 역할도 한다.
섬과 섬 사이 갯골과 갯벌은 섬살이에 꼭 필요한 곳이다. 때로는 갯밭이 되고 양식장이되고 염전이 되고 바람과 파도를 막아 주는 역할도 한다.

내 손안에 떡이 크다

후광리에서 대섬(큰바위얼굴)로 가는 해안 길에서 김씨를 만났다. 톳양식을 준비하던 김씨는 지주식 김양식도 재개하려고 한다고 했다. 전복양식을 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투자에 비해서 경제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란다. 반대로 전복처럼 큰 돈을 만지는 것은 아니지만 지주식 김양식은 투자비에 비해 소득도 괜찮다.

겨울철 3개월에 농번기이며, 옛날과 달리 채취와 가공을 모두 기계가 대신하기에 노동강도도 세지 않다. 겨울작물로 최고란다. 그래서 중단되었던 지주식 김양식을 하려는 사람이 하나 둘 나서고 있다.

갯골과 섬 사이 바다가 건강하고 갯벌이 제 기능을 할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더욱이 그곳은 지선어장으로 마을주민들이 점유해서 이용할 수 있는 마을어업 공간이다. 귀어귀촌을 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내 손안에 떡이 귀한 줄 모른다. 그리고 남의 떡만 크다고 타박을 한다. 집 앞에 갯벌과 갯골과 섬과 섬사이 바다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르는 것도 같은 이치다.

하의도 섬마을에서는 가을걷이를 하는 손길이 분주하다. 붉은 고추가 도로 위에 눕고, 메주콩 꼬투리가 손만 대면 터질 것 같다. 늙은 호박은 어머니 얼굴 주름살마냥 깊고 굵다. 섬마을 빈터마다 가을이 수북수북 쌓여간다. 참깨를 말리기에는 담장만큼 좋은 곳도 없다.

바람 잘 통하고 햇볕 잘 드는 담장에 참깨가 가리를 벌리고 걸터앉아 주인 손길을 기다린다. 이번 추석명절에 바람구미갯벌에서 깐 굴, 갯바탕에서 잡은 뻘낙지, 갯밭에서 일군 간척지 쌀, 밭에서 수확한 고추와 참깨 모두 자식들 차에 가득했을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준 바다맛은 또 어떠했을까. 명절이 그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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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명절은 풍성하다. 바다에서 나는 것도 땅에서 나는 것도 갯벌에서 잡아낸 것도 모두 여유롭다. 어머니 손맛은 자연이 가져다 준 선물과 만나 남도 맛으로 완성된다.
김준

◆ 김준 섬마실 길라잡이

어촌사회 연구로 학위를 받은 후, 섬이 학교이고 섬사람이 선생님이라는 믿음으로 27년 동안 섬 길을 걷고 있다. 광주전남연구원에서 해양관광, 섬여행, 갯벌문화, 어촌사회, 지역문화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개발을 하고 있다. 틈틈이 ‘섬살이’를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며 ‘섬문화답사기’라는 책을 쓰고 있다. 쓴 책으로 섬문화답사기, 섬살이, 바다맛기행, 물고기가 왜, 김준의 갯벌이야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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