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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18)조용필 ‘고추잠자리’

2022.08.31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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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기다리지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보고 싶지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그런가 봐
엄마야 나는 왜 자꾸만 슬퍼지지
엄마야 나는 왜 갑자기 울고 싶지

가을빛 물든 언덕에
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나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외로움 젖은 마음으로 하늘을 보면
흰 구름만 흘러가고
나는 어지러워, 어지럼 뱅뱅
날아가는 고추잠자리
(1981년, 조용필 3집, 작사 김순곤/작곡 조용필)

앞마당 빨랫줄에 고추잠자리 한 마리 앉아있다. 푸른 물감을 푼 듯한 하늘엔 하얀 뭉게구름이 점점이 박혀있다. 비는 그치고 햇빛은 구슬처럼 마당에 쏟아진다. 아이 눈부셔라. 엄마를 기다리다 툇마루에서 설핏 잠이 들었나 보다. 바람 한 줄기가 훅 뺨을 스친다. 그래도 잠자리는 가만히 있다. 넌 왜 안 날아가고 자꾸만 맴을 도는 거니? 날개를 말리는 거니? 아이, 어지러워라.

그때 나는 울고 싶었을까. 난 어릴 적 시골에 살았다. 사립문 옆 맨드라미와 사루비아와 고추가 빨강을 덧칠하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 걸 알았다. 아버지는 찢어진 모기장으로 잠자리채를 만들어줬다. 온종일 들과 밭으로 뛰어다녔다. 온몸이 다 빨간 고추잠자리는 참으로 신기했다. 빤히 들여다보며 “넌 왜 눈까지 빨갛니?” 하고 말을 걸었다.

내 청춘의 기차는 사납게 내달렸지만, 유년의 정경은 이렇게 시골 간이역처럼 평화롭게 내 안에 남아있다.

가을 초입엔 용필이 오빠의 이 노래를 한번 들어줘야 한다. 그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고고하고 고독하게 살고 있을까, 가을날 들꽃 언저리를 맴맴 도는 고추잠자리처럼 평화롭게 살고 있을까. 문득 그가 궁금하고 그리워진다.

1981년 7월에 발매된 조용필 정규앨범 3집 재킷. 고추잠자리는 ‘미워 미워 미워’ ‘여와 남’에 밀려 표지에 실리지 못했다.
1981년 7월에 발매된 조용필 정규앨범 3집 재킷. 고추잠자리는 ‘미워 미워 미워’ ‘여와 남’에 밀려 표지에 실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 노래를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에 견준다. 그만큼 독창적이고 혁신적이라는 거다. 1981년 조용필 3집에 실린 이 노래는 발표 당시 대중음악계에 가히 충격을 던졌다. 유튜브에 달려있는 수많은 댓글은 “이게 81년도 노래라고? 2020년 노래보다 세련된 거 같은데” 대충 이런 말들이다.

노래는 짧은 전주의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아마 나는’ 이라는 4음절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며 시작된다. 가사로는 매우 특이한, 부사로 시작되는 서두다. 이어 빠르고 다이내믹한 펑키 리듬 속으로 우리를 몰고 간다. 몸이 그루브를 탄다. 그런데 계속 신나는 게 아니다. 화려한 리듬 밑에 깔린 고독과 슬픔의 내피를 이윽고 감지하게 된다. 조용필은 그 양가감정을 전혀 다른 톤으로 바꿔 오가며 조율한다.

노래는 진성과 가성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앞단락 진성은 현실세계이고 뒷단락 가성은 어릴 적 회상의 공간이다. 그런데 어른이 된 현실세계에서도 그는 “엄마야” 부르며 자꾸만 무엇인가를 기다리고, 보고 싶고, 슬퍼지고, 갑자기 울고 싶어진다. 그래서 이렇게 독백한다. “아마 나는 아직은 어린가 봐.”

‘고추잠자리’는 동심의 외피를 쓴 철학적 사유의 노래다. 노랫말의 핵심은 가성 부분 ‘가을빛 물든 언덕에/들꽃 따러 왔다가 잠든 나/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다.

들에 꽃을 따러 왔다가 잠들어 깨어보니 아무도 없다. 그 순간 아이는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겠으나 삼라만상의 이치를 어렴풋이 보았다. 하늘은 푸르고 흰 구름은 흘러가고 알싸한 들꽃 향기가 코를 찌르지만 사위는 죽은 듯 고요하다. 그 순간의 정적에서 아이는 존재의 근원을, 이 세상 모든 존재는 고독하고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걸 본능적으로 감각했다. ‘나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영원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이 노래는 몸은 어른이지만 정신세계는 어른을 거부하는, 아니 스스로 어른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성인의 노래다. 정태춘이 1978년 아내 박은옥을 위해 만들어준 ‘윙윙윙’도 고추잠자리를 노래했지만 조용필의 것과는 완전히 결이 다른 천진난만한 동요다.

고추잠자리는 다음해인 1982년 4집에서 ‘꾀꼬리’로 바뀐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나는야 언제나 술래/엄마가 부르기를 기다렸는데/강아지만 멍멍 난 그만 울어버렸지/그 많던 어린 날의 꿈이 숨어버려/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야/이제는 커다란 어른이 되어 눈을 감고 세어보니/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꾀꼬리 나는야 오늘도 술래”(’못찾겠다 꾀꼬리’)

‘고추잠자리’의 속편 같지 않은가. ‘엄마야,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와 ‘지금은 내 나이는 찾을 때도 됐는데 보일 때도 됐는데’는 결국 같은 질문이다. ‘못 찾겠다 꾀꼬리’의 화자는 어른이 돼서도 여전히 ‘술래’다. 술래가 찾는 것은 무얼까. 그건 ‘잃어버린 꿈’이 아닐까. ‘고추잠자리’에서 ‘자꾸만 기다리는’ 것도 꿈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2021년 발간한 평론집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유 교수는 조용필의 노래가 지닌 위안의 힘에 주목해 문학적으로 해석했다.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2021년 발간한 평론집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유 교수는 조용필의 노래가 지닌 위안의 힘에 주목해 문학적으로 해석했다.

2021년 2월 문학평론가 유성호(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이라는 특이한 가요 평론집을 출간했다. 그는 조용필의 노래가 지닌 위안의 힘에 주목해 문학적으로 해석하는 작업을 오래 해온 사람이다.

“조용필 노래 전체를 통틀어 기원이 되는 노래는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다.  ‘고추잠자리’나 ‘술래잡기’라는 유년의 기억으로 구성된 이 노래들은 조용필의 노래가 잃어버린 세계를 탐색해가는 서정적 탈환의 예술이요, 가장 아름다웠던 세계를 재현해가는 외롭고 높고 쓸쓸한 ‘시(詩)’였음을 알려주었다.”

유 교수는 그것을 ‘위안의 미학’이라고 명명했다. 문학평론가다운 현학적 해석이지만 결국 ‘유년의 기억(동심)’과 ‘꿈’이 조용필 노래의 뿌리라고 본 것이다.

“조용필의 노래가 보내는 위안은 나를, 타인을, 인생을 궁극적으로 긍정하게 만들면서 온몸을 쥐어짜는 정성스런 목소리로 시대를 끌어안는 힘을 보여준다. 웃음과 눈물 사이의 이 폭넓은 스펙트럼은 어떤 충동을 부추기거나 무언가를 가르치거나 울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노래 ‘고추잠자리’에 대해서는 “온몸의 가성을 써서 울리는 음색을 통해, 폭력으로 훼손된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어떤 꿈의 세계를 들려준다”라고 평했다.

유 교수는 조용필은 ‘너머(beyond)’를 상상하고 실천해온 진정한 가왕이라며 밥 딜런을 능가하는 ‘시인’의 반열에 올렸다. 비록 그가 작사한 노래가 아닐지라도 그의 노래는 스스로의 해석력과 창법과 시대의 반향에서 그대로 하나의 최종적 텍스트라면서, 조용필은 그 텍스트의 ‘창안자’라고 했다.

그가 조용필에게 헌사한 수식어는 ‘꿈의 사제’, ‘시간의 사색가’ ‘고독의 창법’이다. ‘고추잠자리’의 노랫말은 고독하다. 혼자다. 인생 앞에서 어지럼 뱅뱅이다.

고독은 조용필 노래의 출발점이다. 음색도 그걸 뒷받침한다. 1976년 사실상 데뷔곡인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한순간에 떠올랐지만 바로 대마초 사건에 연루돼 손발이 묶였을 때, 조용필은 방황하지 않고 판소리를 익히며 소리를 연마해 원하던 탁성을 얻었다. 1980년 해금되면서 발표한 ‘창밖의 여자’에 음악대중은 경악했다. 판소리가 갖고 있는 한의 울림이 이식된 것이다. ‘가슴을 후벼 판다’는 통속적 언사밖에 할 말이 없다. 그의 정규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는 국내 최초의 단일 앨범 밀리언셀러 기록을 남겼다.

실제로 뮤지션 조용필은 고독하다. 칩거한다. 조용필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서 고독의 그림자를 본다고 하는데 그게 고독인지 ‘킬리만자로의 표범’ 같은 자존심인지는 불분명하다.

‘고추잠자리’는 1981년 발매한 정규 3집 앨범에 실렸다.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가 같이 실린 노래다. 노래는 발표되자마자 KBS라디오에서 24주간 1위를 했다.

조용필에게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 노랫말을 써준 김순곤. ‘고추잠자리’는 그의 데뷔작이다. 이후 대중가요의 대표적 작사가로 성공해 1000여 곡의 노랫말을 썼다. 최근에는 유명한 컬러링북 작가로 변신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조용필에게 ‘고추잠자리’와 ‘못 찾겠다 꾀꼬리’ 노랫말을 써준 김순곤. ‘고추잠자리’는 그의 데뷔작이다. 이후 대중가요의 대표적 작사가로 성공해 1000여 곡의 노랫말을 썼다. 최근에는 유명한 컬러링북 작가로 변신했다.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이 ‘위대한 노래’의 작사가는 김순곤이다. 산업미술을 전공한 그는 우연히 라디오 프로그램의 가사 공모전에 이 가사를 투고했는데 조용필이 마음에 들어해 곡을 붙였다. 김순곤은 그 후 조용필에게 ‘못 찾겠다 꾀꼬리’ ‘바람의 노래’를 써준다. 그는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가요만 1000곡이 넘는 대표 스타 작사가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이름난 컬러링북 작가가 되었다. 박강성 ‘문밖에 있는 그대’, 나미 ‘인디안 인형처럼’, 김완선 ‘나만의 것’, MBC 드라마 ‘서울의 달’의 OST ‘서울 이곳은’, 장윤정의 ‘초혼’, 최유나의 ‘흔적’ 등이 그의 노랫말이다.

‘고추잠자리’는 2021년 현대 쏘나타 센슈어스 출시 광고에 차용됐다. 운전자는 차 안에서 이 노래를 들으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옛날 노래가 옛날 사람들 것인 줄만 알았어. 오해였네. 이거 힙합이네.” 이어 ‘어른이 되어간다, 가치를 알아 간다’는 내레이션이 흐른다.

(팁)고추잠자리는 왜 붉을까

고추잠자리는 몸길이가 작고 동아시아, 동남아시아, 플로리다, 하와이까지 분포한다. 영어 이름은 ‘red dragonfly’다. 몸이 고추처럼 빨개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에겐 호랑나비처럼 친근하다. 성숙한 수컷에게만 호르몬 변화로 붉은색이 나타나는데 짝짓기를 할 준비가 됐음을 알리는 신호다. 덜 자란 것은 짙은 황색이지만 성숙한 수컷은 머리부터 배 끝까지 전체가 붉어지며 날개도 좀 빨갛다. 교미는 공중에서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고 암컷은 배로 수면을 치듯이 지나가면서 알을 낳는다. 멸종위기종은 아니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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