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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치 혀로 세상을 주무르다

정영선의 ‘이야기가 힘이다’ ⑥

2010.07.08 정영선 (주)브랜드스토리 기획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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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줄의 글로 왕의 마음을 사로잡다

“정말 불쾌합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격 아닙니까?”
비단옷을 입은 남자들이 분기탱천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다. 이들은 진나라 귀족들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우리 모두 쫓겨나고 객경(客卿)들이 우리 자리를 차지할 거요.”

‘난세에 영웅 난다’는 속담처럼 각 나라간 경쟁이 치열하던 춘추전국시대에는 유난히도 인재가 많이 나타났다.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에서부터 소진, 장의, 순우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재들이 소위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를 구가했다.

이들은 풍부한 학식과 뛰어난 안목을 지닌 인재들로서 흔히 ‘세객(說客)’이라 불렸다.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뛰어난 언변을 가진 사람’을 뜻하지만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자면 정치, 외교, 경제 각 분야에서 왕에게 조언을 해 주는 ‘컨설턴트’에 해당한다.

세객들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객(客)’이라는 단어에 나타나 있듯이 끊임없이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돈다는 점이다. 이들은 태어난 나라에 얽매이지 않고 이 나라 저 나라를 떠돌다가 자신을 인정하는 군주가 있으면 그를 섬겼다. 그들을 ‘객경(客卿)’이라 불렀다.

진나라 귀족들은 곧 객경을 내치라는 내용의 상소를 올렸다. 왕은 좀 난처해졌다. 절대군주이기는 하나 귀족들이 연합하여 역모를 도모한다면 큰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외국인인 객경들이 국가의 비밀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이러다 만약 객경들이 적국으로 넘어가면 첩자노릇을 할 것이 뻔하다. 들토끼를 총애하다가 집토끼를 잃을 수도 있으니.

그런데 그날 밤, 왕에게 새로운 상소 하나가 올라 왔다. 객경 이사(李斯)의 상소문이었다. 그는 초나라 출신이었지만 진나라 왕을 도와 부국강병의 초석을 놓은 뛰어난 세객이었다. 이사의 상소문은 간명했다. 진왕의 가슴에 긴 파문이 퍼졌다.

“태산은 한줌의 흙이라도 사양하지 않습니다.
하여 큰 산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황하는 조그만 물줄기라도 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다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군왕도 무릇 백성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군왕의 덕을 천하에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진왕은 귀족들의 상소를 거부했고 객경 우대정책을 펼쳤다. 이 소문이 퍼지자 중국 각지에서 뛰어난 세객들이 진나라로 몰려들었다. 마침내 진나라는 천하통일의 위업을 이룰 수 있었다.

이사는 진왕에게 ‘겁먹고 쫀쫀하게 굴지 말라’는 직언을 하지 않았다. 진왕을 ‘태산’과 ‘황하’에 비유하고, 스스로를 ‘백성’이라 칭하면서 상대의 경계심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단 6줄의 글로 절대군주의 마음을 움직인 이사의 힘. 그것이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세 치 혀로 천하를 누비다

물론 이러한 세객을 일러 ‘세치 혀로 국정을 농간하는 간신배’라고 혹평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부인할 수 없는 것은 이 세객들이 뛰어난 재치와 입담으로 국가를 위기에서 건진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제나라의 객경 순우곤이다.

당시 최고의 강대국은 초나라였다. 순우곤은 제나라 위왕에게 제나라가 초나라와 가깝게 지내면 다른 나라들이 감히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조언하고는 따오기 한 마리를 가지고 초나라로 떠났다.

그런데 웬일일까? 초나라 국경을 통과한 그는 갑자기 새장을 열어 따오기를 날려 버렸다. 그리고 빈 새장을 든 채 터덜터덜 초나라 황궁으로 갔다. 빈 새장을 본 초왕은 당연히 불쾌해했다.

“제나라는 정말 경우를 모르는구나! 어찌 빈 새장을 보낸단 말인가?”

그러자 순우곤은 짐짓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 왕께서는 분명 좋은 종자의 따오기를 주셨사옵니다. 그런데 초나라로 오는 길에 보니 따오기가 너무 목이 말라 고통스러워했사옵니다. 그래서 잠시 물을 주려고 새장을 열었는데 따오기가 그만 날아가 버리고 말았사옵니다. 참으로 황망하여, 자결을 하려 했사옵니다. 하오나, 그리 되면 제나라 왕이 너무 옹졸하여 새 한 마리 때문에 이웃 나라 신하를 죽게 했다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두려웠사옵니다. 망극하오나, 비슷하게 생긴 따오기를 잡아서 올릴까 하는 생각도 했사옵니다. 하오나 만약 그 일이 탄로 나면 초왕께서는 우리 제왕을 오해하셔서 양국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사옵니다. 헌데 소문을 들어 보니 초왕께서 몹시 명민하고 어지신 분이라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다고 하기에 이렇게 용기를 내어 사죄하고자 왔사옵니다. 새장은 비었사오나 초왕에 대한 존경심이 가득 차 있음을 보아 주시옵소서.”

순우곤의 장광설이 끝나자 초왕은 입이 함지박 만하게 벌어졌다.

“대단하구나! 경 같은 사람이 충성을 바치는 것을 보면 제나라 왕 역시 유능하고 어진 군왕인 듯하다. 가까이 지내고 싶구나.”
초왕은 순우곤에게 후한 상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순우곤은 기대 이상의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제나라로 금의환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세객들이 가장 난감한 때가 바로 약소국의 왕이 무리한 전쟁을 도모할 때였다.

순우곤도 그런 상황에 처했다. 초나라와의 외교성과도 좋고 이래저래 사기가 오른 제나라 위왕이 돌연 만만한 이웃인 위나라를 치겠다고 나선 것이다.

고민에 빠졌다. 제나라가 위나라와 싸워 이길 확률은 반반이었다. 더 큰 문제는 등 뒤에 도사리고 있는 강대국 조나라와 초나라였다. 만약 제나라가 위나라와 전쟁을 벌이면, 조나라와 초나라는 그 틈을 노려 제나라와 위나라를 한꺼번에 집어삼킬 수 있다. 헌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제왕에게 고했다가는 목숨이 위태롭다.

말이 좋아 세객이고 객경이지, 사실 이들은 그 지역에 아무런 연고가 없다. 약자들이다. 그들이 믿을 것은 오로지 군왕의 신뢰와 사랑 뿐.

만약 객경이 군주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직언을 한다면 즉결처형도 각오해야 했다. 섣불리 전쟁을 종용했다가 패전하면 군주는 아무 연고 없는 세객을 희생양으로 삼았다. 그렇다고 ‘깜도 안 되는 처지에 왜 전쟁 같은 걸 하려고 하냐’고 한마디 했다가는 그대로 목이 날아갈 터였다.

그래서 순우곤은 이렇게 간했다.
“옛날에 아주 발이 빠른 명견이 한 마리 있었습니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토끼를 뒤쫓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 토끼도 보통 토끼가 아니라서 빠르기가 화살 같았습니다. 도무지 우열을 가릴 수 없었지요. 결국 개와 토끼는 십리나 되는 산기슭을 세 바퀴나 돈 다음에 그만 지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그랬더니 아까부터 이걸 보고 있던 농부가 개와 토끼를 다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개와 토끼는 제나라와 위나라를, 농부는 조나라와 초나라를 상징한다. 사실 개와 토끼는 대단한 동물이 아니다. 제나라와 위나라 상황이 그렇다는 의미다.

그러나 순우곤은 여기에 ‘발이 빠른’이라는 단서를 붙였다. 제나라와 위나라가 대단한 강대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견할 만한 국력을 갖춘 강소국은 된다고 치켜세워 제나라 왕의 자존심을 지켜 준 것이다.

결국 왕은 순우곤의 조언을 받아들여 전쟁을 포기했고 순우곤은 더 큰 신망을 얻게 되었다.냉엄한 현실을 ‘한 겹 덧씌워’ 상대의 반감을 무력화시키는 것, 이것 역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21세기의 위대한 세객들

뛰어난 영웅 곁에는 그보다 더 뛰어난 세객들이 있었다. 세객들은 영웅의 선택을 받고자 애쓰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자기와 마음이 맞는 영웅을 스스로 고르는 자유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세객들은 부평초처럼 떠돌면서도 존경을 받았다.

이들은 모두 말을 잘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지만 각자 색깔은 달랐다. 공자는 ‘성선설’을 믿으며 ‘인의 정치’를 주장했고 순자의 영향을 받은 한비자는 ‘성악설’을 내세우며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제갈량은 뛰어난 병법으로 유비를 삼고초려하게 만들었고, 순우곤은 촌철살인의 비유법으로 제왕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이들이 위대한 세객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의 감성을 움직이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고, 정서의 결을 헤아려,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 내는 스토리텔링의 힘이었다.

그렇다면 21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세객들은 누구일까? ‘드림소사이어티’를 예견한 롤프 옌센, 우뇌의 힘을 강조한 다니엘 핑크, 수평형 마케팅을 제안한 필립 코틀러…. 즉, 상상력과 창조력을 기반으로 인간의 감성을 움직이는 마케팅 구루들이 아닐까?

※ 정영선은?

정영선은 ‘스토리텔링 마케팅’ 전문가이다. 드라마 작가를 거쳐 현재 (주)브랜드스토리의 기획이사를 맡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시장 살리기 사업인 ‘문전성시 프로젝트’ 스토리텔링 사업과, 문화재청의 ‘경복궁 스토리텔링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각 지자체와 정부기관에서 스토리텔링 컨설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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