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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천재’ 박태환을 보는 즐거움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2011.08.09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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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을 생각하면 항상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모범생 스타일로 평소에 조용한 편이던 그는 철학도였다. 영어 회화 시간에 처음 만났는데 필자가 독문학 전공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다짜고짜 독일어로 말을 걸어와 엄청 당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 친구가 독문학도보다 유창하게 독일어를 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고 나니 허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철학을 공부하다보니 독일 철학에 심취하게 됐는데 번역된 한국어로는 깊은 뜻을 알 수 없어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열심히 하다보니 얼마 되지 않아 자유자재로 독일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독일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이웃나라 프랑스 철학에도 관심이 가더란다. 그래서 이번엔 프랑스어 공부를 시작했다. 프랑스어가 유창해지자 자연스럽게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가 따라왔다. 그 본류를 파고들면서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읽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너무 서양철학에 매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이번에는 동양 철학을 공부하기 위해 중국어에 매진했다. 그는 지금까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많은 외국어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그는 이른바 ‘언어 천재’였던 것이다. 그와의 만남이 얼마나 인상적이었던지 지금도 외국어 얘기가 나올 때마다 대학 시절 만났던 그를 화제에 올리곤 한다.

대학 졸업 후 10년 넘게 스포츠 기자로 일하면서 많은 종목에서 천재들을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 천재와의 조우는 색다른 경험이다. ‘야구 천재’ 이종범(KIA)이 그렇고, ‘축구 천재’ 박주영(AS모나코)이 그렇다.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피겨스케이팅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연아(고려대)도, 세계에서 가장 힘 센 여자 역도 선수 장미란(고양시청)도 타고 난 천재다. 그들의 재능은 최선의 노력과 합쳐져 최고의 성과를 냈다.

하지만 ‘수영천재’ 박태환(22·단국대)은 약간 다른 이미지다. 천재는 천재이되 마치 옆집 형이나 동생을 보는 것처럼 친근하고 인간적이다. 감히 범접하기 힘든 천재와는 사뭇 다르다. 아마도 그의 인생 행보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통 사람과 닮아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 겨우 스물을 넘겼지만 그 짧은 시간에 참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의 롤러코스터 인생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나온 ‘퐁당’ 사건이다. 당시 15살이던 박태환은 수영 자유형 남자 400m 예선에서 너무 긴장한 나머지 출발 버저가 울리지 전에 풀에 떨어지고 말았다. 제대로 팔 한 번 내저어 보지 못하고 실격을 당한 것이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7년 멜버른 세계수영선수권 대회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 200m에서 동메달을 따면서 그는 세계 수영계에 이름을 알렸다. 3년 만에 이뤄낸 대 반전이었다.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사진=저작권자 (c) 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그렇지만 열여덟 살 박태환은 하고 싶은 것도, 놀고 싶은 마음도 강했다. 그는 태릉선수촌이 아닌 촌외에서 자유 훈련을 했다. 툭하면 연습에도 빠졌다. 마음을 다잡은 것은 베이징올림픽을 6개월가량 앞둔 2008년 2월이었다. 결심하기가 어렵지 막상 결심을 하자 그의 천재성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훈련 시작 2개월 만인 그해 4월 동아수영대회에서 아시아기록 2개를 세웠고,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m에서는 한국 수영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그는 말 그대로 한국 스포츠계 최고 스타가 됐다.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됐다. 그는 다시 우쭐해졌다.

연습을 등한시한 결과는 2009년 로마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악몽이 되어 돌아왔다. 금메달은커녕 출전했던 3종목(200m, 400m, 1500m)에서 모두 결선 진출에도 실패했다. 한호가 비난으로 바뀌었고 그는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재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이듬해 열린 광저우 아시안게임 자유형 100m, 200m, 400m 등에서 3관왕에 오르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7월 24일 열린 중국 상하이 세계수영선수권대회. 이전의 그였다면 다시금 방황할 만도 했건만 이번엔 달랐다.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두 물리치고 자유형 남자 400m에서 다시 한 번 금메달을 목에 건 것이다. 과정 또한 극적이었다. 예선전을 7위로 통과한 그는 1번 레인을 배정받았다. 물살의 영향을 많이 받는 1번 레인은 모든 선수가 꺼리는 레인이다. 

박태환을 지도했던 노민상 전 수영대표팀 감독은 “내 기억에 1번 레인에서 뛰고 1등으로 들어온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400m 같은 중장거리에선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1번 레인의 박태환은 우승을 차지했고 전 세계 수영계는 이를 기적으로 받아들였다. 정신적으로, 또 실력으로 한 단계 성장한 박태환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이 통용된다.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잘 하는 게 중요하다.” 프로에서는 열심히 하지 않는 선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재능 있는 선수는 노력하는 선수를 따라가지 못하고, 노력하는 선수는 즐기는 선수를 이길 수 없다.”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 난 박태환은 이제 누구 못지않게 노력한다. 게다가 수영을 즐기기까지 하고 있다. 내년 런던올림픽에서 그의 올림픽 2연패가 더 기대되는 이유다.

※ 이헌재는?

이헌재(37)는 현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 태극전사들의 몸과 관련된 기획으로 제38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야구와 골프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재미와 감동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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