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부모님 휴가에 맞춰 드라이브를 즐겼지만 남편과 내 휴가는 집에서 휴식하는 것으로 정했다. 외근이 많은 남편이 평소 보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충전하고 싶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여름휴가는 북캉스를 떠나기로 했다. 북캉스는 책(book)과 바캉스(vacance)의 합성어로,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는 여름철 책을 읽으며 시원한 휴식을 보낸다는 뜻이다.
보통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하지만 진정한 독서의 계절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란 통계자료도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밝힌 전국 공공도서관 대출권수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2010~2019년) 7월~9월의 대출량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연중 대출권수가 가장 많은 던 달은 7월이었으며, 지난해는 8월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 가족처럼 휴포자(휴가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멀리 휴가를 가지 않고 집이나 도서관을 찾아 휴식을 취하는 걸 선택하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또 만났네. 역시 피서지로 도서관만한 곳이 없지?”
북캉스를 즐기기 위해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족이 총출동해봤다. 북캉스를 선택한 지인들과 약속이나 한 듯 도서관에서 마주쳤다. 이번 휴가는 가족들과 지식 충전을 위해 도서관을 택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방학숙제를 하고, 부부는 신문과 책을 읽으며 결혼 10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고 있다고 귀띔했다.
3살인 막내는 요즘 공주 옷에 푹 빠진 탓에 어느새 백설공주와 신데렐라 책에 관심을 보였다. 집에서 머물렀다면 에어컨을 틀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을 텐데, 시원한 에어컨 밑에 있으니 휴가지가 따로 없었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하는 첫째 아이는 세계 여행을 테마로 북캉스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방학을 맞아 동네 영어도서관에서 국가별 도서전시와 영어캠프가 준비돼 있었기 때문이다. 1주일 동안 아이는 미국과 일본, 유럽, 호주 등 세계일주를 하며 에펠탑과 도쿄타워 등 유명 관광지 종이접기와 그림 그리기 등으로 견문을 넓히기도 했다. 캠프가 끝난 후에는 캐나다와 싱가포르 책을 직접 골라 읽으며, 내년 가족 여행지로 어느 곳을 선택할지 행복한 상상에 푹 빠져 있다.
맞벌이 부부인 나와 남편은 금쪽같은 휴가에 집중하기 위해 미스터리 추리소설을 선택했다. 등골 오싹한 내용을 읽다 보니 무더위가 싹 가셨다. 책과 함께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여유와 시간이면 충분했다. 연일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도서관은 무더위 쉼터이자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줬다.
문장에 쉼표가 있듯 우리 삶에도 쉼표가 필요한 요즘이다. 폭염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북캉스로 충전해보니 전기료 걱정 없이 시원함은 물론 마음의 양식까지 풍족하게 쌓을 수 있어 무릉도원이 따로 없단 생각이 들었다. 얇아진 지갑 사정으로 이번 여름휴가가 고민된다면 한 권의 책과 함께 북캉스를 떠나보는 건 어떨까. 시원한 도서관에서 알뜰 피서를 즐기며 일상 속 작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박하나 hanaya22@hanmail.net