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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와 일의 미래

당신이 알던 그 문서는 없다

2026.06.10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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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노동의 기예는 '상사를 위해 압축하기'에서 '기계가 읽을 수 있고 사람이 검증할 수 있도록 원천을 명료하고 완전하게 쓰기'로 옮겨 간다.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그러나 세상엔 1장짜리 보고서로 모두 담을 수 없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거나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으며, 해결 방안 역시 많은 논의가 필요한 사안들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정부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다룰 때도 '핵심만 간단하게'라는 원칙에 경도된다. 보고서 1장에 모든 내용이 깔끔하게 담길 수 있도록 문제점과 원인, 해결 방안을 2~3가지의 맥락으로 포섭하고, 서로 조응되게 구성하여 현실을 의도적으로 평탄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독서율 하락에 대한 대책을 보고서로 쓴다고 가정하자. 일단 독서율 하락의 원인은 무엇인가? OTT 등 영상매체의 약진? SNS의 범람? 장시간의 근로나 공부로 인한 시간의 부족? 어릴 적 독서 습관의 부재? 혹은 경제적 어려움? 하나하나 독서율 하락의 원인으로 생각해 볼 만한 주제다. 그러나 한 장의 보고서에 그 모든 걸 맥락 없이 담을 수는 없다. 결국 보고서는 이를 독서 환경의 미비, 디지털 미디어의 확산, 독서 습관의 부족 등으로 적당하게 '포섭'한다."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인공지능(AI)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AI Native'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중 하나는 당신의 문서가 완전히 바뀐다는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높은 분을 위해 1장짜리 보고서를 만들지 않아도 된다. 실행과제도, 일정도, 협업해야 할 부처도, 마주하게 될 어려움도, 그 해결 방안도 별도 문서로 굳이 따로 빼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것은 인공지능이 맡을 일이기 때문이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한국전자전(KES)'에서 참관객이 인공지능(AI) 로봇과 대화하고 있다.2025.10.21.(ⓒ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5 한국전자전(KES)'에서 참관객이 인공지능(AI) 로봇과 대화하고 있다.2025.10.21.(ⓒ뉴스1,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충분한 정보를 담은 원천데이터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첫째,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 빠짐없이 전체를 덮어야 한다(MECE, Mutually Exclusive and Collectively Exhaustive). 

둘째,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는 완전문장으로 써야 한다. 주어와 목적어를 생략하지 않고, 음슴체를 쓰지 않으며, 누가 언제까지 무엇을 하는지가 문장 안에 선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당신의 글의 첫 번째 독자는 인공지능이기 때문이다. 

셋째, 풍부해야 한다. 압축하는 대신 판단에 필요한 모든 사실을 담아야 한다. 넷째, 모든 근거를 주석으로 담아야 한다. 인용한 자료, 수치의 출처, 결정의 배경을 풍부하게 매달아야 한다. 그래야 추적하고 검증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AI의 차례다. 당신이 올리는 보고서의 왼편에는 이런 버튼들이 붙어 있다. <요약으로 보기>, <할일 뽑아 보기>, <관계부처 보기>, <관계규정 보기>…. 상사는 이 버튼들을 자유로이 오가며 당신의 보고를 입체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 요약문, 일정표, 할 일 목록, 협업 부처 명단은 우리가 손으로 만들어 넣는 입력물이 아니라, 잘 쓰인 하나의 원천에서 인공지능이 뽑아내는 출력물이다. 

지식노동의 기예는 '상사를 위해 압축하기'에서 '기계가 읽을 수 있고 사람이 검증할 수 있도록 원천을 명료하고 완전하게 쓰기'로 옮겨 간다. 한장의 보고서에 담기 위해 모든 맥락들을 평탄화해 버리고 납작하게 해버려야 했던 시간은 이제 지나갔고,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다.

왜 완전한 문장으로 써야 할까? 한글은 전형적인 고맥락 언어다. 말에는 전체 정보가 담기지 않는다. "어제 보고했어"라는 문장의 핵심 내용은 대화 당사자들이 공유한 상황 속에 떠 있다. 자연어처리에서는 이것을 영형 대용(zero anaphora), 즉 '생략된 대명사' 문제라고 부른다. 

여기에 더해 우리 공직과 기업의 메모, 회의록, 보고서에 만연한 '음슴체'가 있다. "검토 완료함. 다음 주 보고 예정임." 이런 문장은 주어도, 행위 주체도, 시제의 책임 소재도 흐릿하다. 이미 충분히 고맥락인 언어를, 굳이 더 고맥락으로 끌어내린다. 사람이 같은 사무실에 앉아 정황을 공유할 때는 통한다. 

그러나 그 문장을 사람의 머릿속 맥락에서 떼어 내 기계에 건네는 순간, 정보의 절반은 증발해 버린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길동과 영희가 철수에 관해 얘기한다. "주말에 산에 간대?", "아니 집에서 쉴 거래." 인공지능은 이렇게 번역한다. "No, I will rest at home." 또는 "No, you will rest at home." 올바른 번역은 이렇다. "No, he said he would rest at home."

클라우드가 기반이 되는 것은 물론이다. 아래아한글로 '자간장평'을 건드려가며 갖은 공을 들인 문서를 굳이 프린트해서 봐야 한다면 인공지능은 그만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돼버린다. 한국 정부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가 돼버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클라우드 기반으로 협업해야 하고, 인공지능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 당신이 알던 그 문서는 이제 없다.

박태웅

◆ 박태웅 녹서포럼 의장

한빛미디어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KTH, 엠파스 등 IT 업계에서 오래 일했으며 현재 녹서포럼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IT산업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21년 동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저서로는 <눈 떠보니 선진국>, <박태웅의 AI 강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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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삭제 <2011. 6. 30.>
6. 삭제 <2011.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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