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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
일자리가 화두다. 중요한 건 단순히 일자리의 양적인 확대가 아니다. 현실의 일자리 질서에는 우리 사회 모순과 불평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문제적 구조를 그대로 두고 일자리의 양만 늘리는 정책은 이미 실패했다. ‘고용율 70%’를 구호로 내 걸었던 박근혜 정부가 대표적이다. ‘비정규직이라도 감지덕지다’라는 식의 사고는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 그 사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답은 일자리 질서, 일자리 구조, 일자리 관계를 다 포함해 한마디로 일자리 자체를 혁신시키는 일이다. 나쁜 일자리라면 가급적 없애거나, 발본적으로 개선해 가야 한다. 이미 괜찮은 일자리도 전체 구조의 전환 전망 속에서 새롭게 혁신돼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또 누구의 손에 의해 혁신시켜 가야 할지를 구체적인 조건 속에서 고민해 가야 한다.
일자리 혁신이라고 하는 사회적 실험(social experiments)을 위해 새로운 투자기회를 만들어 그 기반이자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이 절실한 과제의 수행을 도모하며 최근 주요 사회적 주체들간 획기적인 의기투합이 이뤄졌다. 이미 언론에 떠들썩하게 회자되고 있는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그것이다. 광주와 함평 사이에 막 조성된 ‘빛그린 산단’에 광주광역시와 현대자동차가 공동으로 출자해서 연생산량 약 10만대 규모의 경형 SUV를 생산하는 신규 완성차 공장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합의한 것이 그 핵심이다.
합의의 성사를 위해 광주시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가동시켜 새로운 일자리 질서 형성을 위한 다양한 원리들을 ‘노사상생발전협정서’라는 제하에 결의했다. 현대차는 그러한 결의를 믿고 투자를 결정하면서 생산과 경영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제공하기로 했다. 합작법인의 투자주체로 대기업과 지방정부가 호흡을 맞춘다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것을 결정한 과정 자체도 독특하다. 이미 그 안에는 일자리 혁신의 상이 인상적으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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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월 31일 오후 광주시청 1층 시민홀에서 열린 ‘광주광역시-현대자동차 투자협약식’에서 윤종해 한국노총 광주본부장, 이용섭 광주광역시장, 이원희 현대자동차 대표이사(왼쪽부터)와 손을 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광주광역시 제공) |
참신한 사회적 실험으로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추구하는 ‘혁신’의 내용은 무엇인가? 세 가지를 짚을 수 있겠다. 첫째는 양극화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노동시장을 혁신하는 일이다. 현재 한국의 자동차산업에는 한편으로 기존의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장시간-고임금 노동을 기반으로 한 일자리군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 수직계열화된 하청구조 하에서 장시간-저임금 노동이 만연한 하청업체의 일자리군들이 고통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중간지대에 적정임금을 설정하여 일자리 질서 전반의 ‘상향균형화’를 추구하는 광주형 일자리는 이러한 모순적인 구조를 혁파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신규 합작법인은 완성차 업체임에도 평균임금 3500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길을 설정했다. 동시에 하청업체들에서도 그러한 노동시간과 임금의 ‘적정성’의 원리를 최대한 실현해 가기로 했다. 신설법인에 적용될 적정임금에는 일종의 ‘사회임금’의 옷을 입혀, 종래에 기업복지로 해결되어야 할 여러 혜택들 – 주택, 의료, 교육, 보육 등 - 을 사회복지로 충당되도록 정부가 지원키로 했다. 포용국가 일자리의 새로운 전형을 지향하는 것이다.
둘째는 노사관계의 혁신이다. 광주형 일자리에서는 지역노사민정협의회라고 하는 사실상 기능이 미약한 제도적 기구에게 새롭게 생명을 불어 넣어, 지역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신설법인과 산업단지의 노동시장의 원리를 설정(setting)하는 역할을 맡도록 했다. 그러한 원리가 단지 종이 위의 개혁에 머물지 않고 제대로 물화되기 위해서 향후 지역노사민정협의회의 역량을 크게 강화시켜 빛그린 산단의 노동시장질서 전반이 노사상생의 원리로 차도록 필요한 제도적 장치들을 주도적으로 구축해 가게 해야 한다.
나아가 신규 합작법인을 선두로 하여 권리주장과 시장형편 강변이 날카롭게 부딪히는 악무한적 노사관계가 아니라, 책임과 권한이 균형을 갖도록 하고, 그 토대 위에서 상생을 뿌리 내리게 해야 한다.
셋째는 생산방식의 혁신이다. 이미 현대차는 지난 20년간 해외공장에서 수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기술 및 생산방식상의 혁신을 다양하게 거둬 왔다. 그러나 국내 공장에서는 갈등적 노사관계와 고비용의 장벽에 막혀 그러한 혁신의 성과들을 제대로 실현해 갈 수 없었다. 이제 광주의 신설합작법인에 21세기를 지향하는 첨단공법들을 과감하게 적용해 탁월한 생산성을 자랑하는 공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 일환으로 노동자들의 참여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숙련원리들이 학습조직(learning organization)의 틀에 담겨 구현돼야 한다. 기술과 인간의 유기적 조화가 극대화되면서도 노동자들이 소외되지 않고 혁신의 성과를 함께 누릴 수 있게 해, 궁극에 그것이 생산성 증진의 자양분으로 피드백(feedback)되도록 해야 한다.
광주형 일자리는 우리 사회 일자리 혁신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그러하기에 단순히 한 새로운 기업의 비즈니스 성공 여부로만 그것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초래할 이러한 복합적 혁신의 과제가 이 사회실험을 통해 얼마나 달성됐는지, 그 다음 과제는 또 무엇인지를 면밀히 진단하고 답을 찾는 논의와 실천이 이 사업을 통해 우리 사회에 얼마나 튼실하게 자리잡고 확산됐는지를 함께 놓고 판단해야 한다. 어렵고 막막하지만 우리 사회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