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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시가 된 노래, 노래가 된 시] (39) 임재범, ‘너를 위해’

2024.02.08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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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쩜 우린 복잡한 인연에
서로 엉켜 있는 사람인가 봐
나는 매일 네게 갚지도 못할 만큼
많은 빚을 지고 있어
연인처럼 때론 남남처럼
계속 살아가도 괜찮은 걸까
그렇게도 많은 잘못과 잦은 이별에도
항상 거기 있는 너

날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 해줄
유일한 사람이 너란 걸 알아
나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
너를 붙잡아야 할 테지만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너
그건 아마도 전쟁 같은 사랑
난 위험하니까 사랑하니까
너에게서 떠나줄 거야
(2000년, 작곡 신재홍·작사 채정은)

‘너를 위해’가 첫 번째 곡으로 실린 임재범의 4집 앨범(2000년) 커버는 괴이하다. 양면에 가수의 얼굴도, 흔한 풍경 사진도 없다. 날개를 편 채 쓰러진 파리 한 마리 사진뿐이다.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자유와 방황? 고독과 불안? 세상을 향한 독설? 가수가 그 파리에 대해 말한 적이 없으니 상상할 뿐이다.

임재범의 2000년 4집 앨범 CD ‘Story Of Two Years’ 앞뒷면. 숫자 ‘4’와 파리 한 마리 뿐이다. 중고 앨범 매매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 (이미지=알라딘)
임재범의 2000년 4집 앨범 CD ‘Story Of Two Years’ 앞뒷면. 숫자 ‘4’와 파리 한 마리 뿐이다. 중고 앨범 매매 사이트에서 구할 수 있다. (이미지=알라딘)

오늘의 임재범을 있게 한 노래 ‘너를 위해’에는 가슴에서 빠져나오지 않는 한 구절이 있다.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

노래의 의미를 꿰뚫어 버린, 더 나아가 가수의 삶과 표정을 곧바로 떠올리게 하는 한 마디다. 그리고 노래 밖으로 나가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내 인생에서 만난 그 수많은 관계와 사랑에서 내 생각과 눈빛은 어떠했던가. 겉으론 다정한 척했지만 내면은 오만 잡생각으로 거칠었고, 사랑스럽게 바라보았지만 상대는 나의 시선에서 불안을 보진 않았을까. 나는 사랑할 자격이 있던 남자였을까.

노랫말은 여자를 떠나겠다는 남자의 일방적 선언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노래 제목이 된 ‘너를 위해’서다. 왜? 명료하다. “사랑은 전쟁이고, 난 위험하니까”

당신은 내가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갚지 못할 빚을 지었어도 내 곁에 항상 조용히 머물러줬다. 나도 알고 있다. 세상에서 ‘제대로’ 살게 해줄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당신을 붙잡아야 하지만, 이제는 내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을 지켜보는 당신을 더는 바라볼 수가 없다. 나는 위험하니까. 언제라도 당신에게 치명적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위험한 짐승 같은 존재니까.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다/나의 손이 닿으면 너는/미지의 까마득한 어둠이 된다/존재의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나는 이름도 없이/피었다 진다”(김춘수 시인, ‘꽃을 위한 서시’ 앞부분)

노래는 이 남자가 왜 위험한지 설명하지 않는다. 무엇이 거칠며 눈빛은 왜 불안한가. 이 더러운 속세에서 지고지순한 여인을 사랑하는 데 겪어야 하는 거친 일들일까. 아니면 세상과 어울리지도 타협하지도 못하는 천상 부적응자로 태어난 남자의 거친 성정일까. 그런 불안한 나의 미래가 눈빛에 어려있는 걸까. 그런 남자와의 위태로운 사랑을 인내하는 당신을 응시하는 내 눈빛이 불안에 떠는 걸까. 그래서 이 사랑은 애틋하고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건 ‘전쟁 같은 사랑’이다.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도, 당신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겠다는 미련도 거두었다. 노랫말에는 없지만 이런 것이다. 내가 떠나줘야만 당신이 살 것이며, 그게 내 사랑의 방식이라는 것. 단순하고 매몰차다. 마치 악의 세계에 몸담은 사내가 마지막으로 연인을 그 세계에서 지켜주기 위해 사라져 주는 영화처럼.

임재범은 이 노래 2년 전인 3집에서 이런 고해성사를 했다. 그녀 곁은 내 자리가 아니며 감히 그녀를 탐하는 걸 용서해달라고 했다. ‘감히’라는 표현을 여러 번 썼다.

“제게 있어 그녀는/단 하나의 길임을 용서하소서/제게 있어 그녀는 아침이며/제게 있어 그녀는 생명임을 용서하소서/제 자리가 아님을 알며/감히 그녈 탐함을 용서하시고/그래도 후회하지 않음을 용서하소서/…/당신이 가르친 사랑을 그녀 앞에/제가 놓게 하시고/사랑의 그 절망과 허무는 제게 버려/그녀 앞엔 아름다움만이 있게 하소서” (‘고해’ 내레이션)

자격이 없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걸 용서해달라고 간절히 원했다. 그다음 ‘그대에게’에서는 스스로 떠나고 만다.

2집의 히트곡 ‘사랑보다 깊은 상처’에서도 떠난 그녀를 생각하며 사랑보다 상처만 주고 만 자신을 자책하고 후회한다.
 
“사랑보다 깊은 상처만 준 난/이젠 깨달았어 후회하고 있다는 걸/…/그런 넌 용서할지 몰라/부족했던 내 모습을/넌 나를 지키며 항상 위로했었지/난 그런 너에게 이젠 이렇게 아픔만 남겼어”

그의 사랑들은 ‘피 흘리는 가엾은 사랑’(‘고해’ 가사)뿐이며, 자신은 죄인이다. 그런 부족한 자신을 벌해달라고 간청하거나 떠난다.

얼핏 임재범을 특징짓는 ‘남성성’과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게 더 남성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소위 ‘깜냥’이 안되는 내가 순정한 여인을 탐한다는 건 ‘죄’이므로 떠나주는 게 ‘사나이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를 위해’는 노래 좀 한다는 남자들의 노래방 애창곡이다. 사내들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양 절규하듯 비장하게 이 노래를 부른다.

헤비메탈 ‘시나위’ 멤버로 데뷔한 임재범(62)은 1991년 솔로 1집 ‘이 밤이 지나면’이 60만 장 이상이 팔리며 존재를 알렸다. 이어 6년 만의 2집(1997년)에 실린 ‘사랑보다 깊은 상처’, 3집(1998년)의 ‘고해’가 연달아 크게 성공했다. 성공은 4집의 ‘너를 위해’까지 이어졌다. 이 노래는 본래 1997년 가수 한에스더가 부른 ‘송애’가 원곡이다. 제목을 바꾸고 노랫말도 작사가 채정은이 고쳐 썼다.

하지만 그는 음반을 내고는 흥행과 상관없이 버릇처럼 홀연히 산속으로 잠적하곤 했다. 은둔과 방황의 세월을 보냈다. 방송 활동도 하지 않고 인터뷰나 공연조차 거의 하지 않았다.
 
‘너를 위해’ 4년 후인 2004년 5집을 낸 후에도 7년을 숨었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살아있음을 알리고는 2012년 6집을 내고 또 10년을 잠적했다. 사람들은 그가 로커로서 록을 배반했다는 자책감과 외톨이 성향으로 우울증과 조울증을 앓았다고 했다. 그는 생활고에 시달려 길바닥 꽁초를 주워서 피웠다고 후에 털어놓았다.

그가 음악 대중에 제대로 소환돼 오늘날 ‘레전드’로 각인된 계기는 2011년 5월 MBC ‘나는 가수다’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이다. 머리를 박박 밀고 나온 첫 무대에서 묵직하고 폭발적인 성량과 섬세한 감성으로 ‘너를 위해’를 불러 단박에 1위를 차지했다. 임재범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음원 사이트를 석권해 버렸다. ‘왕의 귀환’이니 ‘나만 가수다’라는 말들이 나왔다.

당시 그는 암 투병 중인 아내 치료비를 벌기 위해 방송 출연을 했다고 말했다. “망설일 여지가 없었다. 돈을 벌 길이 없었다. 처음으로 방송 출연 제의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미안함과 자기 환멸과 상처가 주조인 그의 명곡들은 어쩌면 1991년에 만나 ‘거칠고 불안한’ 자신의 곁을 조용히 지켜주다 2017년 세상을 떠난 아내 송남영(뮤지컬 배우)에 대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너를 위해’를 열창하는 임재범. 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곧바로 ‘레전드’가 됐다. (유튜브 캡처)
2011년 MBC ‘나는 가수다’에 출연해 ‘너를 위해’를 열창하는 임재범. 7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곧바로 ‘레전드’가 됐다. (유튜브 캡처)

두텁고도 소울 충만한 중저음의 음색을 지닌 그는 여린 소리부터 스크래치, 갈아서 내는 듯한 샤우팅까지 다양한 소리를 낼 수 있는 뛰어난 보컬이자 록, 발라드, 소울, R&B 등 모든 장르를 소화할 수 있고, 4집 앨범의 9곡 중 5곡을 작곡하기도 한 탁월한 음악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다. 대중음악 평론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조용필, 이승철, 인순이 등과 함께 한국 대중가요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보컬리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그는 서울고를 다니다 2학년 때 가수가 되기 위해 중퇴하고는 김수철에게서 노래를 배웠다. 솔로 데뷔를 준비하던 중 영국 유학 중인 기타리스트 김도균이 불러 영국에서 잠시 현지 가수들과 함께 록밴드를 만들어 활동하다 돌아와 잠시 고등학교 동창인 신대철(신중현 아들)이 주도한 ‘시나위’ 초기 멤버가 돼 1집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불렀다.

포효하는 샤우팅과 세상과의 거리두기는 가정사에서 비롯됐는지도 모른다. 아버지(임택근 아나운서, 2020년 사망)의 혼외자식으로 한때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또 다른 이복형제 손지창(배우)의 존재도 알게 됐다.

임재범은 아내를 떠나보낸 후 스스로에게 벌을 준 긴 유배를 끝내고 대중 곁으로 돌아왔다. 2022년 7집 앨범을 냈고 이순을 넘긴 지난해 JTBC ‘싱어게인3’에 돌연 심사위원으로 등장해 점잖고 차분하고 부드러운 모습으로 그간의 배타적 이미지를 씻어냈다.

임재범을 아는 후배 가수들은 그는 실제로는 순하고 순박하고 따스하고 교과서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거친 남자 이미지는 허상이라는 것이다.

7집에 실린 대표곡 발라드 ‘위로’(채정은 작사, 한태수 작곡)에서 그는 세상과 화해했다. 힘들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비로소 타인을 위로하는 여유를 가졌다.

“숨죽여 울지 마요/그 불 꺼진 방 안에서/알아요 알아요 얼마나 힘든가요/…/나 또한 늘 그랬죠/가슴속 불덩이가/자던 숨을 짓누르면/뛰쳐나가 밤새 뛰던 미친 밤/…/끝없는 미로 속을 걷는 우리들/허나 결국 그대는 답을 찾을 거예요/비춰주고 잡아주며 같이 가요”

그래도 임재범은 ‘영원한 카리스마’다.

한기봉

◆ 한기봉 전 언론중재위원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를 했다. 파리특파원, 국제부장, 문화부장, 주간한국 편집장, 인터넷한국일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을 지냈다.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초빙교수로 언론과 글쓰기를 강의했고, 언론중재위원과 신문윤리위원을 지냈다. hkb82107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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