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과 고립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 사회의 독특한 징후로 여겨진다. 어느 사회에서든 외로움과 고립은 늘 존재했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대만큼이나 외로움과 고립이 만연한 시대 또한 없을 것이다. 특히,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겪은 후 살아가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코로나가 남긴 단절의 자국들은 외로움과 고립의 병폐가 무엇인지를 체감하게 해준다. 기술의 발전이 선사한 유용과 편리마저도 그 병폐를 극복하게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코로나 이전의 삶에 대한 향수로 버티던 질곡의 일상에서 우리가 바랐던 것은 어쩌면 누군가와의 만남 그 자체였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있어 코로나로 인한 단절의 시기는 유례없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학기 초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등하굣길이나 동네 놀이터, 도서관, 아르바이트 장소 등 다양한 공간에서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시간을 강제로 잃어버렸던 청소년과 청년 세대들에게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끊어지고 우울증 같은 심리적 문제가 발생하는 일은 예사였을 것이다.
사회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지만 일생의 가장 소중한 시기에 단절을 경험했던 이들에게 만남, 친목, 어울림을 자연스럽고 빠르게 익히기엔 다소 부족한 시기일 것이다.
나는 도서관이야말로 외롭거나 고립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 수 있으리라 믿는다. 도서관은 아주 오래 전부터 누군가와의 만남을 그리던 곳, 새로운 시작을 꿈꿀 수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로는 채워질 수 없는 무수한 만남으로서 도서관은 존재한다. 책과의 만남. 거기에 남은 손때, 결을 따라 남은 냄새, 그 책장을 넘길 때의 소리가 그리웠던 이유는 비단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용한 서재에서 고요히 자신의 일만을 감당한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에서 우리는 책을 읽고 또 함께 그 이야기를 나누며 다른 누군가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개인주의의 온상으로 보여지는 이 사회 속에서 도서관이야말로 그 중후한 만남을 기대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국립중앙도서관에서는 ‘도서관과 함께하는 마음 산책’을 문화의 날인 11월 27일 오후 6시 30분에 개최한다.
외로움과 고립 문제를 경험해본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는 이번 행사는 전문가들과 함께 하는 소통과 공감의 프로그램을 통해 도서관의 사회적 포용을 실천하는 시범사업으로 열린다. 책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사서들이 외로움과 고립을 주제로 한 다양한 도서를 추천해주는 도서 큐레이션(book curation) 전시도 펼쳐질 계획이다. 부디 마음 한켠의 외로움과 허전함을 느끼는 사람들 누구나 이곳 도서관에서 마음을 나눌 책을 읽고 공감하며 스스로를 돌아보고 위로받길 바란다.
도서관은 방대한 정보를 보관하는 문서고 역할뿐 아니라 만남을 지속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다. 필멸할 것들이 분연히 자신을 드러내고 누군가에게 그 목소리가 가닿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장인 것이다. 외로움과 고독이 번민하는 우리 사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또는 원치 않게 사회적 약자가 되어버린 청년들에게 도서관이 위로와 위안이 되어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버린 시간이 사라지고 소리가 조각되어 떠다닌다
오르골에 던져진 생각이 똑딱, 바늘이 움직인다
마음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후려진 바람에 쓴 미소를 마신다
익숙해진 흔적을 지우기 위해 걸어 또 걸어 바람의 언덕까지
내어 하늘까지 내던지고 끝은 새로운 시작으로 다시 채워 간다
쏟구치는 눈물을 구겨 놓고서
몰려드는 아우성, 세차게 이는 파도는 식지 않고 소용돌이친다
생각에 생각이 끝을 세우고 마음 비우기를 반복한다
쓰러진 모래성을 만들고 소리는 안에 머물고 있다
어디선가 꽃비가 내린다
- 한숙희 詩, ‘미래를 위한 그림’
◆ 한숙희 국립중앙도서관 사서
국립중앙도서관 국제교류홍보팀 근무, 2021년 공직문학상 시 부문 은상 수상, 같은 해 <시인정신>으로 등단했다. 우리가 행복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출근하는 35 년 차 사서이자 도서관에서의 일상을 시로 구현해내는 시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