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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라흐마니노프

[클래식에 빠지다] 영화 속 라흐마니노프

2023.09.14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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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적인 선율로, 때론 강렬한 리듬으로 우리의 마음을 요동치게 만드는 라흐마니노프(Sergei Rachmaninoff)의 음악은 드라마틱한 매력을 품고 있다.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이한 라흐마니노프는 모든 피아니스트들의 우상 같은 존재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그의 피아노 협주곡은 전세계 클래식음악 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레퍼토리 중 하나로 꼽힌다. 

1873년 러시아의 노브고로드 주 지방귀족출신 아버지와 고위군인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유복한 가정환경 속에서 자랐다. 

4세부터 피아노를 배웠던 라흐마니노프는 10대에 자신의 첫 번째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할 정도로 연주실력과 작곡능력이 비범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수석으로 마친 그에게는 음악가로서의 밝은 미래가 외견상으로 그려졌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우울감이 오랫동안 지배하고 있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 금하는 사촌간의 결혼, 부모님의 이혼과 경제적 파산, 그리고 형제의 죽음 등이 그를 점점 우울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음악 속 아름다운 멜로디들은 이런 그의 우울증을 극복하며 나온 인고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종종 영화 속 OST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는데, 라흐마니노프 음악이 가진 깊은 서정성과 스토리라인이 영화음악과 잘 맞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라흐마니노프의 어떤 음악들이 영화에 삽입되어 쓰였을까.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거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단원들이 오페라 <알레코>를 공연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4월 9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에서 세계적인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거장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볼쇼이 극장 오케스트라와 코러스 단원들이 오페라 <알레코>를 공연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 안나 카레리나(1997) 

소설 <안나 카레리나(Anna Karenina)>는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톨스토이의 3대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

명작들이 그렇듯 시대마다 영화로 새롭게 각색되어 나오는 안나 카레리나는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이 주인공 역할로 출연하였다. 

무성영화시대부터 스타였던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를 비롯하여 비비안 리(Vivien Leigh), 80년대 청춘스타 소피 마르소(Sophie Marceau), 최근의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까지 안나의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의 열연은 작품을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그 중 소피마르소 주인공의 1997년작은 배우이자 감독인 버나드 로즈(Bernard Rose)가 메가폰을 잡고 원작에 충실하고자 한 작품이다.

베토벤과 파가니니등 음악가들을 소재로 작품을 만든 경력이 있는 로즈감독은 영화의 분위기를 보여주는 음악에도 많은 공을 들였다. 

작품의 사운드트랙은 톨스토이와 동향인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사용하였으며, 영화전반에 흐르고 있는 주제사운드는 작품의 비극적 성향을 보여주듯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6번 <비창>을 테마로 하고 있다. 

하지만 스토리 중간의 복선들과 주인공들의 심리묘사는 라흐마니노프의 음악들로 채워졌는데, 그 중 <엘레지(Elegie)> Op.3 No.1은 주인공 안나의 비극적 미래를 암시하는 부분에 주로 쓰여졌다. 

피아노를 위한 환상 소품집, Op.3(Morceaux de fantaisie, Op.3)의 첫 번째 곡인 <엘레지>는 슬프고 애절한 노래라는 뜻의 <비가 悲歌>로 불리고 있다. 

환상 소품곡집은 전체 5곡으로 이루어졌으며 라흐마니노프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1892년 그의 나이 19살에 발표되었다. 

그의 출세작이기도 한 환상 소품곡집의 1번 <엘레지>는 왼손 아르페지오와 함께 서글프고 우수에 찬 오른손 멜로디로 시작되며 발전부에서는 격정적으로 감정이 요동치지만 결국 슬픈 테마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마치 곡의 구성이 비극으로 끝날 수 밖에 없는 안나의 운명과도 같아 보인다. 

영화 속 라흐마니노프의 작품들은 이외에도 피아노 트리오 Elegiaque No. 1을 비롯하여 Piano Sonata No. 2 과 Prelude in F Sharp Minor, Op. 23 등들 여러 곡이 OST로 삽입되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는 전세계 영미권 작가들이 뽑은 최고의 문학작품 1위에 선정되기도 하였으며 선배작가 도스토옙스키는 안나 카레리나를 읽고 “톨스토이는 예술의 신”이라고 외치기도 하였다. 

사실 인류의 유산과도 같은 장대한 소설인 안나 카레리나를 2시간 남짓의 영화로 압축한다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통해 영상으로만 담을 수 없었던 부분을 채우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2016)

나탈리 포트만(Natalie Portman)이 감독과 각색, 주연을 맡은 영화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A Tale of Love and Darkness)>는 히브리 문학의 대가이자 문학교수인 아모스 오즈(Amos Oz)의 동명 자전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는 작가가 어린 시절 바라본 어머니의 모습 등을 자전적으로 그리고 있다. 유대인은 모계사회로서 아버지가 아닌 어머니가 유대인이어야 자식도 유대인이 될 수 있다. 

어린 시절 작가의 기억 속 어머니에 대한 관심과 애착은 원작 소설처럼 영상으로도 섬세하게 표현되었다. 

영화의 OST에는 라흐마니노프의 오페라 알레코(Aleko)의 <Women's Dance>가 삽입되었는데 주인공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보여주는 장면에 흐르고 있다.

많은 대중들이 라흐마니노프를 쇼팽처럼 피아노 음악에 국한된 연주자겸 작곡가로 알고 있지만, 그는 4편의 오페라를 포함 5곡의 교향곡, 관현악 모음곡, 합창곡과 가곡 등 다양한 작품활동을 한 음악가이다.

오페라 <알레코(Aleko)>는 라흐마니노프의 첫 번째 오페라 작품으로 모스크바 음악원 재학 중이던 19살 나이에 작곡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교내콩쿨에서 1등 하였으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후 차이코프스키는 이 작품의 볼쇼이 극장 공연을 주선해 주기도 하였다. 

대문호 푸쉬킨(Aleksandr Pushkin)의 운문 서사시 <집시들>을 각색하여 작곡된 오페라 알레코는 아름다운 단막극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서정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극 중 등장하는 음악 <Women's Dance>는 뒤이어 나오는 강열한 리듬의 <Men's Dance>와는 다른 오묘하면서도 신비롭고 매혹적인 멜로디가 특징적이다. 

영화의 OST에는 좋은 음질의 레코딩이 실려있지만 실제 영화상에는 오래된 전축에서 나오는 올드레코딩 음질로 처리되었다. 

극 중 작가의 어머니 역을 연기한 주인공 나탈리 포트만의 아우라가 오페라 알레코의 <Women's Dance>와 묘하게 잘 어우러지는 작품이다.

◆ 샤인(1997)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3번하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바로 제프리 러쉬(Geoffrey Rush) 주연의 97년 개봉작 영화 <샤인(Shine)>이다. 

아카데미 7개부분에 노미네이트 되고 주인공 제프리 러쉬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겨준 이 작품은 1997년 이후 2017년과 2020년 재개봉을 할 정도로 인기와 긴 여운을 주는 작품이다. 

정신질환을 앓은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David Helfgott)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스토리와 영상전반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들은 영화의 감동을 더욱 배가시켜주고 있다. 

1997년 10월에 내한한 영화 <샤인>의 실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서울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1997년 10월에 내한한 영화 <샤인>의 실제 주인공인 피아니스트 데이비드 헬프갓이 서울 스위스 그랜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다. (사진=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피아니스트의 일화를 다룬 영화답게 리스트와 슈만, 쇼팽 등 여러 피아노 소품들이 헬프콧의 연주로 OST에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곡은 단연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이라 할 수 있다. 

이 곡 역시 헬프갓의 연주로 영화에 사용되었으며 이 작품의 대중적 인기에는 영화 <샤인>의 흥행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도 볼 수도 있다.

1909년 36살의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3번을 미국으로 떠나기 전 가족별장인 러시아 이바노프카(Ivanovka)에서 작곡하였다. 

완성 후 바로 미국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초연은 뉴욕에서 이루어졌으며, 두 번째 공연은 당대 최고의 음악가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에의 의해 연주되었다. 

이 곡은 친분이 두터웠던 피아니스트 요제프 호프만(Josef hofmann)에게 헌정되었으나, 손이 작았던 호프만은 한 손으로 여러 음들을 지배해야 하는 이 작품은 자신과는 맞지 않는 곡이라고 토로하기도 하였다. 

사실 협주곡3번의 스페셜리스트는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이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출신 불세출의 피아니스트 호로비츠는 25세 미국데뷰를 앞두고 라흐마니노프와 만났다. 

호로비츠의 연주를 들은 라흐마니노프는 “내 작품은 이렇게 연주되길 항상 꿈꿔왔다”고 극찬하며 자신의 작품 편집권들을 호로비츠에게 넘겼다고 한다. 

이후 호로비츠는 미국 데뷰 25주년과 50주년, 카네기홀 연주 등 중요한 연주회에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하였다. 그는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음반을 총 6개남기고 떠났는데 모두 명반이라 할 수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헬프콧은 국내공연을 포함하여 여전히 활발한 연주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영화 <샤인>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라흐마니노프 3번은 불멸의 곡이야! 미치지 않고서야 이 곡을 연주할 수는 없네!”

◆ 히어애프터(2010)

죽음은 과연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살아서는 결코 알 수 없는 사후세계, 그 세계를 연결해주는 남자(조지)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온 여자(마리). 그리고 사고로 죽은 형과 대화하고 싶은 런던의 소년(마커스). 각자 떨어져 살던 이 셋은 결국 영화 마지막에 서로 만나게 된다. 

영화 <히어애프터(Hereafter)>는 ‘내세’란 뜻으로 세 명의 주인공을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이다.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 감독의 2010년 작품으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Adagio Sostenuto>의 멜로디가 영화 속 죽은 쌍둥이 형과 대화하고 싶은 소년 마커스의 테마로 쓰였다. 

마커스가 형의 유골을 받아 들던 장면, 어머니와 강제로 떨어지던 장면, 그리고 조지와 만나 형의 얘기를 들을 때 이 아름다운 멜로디가 흐른다. 

사실 음악은 너무 서정적이고 아름답지만 영화 속에서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과 애절한 마음이 멜로디와 중첩되어 마치 레퀴엠 처럼 쓰였다고 볼 수 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은 대중적으로 가장 사랑 받는 곡 중 하나이다. 특히 2악장의 멜로디는 유명 팝송 <All By Myself>에 차용되기도 하였다. 

1899~1901년 사이에 작곡된 라흐마니노프의 협주곡 2번은 고전적 형식인 전체 3악장 구조로서 그가 교향곡 1번의 쓰라린 실패 이후 다시 재기와 성공을 가져다 준 의미 있는 작품이다. 

멀리 종소리가 가깝게 들려오는 1악장의 도입부분을 지나 강렬하고 운명적인 오케스트라의 현 파트 멜로디는 단숨에 청중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다. 

라흐마니노프는 자신이 슬럼프를 겪을 시절에 치료를 도와준 니콜라이 달(Nikolai Dahl)박사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였다.

☞ 추천음반

라흐마니노프의 곡들은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 <주토피아>, <슈렉2> 등 위에 언급한 영화 외 수많은 작품에 쓰였다. 

라흐마니노프의 음악을 녹음한 훌륭한 연주자들도 정말 많지만 주로 동향인 러시아 출신음악가들의 연주를 추천한다. 

환상 소품집 <Morceaux de fantaisie Op. 3>은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Vladimir Ashkenazy)의 연주가 서정적이다. 미샤 마이스키 (Mischa Maisky)가 녹음한 첼로편곡도 아름답다.

협주곡 2번과3번은 호로비츠의 연주를 포함하여 개인적으로 가브릴로프(Andrei Gavrilov)의 다이나믹하며 호방한 연주음반을 선호한다. 브론프만(yefim Bronfman)과 볼로도스(Arcadi Volodos)의 연주도 손에 꼽힌다.  

오페라 <알레코>는 예테보리 오케스트라(Gothenburg Symphony Orchestra)의 연주를 권한다.

김상균

◆ 김상균 바이올리니스트

서울대 음대 재학 중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비엔나 국립음대와 클리블랜드 음악원 최고연주자과정 최우수 졸업. 이 후 Memphis 심포니, Chicago civic오케스트라, Ohio필하모닉 악장 등을 역임하고 London 심포니, Royal Flemisch 심포니 오디션선발 및 국내외 악장, 솔리스트, 챔버연주자로도 활발히 활동 중이다. eigenarti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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