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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위를 맞으며

2020.09.29 한양명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한양명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한양명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교수

◆ 신라 여성의 축제였던 한가위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따르면, 신라 유리왕 때에 육부(六部)의 여성들이 편을 갈라 칠월 열엿새부터 날마다 길쌈을 했다.

한 달 뒤인 팔월 보름에 그 결과로 승패를 정했는데, 진 편이 음식을 장만하여 이긴 편에 사례하고 다 함께 노래와 춤, 다양한 놀이를 즐겼으니 이를 가배(嘉俳), 즉 ‘한가위’라고 했다.

역사상 최초의 여성축제라고 할 수 있는 이 축제에서 신라의 여성들은, 일상적 삶에 얽매인 생활인이 아니라 가무와 놀이를 즐기는 축제인(Homo Festivus)이자 유희인(Homo Ludens)들이었다.

◆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한가위는 예로부터 이 땅의 민중들이 꿈꾸던 유토피아의 현실적 모습이었다.

“오월 농부 팔월 신선”이란 말처럼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벌인 고된 일판을 마감하고 선선해진 날씨 속에서 여유롭게 노동의 결실을 거두어들이기 시작하는 때가 팔월이었다.

그 중에서도 한가위는 햅쌀을 비롯한 수확물로 차례를 지내며 조상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가족과 이웃이 정을 나누는 축제의 날이었다.

비록 일상에서는 먹고 살기가 힘들더라도 이 날만큼은 의복을 단정히 차려입고 평시에 먹을 수 없는 절식(節食)을 맛보는 한편, 여러 가지 놀이를 즐기며 ‘사람다운 사람’으로 지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민중들은 매일 매일이 한가위 같기를 꿈꾸며 곤핍한 일상을 견뎌내곤 했다.

한가위 전통예술공연 달빛 원무놀이 ‘강강술래’.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가위 전통예술공연 달빛 원무놀이 ‘강강술래’.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한가위 하면 떠오르는 민속놀이로 여성들의 집단적 가무놀이인 ‘강강술래’와 기호지역 등 중부지방의 농민들이 벌인 ‘소놀이’, 그리고 가야문화권에 속하는 지역에서 전승된 ‘소싸움’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강강술래와 소놀이를 살펴보기로 하자.

◆ 보름달 아래서 펼쳐진 강강술래

한가위는 어디 하나 부족함 없이 충만한 보름달이 뜨는 날이라는 점에서 여성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에 있었다.

앞서 살펴본 유리왕 때의 여성축제가 칠월 보름 다음날부터 팔월 보름에 이르기까지 벌어졌다는 것도 여성과 보름달의 깊은 관계를 짐작케 한다.

전통사회에서 ‘달’은 곧 여성을 상징하는 천체였고, 그 중에서도 보름달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서 여성의 생명창조력을 표상하는 존재였다.

한가위뿐만 아니라 정월 대보름의 밤에도 여성들이 월월이청청과 놋다리밟기 같은 집단적 가무놀이를 펼치며 공동체의 풍요와 안녕을 축원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강강술래를 비롯한 보름놀이는, 가부장적 사회구조의 억압 속에서 울안에 갇혀 있던 여성들이 집밖으로 나와 맘껏 신명을 풀어내던 축제적 해방구였다.

여성들은 정숙하고 조신하기를 강제하는 문화의 감옥에서 벗어나, 육체성의 표출에 바탕을 둔 놀이들을 즐김으로써 마음껏 신명을 풀어낼 수 있었다.

◆ 순조로운 생산을 기약하는 소놀이

강강술래가 여성의 놀이라면 소놀이는 남성이 주도하는 놀이다.

소놀이의 내용은 이러하다. 마을의 농민들이 가장한 소를 앞세우고 풍물패와 함께 집집을 돌아다니는데, 주로 지주 부농의 집을 위주로 하게 마련이다.

일행이 목표로 삼은 집에 도착하면, 소는 “음메음메!”하면서 구슬프게 울고 소몰이꾼은 “배고픈 소가 왔으니 먹을 걸 좀 주시요!”라고 소리친다.

그러면 집주인이 나와 여러 가지 음식을 푸짐하게 차리고 성의껏 돈과 곡식을 내놓는다. 놀이패는 차려진 음식을 나누어먹고 한바탕 놀이판을 벌인 뒤에 다른 집으로 옮겨간다.

이 놀이를 주도한 이는 주로 부농가에 고용된 머슴이나 지주의 토지를 빌려 농사짓는 소작인, 소유한 토지가 소규모여서 다른 일까지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초봄부터 내내 논밭을 지켜온 일꾼들이고, 소는 일꾼과 고락을 함께한 동반자이자 노동력의 원천 가운데 하나였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 놀이에 등장하는 소의 배고픔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이 된다. 소의 배고픔은 곧 일꾼의 배고픔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으로서, 힘든 농사를 감당하느라 모든 것을 쏟아 부은 데서 시작된 것이다.

따라서 이 놀이는 생산관계의 하위에 있는 농민들이 상위에 있는 지주 부농에게 노동 때문에 결핍된 것에 대한 충족을 요구하고, 지주 부농은 기꺼이 그 요구에 응함으로써 뒷날의 순조로운 농업생산을 기약하는 상징적 교환과 화합의 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 바람직한 한가위 보내기

한가위에 민중들이 즐겼던 강강술래와 소놀이는 ‘바람직한 한가위 보내기’의 방향을 암시한다. 일상의 차별적 구조 속에서, 하부 또는 주변부에 머물던 이들이 잠시나마 신명을 풀어내고 사람대접을 받던 축제의 날이 바로 한가위였다.

걸인에게도 먹을 것과 옷가지를 나누어주고, 고통 받는 이웃이 있으면 일일이 챙겨 살아 있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던 날이 한가위였다. 그렇기에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회자될 수 있었다.

코로나19라는 국가적 재난이 찾아왔고, 수많은 이웃의 삶이 위기에 처해 있다. 한가위임에도, 한가위이기에 더 힘겨워하는 이웃은 없는지 다시 한 번 주변을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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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출처=정책브리핑 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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