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하계올림픽(2016 리우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과 여덟 번의 세계선수권대회, 두 번의 아시안게임, 그 외 60여 개의 다양한 국제대회를 경험하는 동안 총 274개의 경기에 배정받아 호각을 불어온 필자의 국제심판 경력은 2023년 현재도 진행 중이며, 어쩌면 심판 경력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세 번째 올림픽(2024 파리올림픽)에 도전하고 있다.
필자의 핸드볼 국제심판 입문과정은 꽤 독특했다. 대학교에 입학하며 핸드볼공을 처음 만졌고, 그렇게 생활체육으로 핸드볼을 즐기던 중 사건이 터졌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에서 심판의 노골적인 편파 판정으로 우리나라 고등학생의 실력도 채 되지 않는 중동 국가에 우리나라 남자핸드볼 대표팀이 패배한 것이었다. 스포츠에서 결코 발생해서는 안 될 모습에 많은 국민이 분노했고, 필자는 충격에서 벗어나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나름대로 파악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당시 국제무대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춘 대한민국 출신의 핸드볼 국제심판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묘한 이끌림과 함께 사명감을 품게 되었다. 그렇게 2008년 국내심판 2급 자격증 취득을 시작으로, 2012년 최종적인 국제심판 배지를 가슴에 달았다.
국제심판이 되려면
핸드볼은 주심·부심의 구분 없이 동등한 권한을 가진 두 명의 심판이 경기에 배정되어 판정을 내린다. 국제심판 자격증 또한 2인 1조로 취득할 수 있으며, 부상과 같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은퇴할 때까지 함께 활동하게 된다. 현재 국제핸드볼연맹(IHF: International Handball Federation)에 소속된 국제심판은 모두 67개 조로 숫자가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자격 취득과정 및 관리가 다소 까다롭기 때문이다.
국제심판(International Referee)이 되기 위해서는 아시아 대륙심판(Continental Referee) 자격을 우선 취득해야 한다. 이후 예비 국제심판 연수 프로그램(Global Referees Training Program)을 2~3회 이수해야만 국제심판 자격검정 강습회에 참여할 수 있다. 최종적으로 해당 자격검정을 통과한 인원에게 국제심판 자격이 주어지는데, 이 모든 과정을 만 40세 이내에 마쳐야 한다.
자격검정 강습회 또한 만만치 않다. 약 일주일의 강습회 기간 중 다양한 이론, 실기 교육을 이수해야 하며, 경기 규칙과 관련된 이론평가와 영상평가, 체력평가, 그리고 실제 경기에 배정되어 판정 및 경기 운영 역량을 검증하는 실기평가까지 거쳐야 한다. 이때 단 하나의 평가라도 탈락하게 되면, 자격증은 주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모든 교육과 평가가 영어로 진행된다는 사실이며, 규칙 적용과 판정을 영어로 설명하고 이해하는 능력 또한 필수적으로 요구되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론적으로 대륙심판 자격검정 강습회 1회, 예비 국제심판 연수 프로그램 2~3회, 국제심판 자격검정 강습회 1회 등 최소 4회 이상 유사한 자격검정을 통과해야 하는 매우 험난한 과정의 결과물이 바로 국제심판 자격증이다.
본격적인 경쟁의 서막
국제심판 자격 취득이 장밋빛 미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되레 치열한 노력과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음을 알릴 뿐이다. 국제핸드볼연맹이 주최 또는 주관하는 대회는 크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세계선수권대회, 슈퍼글로브대회, 하계올림픽 등이 있다. 신규 국제심판의 경우 통상적으로 청소년 또는 주니어대회에 초청받아 다수의 경험을 쌓게 된다. 여기서 평가를 통한 역량검증을 거친 후에야 세계선수권대회, 슈퍼글로브대회 등의 국제무대에 부름을 받게 되며, 그중 선택받은 소수의 인원만이 올림픽 심판이라는 영예를 안을 수 있다. 하지만 국제심판 배지를 가슴에 달고도 청소년 또는 주니어대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조용히 사라져 버리는 심판들도 허다하다.
심판 간의 경쟁은 대회에 초청받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매 대회에 앞서 이론평가, 영상평가, 체력평가가 기본적으로 진행되는데, 하나의 평가라도 탈락하는 순간 예선전 종료 후 이른 귀국길에 오르는 심판명단에 이름이 오른다. 동료 심판들이 본선 및 결선 주요 경기에 배정을 기대하는 동안, 서둘러 돌아갈 짐을 꾸리는 모습 그 자체로도 서글프지만, 이는 사전 준비 부족이라는 명분으로 향후 심판활동에도 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대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배정받는 모든 경기마다 심판평가관이 배치되어 판정 능력, 경기 운영 능력, 위치 선정 능력, 규칙 이해도, 일관성 및 형평성 등 세밀한 항목에 따라 평가받는다. 평가 점수에 따라 추후 배정될 경기의 수준이 결정되며, 누적된 점수를 바탕으로 본선 또는 결선 경기에서 호각을 쥘 여부가 판가름난다. 국제심판에게는 경기가 종료된 후 진행되는 심판부 일일 전체 회의와 심판평가관과의 개별 회의 또한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경기에 대한 영상분석을 통해 판정 및 규칙 적용에 대한 잘잘못을 논의하는데, 이때 판정의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해서 정확한 규칙을 근거로 심판평가관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 또한 평가에 반영된다.
최근 심판은 선수에 버금가는 체력과 체형을 갖춰야 한다는 국제핸드볼연맹 심판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별도의 전문가를 고용하여 심판의 체력 향상 및 유지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심판들에게 체력측정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과 연동된 시계를 지급하여 훈련 현황을 원격으로 관리하며, 그 결과 또한 평가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 이러한 방식으로 축적된 종합 점수에 따라 향후 초청을 받을 수 있는 대회의 수준이 결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국제심판의 삶은 끊임없는 노력과 치열한 경쟁의 연속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국제심판의 가치와 역할
이처럼 때로는 고행과도 같은 험난한 과정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10여 년이 넘게 국제무대에서 심판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이유는 생활체육인 출신 최초의 핸드볼 국제심판이라는 단순한 자긍심과 개인적인 명예를 넘어, 국제심판이 지닌 고유한 가치와 역할의 중요성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스포츠외교 첨병으로서의 가치와 역할이다. 국가대표 선수단의 좋은 성적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원으로 선수, 지도자, 임원, 그 밖의 지원인력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자국 출신의 심판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국제대회에 초청받은 심판들은 객관적인 판정과 공정하고 원활한 경기 운영이라는 동일한 목표를 지닌 동료지만, 자국 대표팀의 우수한 성적을 위해 서로를 견제하고 때로는 격려하는 역할도 동시에 수행한다. 또한 심판부에서 다뤄지는 주요 내용, 자국 대표팀의 경기에 배정된 심판의 특성, 자국 대표팀을 바라보는 심판부의 시각 등 내부의 고급 정보들을 자국 대표팀에 전달하는 역할도 상당한 값어치를 지닌다.
두 번째는 최신 규칙과 국제무대의 판정 경향성을 국내에 소개하는 전달자로서의 가치와 역할이다. 스포츠 경기 규칙은 특정 주기로 새롭게 변경되며, 대회마다 규칙의 해석과 적용 기준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변화를 최대한 빠르게 국내에 소개 및 적용하여, 국제무대와의 괴리를 최소화하는 작업은 매우 중요하다. 경기 규칙의 변화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비롯된 부정적인 결과를 편파 판정으로 곡해하는 경우가 생겨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이 두 가지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 및 국제대회 성과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므로 해당 종목의 내실을 튼튼히 다지고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심판의 양성과 보유는 필수적이다.
만들어 ‘지는’ 것 vs 만들어 ‘내는’ 것
국제심판은 결코 특정 순간에 우연히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운이 좋았다. 한창 편파 판정 이슈로 인하여 국제심판 양성을 부르짖고 있는 상황에서 필자는 국제심판이 되고자 했던 동기와 사명감이 확실했기 때문에 생활체육인임에도 불구하고 큰 편견 없이 협회의 꾸준한 관리와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국제심판은 전략적으로 만들어내야 한다. 더욱이 국제심판 자격 취득과정이 까다로워지고, 심판에 대한 관리 방침이 더욱 고도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 모든 책임을 국제심판 개인의 자율에만 의존한다면 그 한계는 분명하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심판’이라는 분야를 공공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양성과 관리를 체계화하려는 다양한 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국제심판 역량강화 교육과정을 통해 국제심판의 전문역량 강화 및 국제무대 진출 활성화를 꾀하고 있으며, 국제심판 자격취득 지원사업을 별도로 운영하여 올림픽·아시안게임 정식종목의 국제심판 자격 취득·승급·유지를 위한 해외 강습회 참가에 따른 비용(항공료, 체재비)을 부담하고 있다. 또한 대한체육회는 2014년부터 상임심판제도를 운영하여 심판활동을 위한 여건 강화와 지원을 통해 공정하고 투명한 스포츠 환경 조성에 힘쓰고 있다.
즉, 이러한 다양한 사업들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국제심판에 대한 생애주기적 지원책을 마련하여 그들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낼 뿐만 아니라 경험과 노하우(Knowhow)를 체계적으로 축적하여 예비 심판들에게 전수하는 시스템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마치며
핸드볼은 종목의 탄생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철저히 유럽적인 스포츠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대한민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특별함을 제외하면, 매 대회의 주인공은 단연 유럽 국가다. 이는 심판도 예외는 아니다. 국제핸드볼연맹에 등록된 67개의 조 중에서 유럽 국가 출신이 무려 45개의 조에 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럽 국가 출신의 국제심판이 8강 이상의 주요 경기에 배정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따라서 절대적인 국제심판의 수를 늘리는 양적인 측면도 중요하지만,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춘 역량 있는 국제심판을 만들어내는 질적인 측면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개개인의 책임과 사명감에 전략적인 관리와 지원이 더해진다면, 비유럽 국가 출신의 국제심판 최초로 2016 리우올림픽의 여자핸드볼 4강전에서 호각을 불었던 필자의 경우가 결코 운이 아닌 시스템의 산물임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는 구기종목 중 축구, 농구, 럭비와 같은 영역형 스포츠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 도전하는 모든 스포츠종목에 해당할 것이다.
*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이 발행하는 <스포츠 현안과 진단> 137호에 게재된 기고문 입니다.
* 이번 호의 내용은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과학원의 공식적인 의견이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