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떤 공간에 지나치거나 머문다. 같은 공간에 있어도 똑같은 느낌은 아니다. 다양한 공간에 대해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난 해 7월부터 52시간 근무제로 워라밸, 저녁이 있는 삶이 화두가 되면서 직장인에게 여유가 생겼다. 그 말은 또한 그 여유를 어떻게 잘 보낼지에 대한 숙제도 함께 던져줬다는 얘기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함께 9월 말부터 11월까지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번 사업은 플랫폼 ‘남의 집 프로젝트’와 연계해 그 폭을 넓혔다. 남의 집 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남의 집에 찾아가보는 커뮤니티 플랫폼이다. 그 현장을 찾아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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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 얽힌 저마다의 기억을 소환해내고 그려보았다. |
“출·퇴근길 같은 공간을 재해석해, 소소하지만 즐거운 걸 발견하는 공간으로 만들면 좋겠어요.” 추미림 작가가 말했다. 그는 구글어스(Google Earth)로 유년기를 보낸 곳을 찾아보고 놀랐다. IT가 가져온 감성. 여러 생각들이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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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위성같은 시각으로 도시를 바라보는 작업을 해온 추미림 작가. |
“비좁은 공간에 놓인 가구들이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갖게 됐죠. 자신의 환경에 대한 삶의 태도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미정 작가는 섬세한 디자인과 퍼니싱, 셀프 인테리어에 관심이 높은, 렌즈로 보면 접사렌즈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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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M으로 함께 활동을 시작하는 작가들. |
공간 내부에 관심이 많은 이미정 작가와, 외부에서 넓게 바라보는 추미림 작가. 그들이 만나 사람들에게 더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고, 올해 첫 공동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름은 M×M. 두 작가의 이름에 있는 ‘미’에서 나(Me)를 따와 곱하기를 넣어 공간(제곱)을 나타냈다.
이번 ‘공간읽기’에서 작가들이 추구하는 장소는 바로 자기 방, 나아가 출·퇴근길 같은 일상 공간이다. 늘상 있는 곳이지만 여유라는 필터를 갖고 보면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의 전환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두 가지 시점(IN & OUT)으로 자신의 공간을 읽고, 드로잉하며 마지막 시간에는 에코백을 만들며 마무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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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들이 공간에 대한 드로잉을 하고 있다. |
어두운 저녁 7시, 사회초년생과 취준생을 포함한 6명이 자리에 모였다. 총 4회로 구성된 이들의 프로그램 중 첫 시간을 함께 했다. 여러 공간에서 지내온 다양한 사람들이 아담한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왔다. 그야말로 남의 집 프로젝트다.
우선 서로 소개를 하며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놀랍게도 함께 대화를 하다보니 잊고 살아온 스스로의 흔적들이 선명해졌다. 뜻밖의 순간에서 교집합을 보이며 공감을 했다. 그러다보니 잠시 침울했던 시기들이 비단 스스로가 아닌 모두가 겪었던 일임을 알게 되었고, 잊고 있었던 자신만의 강점이 떠올랐다. 마지막에는 자신이 가장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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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놀던 곳을 설명하는 참가자. |
”제가 어렸을 때,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동생 숙제를 도와주면, 동생이 꼭 칭찬을 받아왔거든요.“ 조용하던 박 씨가 입을 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처음보다 훨씬 활기가 넘쳐 보였다. 그는 지난 어릴 적 기억을 떠올려 큰 은행나무를 그렸다. 동네 나무 앞에서 뛰놀던 유년 시절 추억이 현재 세상의 삶, 인간관계를 버티는 힘이 되었던 건 아닐까 하는 작가의 의견도 함께 했다.
한 사람은 힘들었지만 보람 있었던 학교 무대연습실을 그렸다. 누군가가 그림 속 피아노를 작게 그린 걸 발견하고, 연습실이 더 크게 느껴지는 거 같다는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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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기숙사라는 공통된 장소지만, 한 사람에게는 회색의 뿌연 기억이 남아 있다. |
누군가는 타지생활을 했던 기숙사 방안을 무채색으로 그렸다. 이미 3시간 가령 서로 소통을 해서일까. 그 이유를 알 거 같다는 공감어린 이야기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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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생활 중 방을 얻은 기억 때문에 방이 좋은 공간으로 남았다는 참가자. |
정반대로 또 다른 사람은 외국생활을 생동감 있는 봄빛으로 표현했다. 분명 외롭고 힘든 감정도 있었겠지만, 본인이 스스로 낯선 곳에서 모든 걸 결정한 공간이라 무척 좋게 기억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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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공간은 무대이자 카메라 앞, 프레임 앞, 관중 앞이 아니었을까 말하는 안홍준(24) 씨. |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 참가한 이유, 수업 후 보람을 듣고 싶었다. 내 공간을 찾고 싶었다는 박 씨는 4회차가 끝날 때, 자신만의 공간을 찾을 수 있다면 성공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박 씨는 자신의 인생에 미술을 배울 줄은 몰랐다며 체계적이 아니라 편하게 접할 수 있게 돼 좋았으며 스스로를 돌아볼 여유를 갖게 돼 보람됐다고 말했다.
같은 프로그램이지만 목요일은 워킹맘이 대상이다. 한국교육진흥원은 여러 대상에게 기회를 주도록 연령층 등을 달리했다. 대신 워킹맘은 아이가 있기에 2회로 단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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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프로그램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대화로 누군가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계기가 돼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다면 보람스러울 거 같다고 말하는 작가들. |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은 직장인들이 문화예술을 통해 워라밸을 찾고 문화예술 감수성을 높이도록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과 퇴근 후 직장인이 함께하는 특화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다.
자신이 가진 두려움을 극복하는 괴물을 만들거나 일상의 소리를 기록해 스피커를 만들어 들어보는 등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1차를 마치면 2차 모집도 있으니 이곳으로 신청하면 좋겠다.(공고 : https://naamezip.com/artist2)
‘2019 직장인 문화예술교육’ 누리집 : http://www.arte-ed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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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작품을 추구하지만 과연 좋은 작품은 무엇일까. 비싸거나 화려한 게 아니라, 작품 속 숨겨진 내 의도를 알아주는 사람을 보았을 때 희열을 느낀다. |
매일 사소하게 지나쳐 버리는 공간 속 작은 몸짓 하나라도 자세히 바라본다면, 그 공간은 좀 더 특별한 의미를 줄 것이다. 공간을 통해 스스로를 바라보는 프로그램은 워라밸을 넘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되주리라 본다.
무척 우울한 소식을 접했던 이날, 예상치 않게 필자마저도 위안을 받은 건, 이 프로그램이 꽤 알찼다는 소리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