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종로에는 2곳의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있다. 하나는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역대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종묘, 또 한 곳은 가장 한국적 궁궐로 평가를 받는 창덕궁이다.

경복궁의 동쪽에 있는 궁이라고 하여 ‘동궐’이라고 불리던 창덕궁과 창경궁, 그리고 종묘는 원래 담장을 사이에 두고 숲으로 이어져 있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1932년) 일제가 창경궁과 종묘 사이에 종묘 관통 도로(율곡로)를 만들어 갈라놓았고, 지척에 있던 두 공간은 빙 둘러 가야 만나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2022년 서울시의 ‘창경궁-종묘 연결 역사복원사업’을 통해 90년 만에 창경궁과 종묘가 하나로 연결되었다. 이에 종묘에서 창경궁, 창경궁에서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연결 동선이 가능해졌다.

종묘-창경궁 연결 통로 개통 소식을 듣고 종묘를 방문했다. 시간제 관람을 해야 하는 평일과는 다르게 주말과 공휴일, 문화가 있는 날(매월 마지막 수요일)에는 일반 관람을 할 수 있다. 그에 맞춰 두 유산 간 연결문은 토, 일, 공휴일 및 문화가 있는 날 등에 개방된다.

‘종묘’하면 떠오르는 건물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를 비롯한 왕, 황제, 황후의 신주가 있는 ‘정전’이다. 정전은 정면이 매우 긴 일자형 건물로 우리나라 단일건물로는 가장 긴 건물이라고 한다. 이런 독특한 건축양식을 인정받아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영상으로만 보던 정전을 볼 생각에 마음이 들떴지만 아쉽게도 현재 보수공사 중이라 온전한 모습을 다 볼 수는 없었다. 30년 만의 대대적인 보수 공사라고 하니 내년 4월에 공사가 끝나고 새로워진 모습의 정전을 기대하며 창경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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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의 북신문이 개방되지 않았다면 정문으로 돌아간 뒤 한참을 가야 창경궁에 도달한다. 지도 앱으로 검색해 보니까 종묘 정전에서 창경궁 홍화문까지 도보로 대략 23분이 걸렸다. 10분 내외로 단축된 덕분에 두 유산 간 연계 관람이 증가할 것 같았다. 실제로 연결문을 통해 종묘에서 창경궁으로, 창경궁에서 종묘로 이동하는 관람객이 많았다. 다만 입장료는 따로 구매해야 하며 출입문의 무인발권 시스템에서 구매 가능하다.

종묘의 북신문을 지나 창경궁 율곡로 출입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갔다. 왠지 낯설지 않다 했더니 작년 3월 창경궁 특별 관람 프로그램 ‘봄을 품은 낙선재’에 다녀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으로 첫 발을 내디뎠던 첫 소재, 첫 취재였던 터라 더욱 감회가 남달랐다. 특별 개방하는 창경궁 낙선재의 속살은 기억 속에 남겨두고 대신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대온실을 찾았다. 곧 대온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읽을 예정이라 마침 시기적절했다.

1909년 완공해 식물원으로 공개한 대온실은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 온실이다. 19세기 철과 유리라는 새로운 건축 재료가 20세기 초 한국에 유입되어 대온실 건축에 사용되었다. 대온실은 그때 서양에서 유행했던 수정궁(Crystal Palace) 류의 양식이지만 지붕 용마루에 달린 조선 왕실 문양 오얏꽃이 한국식으로 재해석된 한국 근대 건축의 면모를 보여준다.

근대 건축을 좋아하는 나는 그동안 건물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외관에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대온실이 건축된 당시 창경궁은 일제에 의해 유원지로 격하되어 ‘창경원’이라는 명칭을 부여받았다. 창경원으로 전락한 궁은 창경궁 중건사업을 통해 1980년대에 다시 ‘창경궁’으로 복원되었다. 아픈 근대사를 품고 있는 대온실 앞에서 90년 만에 연결된 종묘와 창경궁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지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창경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는 연결문(함양문)으로 두 궁궐 간 이동이 가능하다(각각 발권). 이제 종묘와 창경궁 연결 관람도 용이해지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창경궁-유네스코 세계유산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유네스코 관광에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이번 출입문 개방과 무장애시설 설치를 통해 더 많은 국민이 우리 국가유산에 관심을 갖고 문화 향유권을 누리게 되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정수민 amantedepar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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