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民族民主革命黨 간첩사건搜査結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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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수사 경위


國家情報院은 金永煥의 주사파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관련혐의와
97.10 검거한 최정남 부부간첩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내사해 오던 중

98.12.18 남해에서 우리 군의 경계망에 걸려 격침된 반잠수정이
남파간첩을 대동복귀하던간첩선임을 확인하고
- 반잠수정에서 발견된 "전화번호 기재 수첩" 등 유류품을 단서로
남파간첩의 행적과 국내 연계망을 추적한 끝에
- 복귀중 사망한 간첩이 국내 실존인물 원 某로 신분을 위장하여
수도권에서 암약한 사실과
- 간첩이 소지한수첩에 암호로 적혀 있던 金永煥·曺裕植·
沈載春·金京煥 등 고첩 용의자들의 전화번호를
확인하고, 결정적 증거 확보에 주력해 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97.10부터 중국에 체류 중이던 金永煥이 정부당국에
입국허용 탄원서를 제출한 후 지난 7.29자진 귀국함에 따라
- 8.9~8.16간 4회에 걸쳐 본인이 원하는 시간대에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심사를 실시하여
- "89.7 북한 직파간첩에게 포섭되어 입북·귀환후 북한지령에 따라
지하당을 결성하였다"는 등의 자백을 받아내고, 자수자에 준한선처방침을 검토하고 있던 중


金永煥이 8.16 돌연「말」지를 찾아가 "國情院이 간첩단 사건을
조작하려 한다"는 거짓내용의 인터뷰를 하여 관련 혐의자들에 대한
수사를 방해하고 잠적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國情院은 그의 소재를 추적하던중8.18 18:35발 대한항공편을
이용해 해외 도피차 홍콩으로 출국하려던 金永煥을 김포공항에서 긴급
체포하고
- 관련자 曺裕植(35세, 前「말」지 기자)·河永沃(36세, 무직)·
沈載春(29세, 대학 강사)·金京煥(35세,「말」지 기자) 등을
차례로 연행, 본격적인수사에 착수하였습니다.


II. 수사 결과

1. 사건 개요


이 사건은 북한이 80년대 학원가의 친북투쟁을 주도해온 주사파
핵심세력들을 포섭, 조선노동당에 가입시킨 뒤
- 북한의 직접 지도를 받는 「민족민주혁명당」을 구축하여 이른바남조선혁명운동을 사주해온 전형적인 지하당 사건으로


북한은 남한내 주사파를 대남적화혁명의 前衛隊로 삼기 위해
- 학생운동권에 영향력과 조직적 기반을 갖고 있던 金永煥을 포섭·
입북시킨 후 남한내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지하 혁명지도부를구축토록 지령하였고


金永煥은 북한의 공작지령에 따라
- 친북투쟁을 선도해 온 주사파 지하조직 「반제청년동맹」의 핵심
세력들을 하부망으로 포섭, 노동당에 현지 입당시켜
「관악산」「관모봉」「관철봉」등의 암호명을 부여하고
- 북한의공작 자금으로 전국적인 조직기반을 갖춘 「민족민주혁명당」
(약칭:민혁당)을 결성, 암약해 왔으며


북한은 총책인 金永煥이 사상적 변화를 일으켜 「민족민주혁명당」을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이자
- 지난 87년~92년간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침투하여 「민족민주
혁명당」의 합법연락원으로 활동하다가 복귀했던 공작원을
재차 남파시켜
- 주체사상이 투철한 「민혁당」중앙위원 河永沃을 접촉한 후, 그를
통해 「민족민주혁명당」을 재결속 시키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이번 사건 수사를 통해
- 주사파 세력들이 북한과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형성하고, 충실한
「革命戰士」로 활동해 왔음이 입증되었고
- 특히 80년대 중반이후 학원소요를 주도하며 사회불안을 조성했던
주체사상 맹종집단의 정체가 드러났으며
- 또한98.11.19 강화도 해안에서 우리軍에게 발각되어 도주한 북한
반잠수정과, 98.12.18 여수해안에서 격침된 반잠수정은
「민족민주혁명당」을 지도·검열하기 위해 남파한 간첩을 복귀
시키려고 침투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2. 피의자별 범죄사실[金永煥 (36세)]

金永煥은 서울대 공법학과 재학중 북한 「구국의 소리방송」을 청취하여
북한의 대남적화혁명노선인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 혁명론" (NLPDR)을
체계화한 "강철시리즈"를 제작, 운동권에 전파하여 이른바「주사파의
代父」로 불리워온 자로

87.11 「민족해방노동자당」사건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3년6월을 선고받고 복역중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후

89.7초 「한겨레사회연구소」(92.4 한국사회과학연구소로 흡수)연구원
"김철수"로 위장한 남파간첩 윤택림(56세,현 북한대외연락부 5과장)
에게 포섭되어 노동당에 現地 入黨한 후
- 對北 무전보고 및 북한지령 수신방법, 隱書 작성법 등 통신연락방법
교육과 함께 공작금 900만원과 무전기 등 공작 장비를 건네받는
한편
- "운동권 중 핵심인물들을 포섭하여 수도권과전라·경상권 등 전국
적인 지하조직을 결성하라"는 등의 임무와 「관악산 1호」라는
暗號名을 부여받고


당시 자신이 總責으로 활동하던 「반제청년동맹」의 조직원 河永沃
(36세, 무직)·金京煥(35세,「말」지 기자)·朴 某(법조인) 등을포섭하여
- 노동당에 現地入黨시키고 「관악산 2호」·「관악산 3호」·
「관모봉」이라는 암호명을 부여하는 등 동조세력을 확산시켜
나가던 중


91.2경 북한으로부터 "통신연락을 담당할 대상자를 포섭하여 대동
入北하라"는 지령을 받고
-서울대 1년 후배이자 주체사상으로 확고히 무장된 「반제청년동맹」
조직원 曺裕植(35세, 前「말」지 기자)을 入北對象者로 포섭하여
- 91.5.16 曺裕植과 함께 강화도 건평리 해안에서 북한 호송 공작원
2명과 접선, 반잠수정을 타고 황해도 海州로入北하였습니다.


入北 후 金永煥은 曺裕植 과 함께 공작원 전용시설인 「모란초대소」
에서 14일 동안 체류하면서
-「반제청년동맹」의 조직 및 영향력, 조직원 이력 등 자신의 활동
사항과 국내정세 등을 보고하고
-「祖平統」부위원장 안병수(69세, 본명 안경호)와 연방제통일운동
방향, 「汎民聯」활동 강화방안 등을 토의하는 한편
- 묘향산에 있는 金日成 별장에서 2회에 걸쳐 金日成과 면담하면서
"남조선이 미국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집중 폭로하여 인민들을
각성시켜야 한다"
"혁명을하려면 사상이 중요하다. 남조선 인민 일천만명 정도만
주체사상으로 무장하면 혁명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등의
지도를 받았으며

- 귀환 직전 당시 社會文化部長 이창선(74세) 으로부터 성대한 환송
연과 함께 金日成 훈장까지 수여받은 후"남조선 혁명과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남반부에 당을
건설하고, 주체사상을 확산시키는데 조직 역량을 집중하라"
"침투대상인 국내 재야단체 현황을 면밀히 파악 보고하라"
는 등의 지령을 받고


91.5.30 曺裕植과 함께 북한 공작선으로南浦를 출발, 서해 공해상을
경유하여 사흘 뒤 제주도 서귀포시 인근 해안으로 귀환하였습니다.

그 후 金永煥은 91.8경 북한이 매설해둔 강화군 내가면 외포리 소재
드보크에서 미화 40만불(당시 약 3억원)과 권총 2정·무전기
3대·난수표 등工作金品을 발굴, 간첩활동에 사용하면서

북한 지령에 따라 92.3.16 자신이 장악하고 있던 「반제청년동맹」을
기반으로 북한의 직접 지도를 받는 반국가단체인 「민족민주혁명당」
을 결성, 총책으로 활동하고

「민족민주혁명당」의 조직규모·활동사항과 "친북 통일운동 강화방안"
"정치권 등 국내정세" "92년 大選動向" 등을 수집하여
- 무전기, FAX, 隱書편지, 국내 암약중인 직파간첩(陳運芳) 등을
통하거나
- 하부망 曺裕植(35세)을 해외에 보내 북한공작원과 접선시키는 등의방법으로 對北 報告하였습니다.


북한에서 받은 工作金 40만불은
-「민족민주혁명당」결성 및 선전물 제작 등 조직 관리와 조직원
활동지원비 등으로 2억여원을 사용하고
- 96년 總選시 부산지역에서 출마한 조직원 李 某, 95년 地自體 선거시구청장 등으로 출마한 金 某 등 6명에게 1인당 500~ 1,000만원씩 총
4,500만원을 선거활동 자금으로 지원하였으며
- 나머지는 자신의 개인활동비 등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金永煥으로부터 압수한 「나는 너에게 장미의 화원을 약속하지않았다」
(91.7.5 참빛출판사) 제하 난수해독용 책자를 이용하여
- 91.12~98.6간 하달된 북한지령 72건을 해독한 결과, 대부분이
"수령님 교시대로 창당작업을 잘 하고, 당 조직들을 정예 간부들로
꾸리며, 외곽단체들을 조직하라" (92.1.4)"가능하면 영향력있는 진보적 상층인물을 포섭하라" (93.6.4)
"한총련내 핵심세력 기반을 구축하여 학생 운동권에 대한 지도력을
강화하라" (94.3.4) 등

「민족민주혁명당」창당지침 및 활동방향을 지도하는 내용이었으나
- 95년 이후 金永煥이주체사상을 비판하는 등 이탈 조짐을 보이자
"95년 4월호「말」지 기사 보았음. 기사에 긍·부정 있음. 총책의
진의를 보고바람" (95.6.4)
"한번 먹은 마음 변치말고 혁명의 한 길에서 충성을 다하기 바람"
(98.6.4) 등

변절을 우려하며간첩활동을 계속할 것을 종용하는 지령도 있었습니다.


[曺裕植 (35세)]

曺裕植은 83.3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직후 동아리 선배 등으로부터
의식화 학습을 받으면서 주체사상에 경도되어, 2회에 걸쳐 불온문건
소지 등 國保法 위반으로 복역한 후 89.9「반제청년동맹」에 가입·
활동하던중

91.5 金永煥에게 포섭되어 함께 入北한 후
- 무전기 사용법·난수 조립 및 해독 방법·권총 사격술 등 간첩활동
에 필요한 실무교육을 받고 노동당에 入黨하여 「관철봉」이라는
暗號名을 부여받은 다음
-社會文化部長 이창선으로부터 "金永煥을 도와 대북연락책 역할을
담당하라"는 지령을 받고 金永煥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 해안으로
귀환하였습니다.


귀환 후 曺裕植은 金永煥의 자금관리 및 對北 통신연락책으로 암약
하면서
- 91.8경 북한이강화도에 설치해 둔 드보크에서 무전기·권총·工作
金 등을 발굴하여, 청계산·구룡산 드보크에 묻어두고
- 工作金 40만불은 필요시마다 남대문 일대 암달러상에서 환전하여
金永煥에게 제공하였으며
- 북한방송이 잘 들리는 인천 월미도 등지에서金永煥과 별도로 64회
에 걸쳐 북한 방송지령을 수신하고, 金永煥이 작성한 對北 보고문
을 20여회 무전기로 송신하였습니다.


92.3 ~ 97.10까지 월간「말」誌 기자로 활동하면서, 국내 활동사항을
북한 대남공작조직에 직접 보고하기 위해 해외취재등을 빙자하여 4회
출국한 후
- 93.12 ~ 97.2간 북경·모스크바 현지 北韓大使館과 싱가폴·하노이
시내 공원 등지에서 북한 대외연락부 5과장 윤택림 등을 접선하여,
범민련·전국연합 등의 동향을 보고하고
- 金永煥의 지하당 활동내용과 국내정세등이 수록된 노트북PC와 디스
켓 등을 전달하면서 「汎民聯」보다 포괄적인 통일운동체 결성 등을
지시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河永沃 (36세)]

河永沃은 82.3 서울대 사법학과에 입학, 동기생 金永煥과 함께 의식화
학습을 통해주체사상을 신봉하게 된 후 현재까지 일정한 직업없이
지하조직 활동에만 전념해 온 이른 바 「직업혁명가」로

89.3 金永煥·朴 某·金 某 등과 함께 「반제청년동맹」을 결성, 조직
을 이끌어 오다가
- 90.4경 金永煥이 북한의 지시임을 내세워 조직을자신에게 인계할
것을 요구하자 넘겨주고
- 90.5 金永煥의 지시에 따라 도봉산에서 노동당 現地入黨式을갖고
「관악산 2호」라는 암호명을 부여받았으며


92.3 金永煥·朴 某 등과 함께 「민족민주혁명당」을 결성, 중앙 위원
으로 활동하면서
-97.7경까지 金永煥으로부터 2개월마다 400여만원씩, 총 1억 5천만원
정도의 활동자금을 받아 조직 관리에 사용하였습니다.


그 후 자신과 사상노선상의 대립을 보여오던 金永煥이 97.7경 조직을
해체하려 하자 「民革黨」을 직접 장악한 후 조직관리자금과 정통성
확보를 위해 북한과의 連繫를 모색해 오던 차에

98.10말 「민족민주혁명당」조직검열 및 金永煥 이탈에 따른 새로운
連繫線 물색을 위해 남파된 간첩 원진우(가명)가 "金正日의 직접
지시로 왔다"면서 접근해오자

이후 50여일동안 수시로 만나면서
- 자신의 하부망 沈載春 (29세, 대학 강사)의 강서구 등촌 3동 소재
아파트 및 관악구 봉천6동에 있는 고시원을 은신처로 물색·지원
하고
- 남파간첩이 신분 위장에 활용하도록 강서구 화곡6동 사무소에서
남파간첩이 소지한위조 주민등록증상의 名義人인 원진우의 주민
등록 등·초본을 발급받아 제공하였습니다.


또 간첩 원진우로부터 金正日이 직접 하사하였다는 「광명성」이라는
새로운 暗號名을 부여받고, 「民革黨」총책으로 추인받은 후
- 무전기 사용법, 인터넷을이용한 지령 송수신 방법 등 간첩교육과
함께 무전기·난수표·은서용지 등을 받아 沈載春과 함께 관악산
등산로 인근 드보크에 매몰하였고
- 工作金으로 2회에 걸쳐 한화 500만원과 일화 50만엔(한화 500만원
상당)을 받아 하부망 沈載春과 함께 단파라디오 구입 등 조직활동
자금으로 사용하였으며
- 원진우 복귀시 "김정일에게 바치는 충성의 편지" "민족민주 혁명당
현황" 등이 수록된 디스켓을 전달하였습니다.


河永沃은 간첩 원진우의 入北 제의를 수락하고
- 98.11.19 강화도 화도면 내리인근 해안의 接線 지점까지 갔으나,
접근중이던 북한 공작선이 우리 군에 발각되어 도주함으로써 入北
에 실패하고
- 98.12.17 원진우 복귀시 재차 入北하려다 항해기간이 4일 이상
걸리는데 따른 위험부담과 개인적인 사정(사법시험 준비)을이유로 다음 기회에 入北키로 하고
- 같은 날 沈載春과 함께 원진우를 전남 여수시 돌산읍 인근 해안
접선복귀지점까지 안내하였으며
- 당시 河永沃은 침투한 호송 공작원들에게 "너무 수고가 많습니다.
원선생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라며 일일이악수를 나누는 대담
성을 보였습니다.


河永沃은 12.18 남파간첩이 승선한 반잠수정이 우리 軍에 의해 격침된
후에도
- 인터넷 메일을 활용, 북한과 총 11회에 걸쳐 간첩선 격침에 따른
대응책 및 차후 密入北 방안 등을 논의했으며
- 인터넷사용시 타인이 내용을 해독할 수 없도록 暗號化하여 압축
화일로 전송하였고, 逆追跡을 피하기 위해 시내 여러 곳의 PC방을
이용하는 치밀함을 보였습니다.


[沈載春 (29세)]

沈載春은 88.3 서울대 체육교육학과 입학 후 의식화교육을 받고「동아리연합회」회장 등을 거쳐 91.5 「반제청년동맹」에 가입,
활동하던 중

97.6부터 반국가단체 「민족민주혁명당」 "학생운동사업부 서울대
담당"으로 활동해 오다가

98.9경「민족민주혁명당」총책 河永沃과 처음 만나 상명하복 관계를유지하면서
- 98.11초 河永沃의 지시를 받고 98.11 중순경까지 약 10여일간 강서
구 등촌3동 소재 자신의 집을 남파간첩 원진우의 隱身處로 제공
하였으며
- 11.20 새벽 강화도에서 북한공작선 접선에 실패한 河永沃의 연락을
받고 자신의엑셀승용차를 몰고가 河永沃과 원진우를 서울로 도피
토록 지원하는가 하면
- 98.11.28 자신의 승용차로 원진우를 안내, 접선복귀지점인 여수시
돌산읍 부근을 사전 정찰토록 하였고, 복귀일인 12.17에도 그 곳
까지 원진우를 태워다 주었습니다.또한 12.12~12.15간 서울 신림9동 사무소와 봉천7동 사무소 등 2곳
에서 국내 실존인물 원진우 명의 주민등록 등·초본과 호적등본을
발급받아 간첩 원진우에게 제공하였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간첩 원진우와 상부선인 河永沃으로부터 간첩활동을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아 노동당에 現地入黨하여 「광명성 91호」라는
暗號名을 부여받고
- 전주 소재 여관 등지에서 무전기 사용법, 난수조립 방법, 인터넷을
통한 송수신 방법과 신분노출시 임진강 도강 또는 해외 北韓大使館
으로 탈출하는 요령 등을교육받은 후
- 현재까지 수차례에 걸쳐 무전 및 인터넷 통신을 통해 북한과 통신
연락해 왔으며
- 이번 수사 과정에서 관악산 등산로 인근 드보크에 은닉해 두었던
무전기·인명살상용 독침·난수표 등 工作物品이 압수되었습니다.


[金京煥 (35세)]

金京煥은 한국외국어대 용인캠퍼스 「民民鬪」위원장 등을 역임한후
3차에 걸쳐 위장취업하여 노동자 의식화 활동을 하다가 94.5 부터
월간「말」誌 기자로 재직중인 자로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침투하여 서울 강남에서 「삿떼리아」라는말레이시아식 음식점을 운영하며 암약중이던 간첩 陳運芳을 89.9
중순 대학후배의 소개로 알게된 후
- 90.5경 "함께 통일사업을 해보자"며 남파간첩 신분을 드러낸
陳運芳에게 포섭되어
- 金永煥과 陳運芳간의 중간 연락책으로 암약하면서, 91.8경 원주치악산에서 金永煥의 제의로 노동당 現地 入黨式을 갖고
「관모봉」이라는 암호명을 부여받았습니다.


98.10말 陳運芳이 원진우로 위장하여 재차 침투하자
- 남파간첩 원진우를 河永沃과 접선하도록 주선하고
- 그후 원진우를 여러 차례 접촉하여그간의 활동내용과 국내정세
등을 보고한 혐의로 계속 수사중입니다.


3.「民族民主革命黨」의 실체

「민족민주혁명당」(약칭:민혁당)은 金永煥이 북한 지령에 따라 자생적
주사파 지하조직인 「반제청년동맹」의 核心人物들을 규합하여 결성한북한 노동당의 남한내 地下 前衛黨으로

총책인 金永煥은
- 89.3.3 河永沃의 주도로 주사파 핵심세력이 모여 "김일성주의청년
혁명 조직"임을 표방하며 결성한 「반제청년동맹」을 함께 이끌어
오다가
- 89.7 남파간첩 윤택림에게 포섭되어노동당에 입당한 뒤 조직원들
에게 "노동당 現地入黨權을 위임받은 사실"을 내세워 「반제청년
동맹」을 장악하고
- 이어 91.5 金永煥이 밀입북, 당시 사회문화부장 이창선으로부터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성취하기 위해 남반부에 당을 건설하라"는 지령을 받고 돌아와
- 92.3.16 「반제청년동맹」의 핵심세력을 주축으로 「민족민주
혁명당」을 결성하였습니다.


「민족민주혁명당」은
- 黨 강령 (3개조) 및 당헌 (6개조)을 통해 "김일성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地下革命黨"임을밝히고 있고
- 당면 투쟁목표로 남한내부에 革命情勢가 조성되어 결정적 시기가
도래하면 북한의 지원을 받아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을
완수할 것을 내세우고 있으며
- 이를 위해 혁명의 主力軍인 노동자·농민·청년학생을 주체사상
으로무장시켜 반미자주화·반독재민주화투쟁을 강화해 나갈 것을
선동하여 왔습니다.


< 民革黨의 투쟁목표 및 성격>


·당면 목표 : 민족자주권을 쟁취하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며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
·혁명 성격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
·혁명 동력 : 노동자·농민·청년학생·인텔리·소자본가·도시
소시민
·지도 이념 : 김일성 주체사상
·투쟁 노선 : 반미자주화·반독재민주화
·당의 성격 : 노동자·농민·청년학생의 지하 전위당「민혁당」의 조직체계는
- 당 지도부인 중앙위원회 밑에 道黨 성격의 경기남부·영남·전북
위원회와 부문별 사업지도부를 두고
- 지역위원회 산하에는 부산·울산·성남 등 전국의 주요 도시별
위원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 이번 수사과정에서 98.7부산지방경찰청에서 수사 처리한
「영남위원회」가 「民革黨」의 하부조직으로 밝혀졌습니다.


조직의 비밀 유지를 위해
- 각급 조직을 동문회·사업소·영업소·대리점 등으로 위장하여
점조직 형태로 운영해 왔으며
- 黨員들은 물색단계에서부터철저한 신원조사와 사상심사를 거쳐
변절 우려가 없는 "주체사상의 정예분자"들로 구성하였습니다.


또한 「민족민주혁명당」은 조직 결성 이후
- 金永煥이 받은 40만불 등 5회에 걸쳐 북한에서 유입된 공작자금
총 3억2천여만원의 풍부한활동자금을 바탕으로
- 조직원들을 학원·노동·언론·재야·법조계 등 사회 각 분야에
침투시켜 노사분규 등 부문별 투쟁을 배후 조종하고
- 대중투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학원·재야 등 주요 분야에 黨
外廓團體를 결성하여연방제통일·반미·반정부투쟁을 확산시키는
한편
- 조직원들과 협조자들을 제도권에 진입시켜 합법 투쟁의 橋頭堡를
확보하기 위해 96년 총선 및 95년 地自體 선거시 선거자금으로
4,500여만원을 지원하였고
- 機關紙 「빛」등 불온 간행물을 통해북한체제의 우월성과 김정일
의 위대성을 부각·전파하는데 주력해 왔습니다.


4. 남파간첩 원진우의 정체

98.12.18 반잠수정으로 復歸 중 우리 軍에 의해 사살된 간첩 원진우는
북한 노동당 對外連絡部(부장:강주일) 소속 공작원으로
- 87.4 ~ 92.8간 말레이시아인 陳運芳으로 위장, 1차 침투하여
합법활동 토대를 마련하고 「민족민주혁명당」의 합법연락원으로
암약하다가 復歸하였으며
- 98.10 하순경 「민족민주혁명당」에 대한 조직검열 및 새로운 연계
망 확보를 위해 원진우로 위장하여 재차침투, 河永沃·沈載春 등
을 포섭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원진우에 대해서는 95.1이후 여러 경로를 통해 "동남아인으로 위장한
夫婦工作組가 80년대 중반 국내에서 암약하다가 92년 복귀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이들의 행적을 추적해 오던 중
-金永煥 심사과정에서 자신이 對北連絡責으로 이용한 하부망 金京煥
이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한 남파간첩에게 포섭되었다는 진술을
받아내고


여러 정황을 단서로 容疑者의 신원을 확인한 결과
- 87.4 남파간첩 陳運芳(44세)이 처 鍾玉淸(38세)과함께
말레이시아인으로 國籍을 위장, 입국하여 서울에서 「삿떼리아」
「마코 인터내셔널」이라는 말레이시아식 음식점을 운영하는 등
合法活動 토대를 마련하고
- 90.5 「삿떼리아」종업원 高 某의 소개를 받아 한국외국어대
운동권 출신金京煥을 포섭한 후, 그를 통해 金永煥의 대북보고
문건들을 받아 북한에 보내는 등 암약하다가
- 92.8.26 「남한조선노동당」간첩사건 수사가 시작되자 신분 노출을
우려, 가재도구도 정리하지 못한 채 황급히 출국한 사실을
확인하였습니다.이번 수사 과정에서 陳運芳 거주지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사진 등
유류품을 확보, 신원을 추적하던 중
- 陳運芳이 河永沃 등을 포섭한 간첩 원진우와 인상착의가 비슷한 점에
착안, 陳運芳의 사진을 河永沃에게 제시하여 "남파간첩 원진우"라는
진술을받아냈고
- 두 사람의 사진을 전문가에게 감정을 의뢰하여 同一人임을
확인하였습니다.


한편 陳運芳이 마지막으로 거주했던 종로구 동숭동 소재 전세집 주인
등을 대상으로 그의 행적을 조사한 바
- 陳運芳 부부는 스스로 "말레이시아 華僑지만사실은 조선족
출신"이라면서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하였고
- 92.8.26 "주택구입 자금을 가지러 中國에 다녀오겠다"며 전세금
3,700만원 등 8,000만원 상당의 재산과 가재도구들을 그대로 둔
채 황급히 출국한 다음
- 92.9하순 전세집 주인에게편지를 보내 "내가 남겨둔 007 가방·
핸드백·전화수첩·사진·FAX서류 등을 DHL편으로 홍콩으로
보내달라"고 하여 받은 후
- 국제전화로 "교통사고를 당해 아내와 딸은 죽고 나는 다리를
많이 다쳐 한국에 갈 수 없다"고 말한 후 소식이두절되었습니다.


이같은 사실은 92.10 북한이 金永煥에게 내려보낸 지령문 중
- "본부 연락원 철수시켰음. 현지 관계자들에게는 해외여행중 교통
사고로 중상을 당해 입국하지 못하는 것으로 위장했음"이라는
내용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고


99.9.4 검거하여 수사중인 金京煥(35세,「말」지 기자)도 간첩
원진우를 "陳運芳"이라고 진술하고 있어, 同一人임이
명백해졌습니다.


III. 사건의 특징


첫째, 국내에서 自生的으로 태동한 주사파 조직이 북한에 포섭되어
북한 노동당의 직접지령을 받는 革命前衛組織으로 탈바꿈한 최초의
사례입니다.

둘째, 북한이 80년대 주사파 胎動期부터 주사파 핵심인물들을 포섭
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여왔음이 처음으로 확인되었습니다.
- 입북 당시 학생신분이던 주사파 핵심인물 金永煥을 金日成이두
차례나 면담하고, 工作資金으로 40만불이라는 거액을 제공한
사실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셋째, 북한이 그 동안 당장 이용하기 쉬운 기성세대를 포섭해 오던
것과는 달리, 잠재적 성장가능성을 지닌 엘리트 학생층을 포섭,장기적으로 언론·법조인 등 輿論指導層으로 육성하려 한 점입니다.

넷째, 필리핀인 위장간첩 「깐수」에 이어 북한의 夫婦 工作員이
國籍을 말레이시아인으로 위장한 후 국내에 잠입, 장기간 암약하
면서 공작활동을 벌이는 대담성을 보였다는 점입니다.다섯째, 「民革黨」은 북한의 지하당 조직전술에 따라 철저히 점조직
으로 운영, 총책이나 조직책이 아니면 규모를 알 수 없고 상명하복이
엄격한 집단이라는 점입니다.
- 沈載春은 98.11.20 02:00경 간첩 원진우와 밀입북 하려다 실패한
河永沃이강화도로 데리러 오라고 하자, 잠을 자다가 이유도 묻지
않은채 응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여섯째, 최첨단 인터넷 통신망을 對北連絡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른 바
「사이버 간첩」이 최초로 확인되었습니다.
- 이번 사건 수사를 통해 고첩망들이기존의 무전기에 의한 A-1
간첩통신이나 隱書를 이용한 대북연락 외에도 인터넷이라는
사이버공간까지 활용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IV. 관련자 처리 및 후속 수사계획


이번사건 수사결과
- 피의자 金永煥·曺裕植은 과거의 잘못을깊이 뉘우치고 이미 북한
과의 관계를 단절하였으며 조사과정에서도 "북한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앞장서겠다"고 다짐하면서 수사에 자진 협조한 점을 참작,
公訴保留 의견으로 송치하였고
- 河永沃·沈載春은 검거직전까지 지하당 활동을 계속하면서남파
간첩을 비호하는 등 북한과 연계활동을 계속해 왔으므로 起訴意見
으로 송치하였습니다.


한편 金京煥은 현재 조사 중이므로 수사가 끝나는대로 추가 송치할
예정입니다.

國情院은 이번 수사과정에서 실체가 드러난 「민족민주혁명당」구성원 등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 罪過를 뉘우치고 자수해 온다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최대한
관용을 베풀 방침이나
- 계속해서 反國家活動에 가담하려는 자는 유관기관과 협조하여 엄정
수사해 나갈 계획입니다.


V. 맺 음 말


이번사건은 북한이 아직도 대남 적화야욕을 버리지 않은 채 우리
내부에 地下黨을 구축하는데 혈안이 되어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으로


국정원은 사상적 오류에 빠진 일부 엘리트들이 이미 폐기처분된 공산
주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는 현실을 우려하면서- 간첩을 남파하여 우리나라를 혼란에 빠트리려는 북한의 각종
對南挑發 책동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임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입니다.


앞으로도 관계기관과 긴밀히 협조하여 국내 암약중인 고정간첩망과
자유민주체제를 파괴하려는 불순세력을끝까지 추적 엄단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지구촌의 유일한 분단 국가로 남아있는 우리의
安保現實을 직시하여 간첩 신고에 힘써 주실것을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이 자료는 국정홍보처의 보도자료를 전재하여 제공함을 알려드립니다.”

공공누리가 부착되지 않은 자료는 담당자와 협의한 후에 사용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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