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를 4절까지 부를 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니 애국가가 4절까지 있다는 걸 아는 사람조차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의 고교 동문은 예외일 것이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유별났다. 조회 시간에 애국가를 4절까지 다 불렀다. 그뿐이 아니다. 교가도 꼭 3절까지 불렀다.
궁금해서 모교에 전화를 걸어봤다. 이 전통은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왠지 뿌듯하긴 했다. 나라와 학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4절까지 3절까지 다 부른다고 커지는 건 아니겠지만, 인공지능이 나오는 이 현대에 그런 아날로그적 전통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나름 소중해 보였다. 교가 1절은 인왕산 정기로 시작한다. 모교가 강남으로 옮겨갔으니 지리적으로는 멀어졌지만, 아이들은 여전히 인왕의 정기를 노래한다.
모교의 교훈은 단순하고 평범했다. ‘깨끗하자. 부지런하자. 책임지키자’였다. 광복 이듬해에 개교한 학교치고는 한글로, 그것도 입말로 만든 독특한 교훈이다. 그 시절 단골 교훈인 ‘성실’ ‘근면’ ‘협동’ ‘정직’ 같은 것보다는 구체적이고 쉬워서, 나는 모교의 교훈을 지키며 살지는 못했어도 이 교훈이 자랑스럽다.
이상 여기까진 아재의 정서로 말한 것이다. 내 모교의 교가와 교훈이 싫다는 게 결코 아니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각급 학교에는 교가, 교훈, 교목(校木), 교표(校標) 같은 전통이 있다. 교복은 시대 흐름에 따라 곡절이 많았지만 교가나 교훈은 설립자의 건학 이념이다 보니 거의 바뀌지 않는다.
최근의 어느 조사를 보니 서울의 고교 교훈에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성실-창조-바름-배움-협동-근면의 순이었다. 여학교의 교훈에는 사랑, 순결, 슬기 같은 게 많다. 심지어 부덕(婦德)도 있다. 창의와 개성과 성평등이 존중되고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이 시대정서와는 옷이 맞지 않는 듯한 추상적이고 획일적인 가치를 수십 년째 주입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급훈은 좀 다르다. 교훈보다 자유롭다. 학생들이 직접 정하는 곳이 많으니 매 학년 매 교실마다 바뀔 수 있다. 교훈이 전통적 가치를 강조하는 거라면 급훈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최근 한 신문에서 급훈을 조사한 기사를 읽었다. ‘진화하는 급훈, 화석이 된 교훈’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이참에 인터넷을 뒤져봤다. 재미있고 톡톡 튀는 급훈들이 많이 소개돼 있다.
노력을 강조한 것들이 가장 많았다.
‘스스로 깨면 병아리, 남이 깨면 후라이’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공부하면 꿈을 이룬다’ ‘칠판 보기를 송중기 보듯’ ‘급훈 보냐? 칠판 봐라’ ‘쟤 깨워라’ ‘美쳐보자’ ‘엄마가 보고 있다’ ‘30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 직업이 바뀐다’ ‘노력은 적분하고 절망은 미분하자’ ‘내가 꿈을 이루면 나는 다른 사람의 꿈이 된다’ 어디선가 한 번쯤 본 듯한 경구들이다.
대입시의 중압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급훈도 눈에 많이 띄었다.
‘합격자 명단에 귀하의 이름이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 ‘얘들아, 2호선을 타자’ ‘니 성적에 잠이 오냐?’
좀 지나친 듯한 급훈도 있지만, 입시경쟁의 세태를 반영하는 매우 현실적인 카피들이다.
교가는 어떤가. 교가에는 건학 이념이나 교육 목표 등이 담겨 있다. 그래서 교훈처럼 바꾸기 어렵다. 하지만 대체로 요즘 학생들의 감성이나 시대적 가치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 많다. 어느 교사가 조사한 걸 보니 서울의 초등학교 교가 75%가 북한산 관악산 같은 산 이름으로 시작했다. 가장 자주 등장한 지리적 명칭은 한강이었다. 아마도 산과 강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교가는 거의 없을 것이니 참으로 자연의 정기를 받기 좋아하는 민족이다.
교가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대한의 일꾼’ ‘나라의 기둥’ ‘민족의 등불’ ‘멸사봉공’ ‘미래의 희망’ 같은 것들이다. 가장 빈도가 높은 단어는 ‘기상’ ‘사명’ ‘이상’ ‘꿈’ 같은 추상명사들이다. 대체로 국가주의적, 민족주의적 색깔이다. 현재의 행복보다는 미래의 입신양명을 실현하기 위한 인내와 노력, 충(忠)과 효(孝)의 유교적 가치를 강조하는 구절들이 많다. 노래는 대다수 행진곡 풍에 고음이 많은 가곡 형태다. 그래서 신이 나게 부르거나 입으로 흥얼거리기 어렵다.
여러 학교들이 교가를 개사하거나 바꾸려고 하는데 총동문회의 반발 때문에 쉽지 않다고 한다. 최근에 개교한 학교의 교가들은 좀 다르다. 현실적 가치관, 개성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 공동체적 삶의 태도를 강조하는 재미있고 신나는 교가들이 생겨나고 있다. 중간에 랩이나 영어를 넣기도 한다. 아예 교가를 채택하지 않은 학교도 있다고 한다.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가가 뉴스를 탄 적이 있다. 제목은 ‘내 길을 갈 거야’다. 아이들이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가 만드는 학교 모두가 주인공인 교실/일등도 없고 꼴찌도 없고/잘난 놈도 없고 못난 놈도 없고/너 때문에 학교 다닐 맛이 나고/너 때문에 뭐든지 맛있어(중략)/나 아직 어리지만 모르는 것도 많지만/날 믿어주는 사람이 어딘가 있을 거야/조금만 기다려주면 나도 할 수 있어/내가 꿈꾸는 대로 살 수 있어/나는 내 삶의 주인공, 내 길을 갈 거야/말리지 마, 믿어줘 내가 가는 길을.”
마치 “됐어, 이젠 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외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 같다. 아이들이 이런 내용의 교가를 랩을 섞어서 춤을 추며 부르는 걸 상상만 해도 좋다. 이런 신나는 교가를 부르며 자라나는 아이들과 ‘북한산 우렁찬 정기를 받아… 한강이 바다로 흘러가듯… 이름을 오대양에 휘날릴… 나라의 든든한 기둥…’ 어쩌고저쩌고 하는 근엄한 교가를 부동자세로 부르며 크는 아이들은 왠지 출발부터가 다를 것 같다.
대안학교인 간디학교의 교가 ‘꿈꾸지 않으면’은 노랫말이 참 아름답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네/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아름다운 꿈꾸며 사랑하는 우리,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가는 우리들/누구도 꿈꾸지 못한 우리들의 세상 만들어가네/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노래하는 것.”
참된 배움의 길이 무언지를 시처럼 말해주는 교가다.
전통도 좋다. 그런데 시대와 너무 동떨어진 추상적인 교훈과 교가는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평생의 추억이자 내 삶의 콘텐츠이니까. 우리 동창들은 지금도 송년회를 할 때는 70년이 넘은 낡은 교가를 3절까지 부르고 파이팅을 외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인왕의 억센 바위 정기를 타고…” 오늘의 내가 인왕산 정기의 덕인지, 솔직히 알 수가 없지만 말이다.
◆ 한기봉 국민대 초빙교수/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편집국 부국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언론보도로 피해를 본 사람과 언론사 간 분쟁을 조정하는 언론중재위원이며, 국민대 언론정보학부에서 글쓰기와 한국 언론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hkb821072@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