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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 관중 프로야구, 대통령도 즐기는 ‘문화’가 되다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2011.09.21 이헌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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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면 1. 미국 영화배우 리처드 기어는 6월 말 가족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어린 아들이 야구를 보고 싶다고 한 모양이다. 6월 21일 그는 가족과 함께 LG-넥센 경기가 열린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예전 같으면 홈 팀인 LG가 공짜로 리처드 기어 가족을 초대했을 것이다. 왜냐. 세계적으로 유명한 스타니까. 하지만 이날 LG는 당당하게 표를 팔았다. 가족 및 경호원 몫까지 10장이나 제 가격을 받았다. 리처드 기어 일행이 앉은 좌석은 본부석 쪽은 자리 잡은 일명 프리미엄 석이었다. 좌석 당 가격은 7만 원이나 한다. 세계적인 스타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장면 2. 9월 3일 LG-롯데전이 열린 잠실야구장. 구장을 가득 메운 2만7000명의 관중은 경기 중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6회 초가 끝난 뒤 실시하는 키스타임 이벤트에 뜻밖의 인물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바로 이명박 대통령과 김윤옥 여사였다. 카메라가 대통령 부부의 얼굴을 전광판에 비추자 이 대통령은 김 여사에게 깜짝 키스를 했다. 관중들은 박수와 환호로 이를 반겼다. 키스타임에는 대통령 부부도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리처드 기어는 “한국 야구의 뜨거운 열기를 보고 싶어 야구장에 왔다”고 했다. 특권의식 없이 재미있게 경기를 즐기다 쿨(cool)하게 돌아갔다. 이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이 대통령 내외는 보통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그렇듯 손자, 손녀와 함께 야구장을 찾았다. 예전 같으면 대통령이 야구장에 나타나는 것 자체가 사건이었다. 그나마 경기를 보러 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시구 등 행사를 위해 왔다. 경호와 동선 확보 문제로 한 바탕 난리를 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대통령 내외는 조용히 표를 예매했고, 가족들과 함께 조용히 경기를 즐겼다. 경기 전날까지도 구단 관계자들은 이 대통령이 오는 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관중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 것은 이 대통령에게서 같은 야구팬으로서의 동질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지난 9월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1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이명박(70) 대통령과 김윤옥(64) 영부인이 4회초를 마친 뒤 키스타임에 참가해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지난 9월 3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1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이명박(70) 대통령과 김윤옥(64) 영부인이 4회초를 마친 뒤 키스타임에 참가해 팬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사진=청와대 블로그)
 
위의 두 사례는 관중 600만 시대를 열어젖힌 프로야구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요즘 프로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온 국민이 즐기는 문화가 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우승과 2006년과 2009년 등 두 차례에 걸친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보여준 한국 선수들의 선전 이후 한국 프로야구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2008년 525만 명이 야구장을 찾았고, 2009년과 지난해에는 2년 연속 592만 관중을 유치했다. 그러다 올해는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600만 관중을 돌파했다. 지금 추세라면 700만 가까운 관중이 야구장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불과 7년 전인 2004년 233만 명에 불과했던 한국 프로야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베이징 올림픽과 WBC를 통해 야구가 전 국민의 관심을 불러일으킨 시발점이 됐다. 이후 각 구단은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팬들을 불러들이려는 노력을 했고,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최선을 다했다. 대표적인 예가 SK 와이번스다. 인천 문학구장을 홈으로 쓰는 SK는 스포테인먼트(스포츠 + 엔터테인먼트의 합성어)를 내세워 야구장을 가족들이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드는 노력을 해 왔다. 어린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를 설치했고, 테이블 좌석을 늘려 편한 관람 환경을 마련했다. 외야에 마련된 바비큐 존에서 삼겹살을 구워먹으며 야구를 볼 수도 있고, 잔디에 누워서 야구를 즐길 수도 있다. SK는 성적에서도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간 3차례나 우승하며 팬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구장 시설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모든 구단이 비슷한 노력을 해 왔다. 각 구단은 특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던 여성팬과 미래의 고객이 될 어린이 팬 유치에 공을 들였다. 마케팅 팀 관계자들은 “여성팬은 절대 혼자 오지 않는다”는 말을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남성팬들은 혼자 야구를 보러 오는 경우가 별로 없지만 여성팬들은 애인이든 친구든, 아니면 아이라도 데려 온다는 뜻이다.

각 구단들의 적절한 타겟팅(Targeting)과 적극적인 마케팅 노력은 곧바로 여성팬과 가족 단위 관람객의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로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09년 외부 용역을 통해 포스트시즌 관중을 분석한 결과 전체 관중의 31.4%가 여성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사직구장을 방문한 회원 40만 6450명 중 여성은 14만7372명(36.3%)으로 나타났다.

어찌 보면 600만 관중 돌파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이전까지 프로야구를 비롯한 모든 국내 프로 스포츠 종목은 모기업 홍보를 위한 수단이었다. 사회 공헌 차원에서 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중흥과 함께 이제는 프로 스포츠가 단순한 놀이를 넘어 문화로 발전했다. 동시에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비치고 있다. 최근 들어 프로야구의 입장수익은 크게 늘어났고 중계권료과 타이틀 스폰서십 비용도 크게 증가했다.

학교 운동장에서건 골목에서건 요즘 아이들은 손에 글러브와 방망이를 들고 야구를 한다. 주말에는 엄마 아빠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는다. 스포츠 전문 케이블TV는 매일 4경기를 생중계한다. 프로야구는 이렇게 벌써 생활 깊숙이 파고들었다. 지금 기회를 잘 살리면 프로야구는 문화를 넘어 산업이 될 수 있다. 미국이나 일본 같은 스포츠 선진국에서 벌어지던 일이 조만간 한국에서도 현실이 될 수 있다.

※ 이헌재는?

이헌재(37)는 현재 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로 일하고 있다.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때 태극전사들의 몸과 관련된 기획으로 제38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현재 야구와 골프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스포츠의 재미와 감동을 더 많은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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